그리고 지금의 내가 도깨비를 여전히 좋아하는 이유
회사일과 개인적인 일로 한동안 바빠서 뭘 어떻게 먹고 어떻게 입고 다녔는지도 모르게 지나가버렸다. 그리고 오랜만에 맞은 온전한 휴식날에, 별생각 없이 넷플릭스 도깨비를 다시 정주행 하기 시작했다.
도깨비는 방영했을 그 당시에 눈물 콧물을 쏟으며 엄청 열심히 챙겨봤던 드라마이다(수험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 그 이후 도깨비를 다시 본 적은 없었는데, 그 이후 내게 어떤 드라마도 도깨비를 능가하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도깨비는 마음속에 항상 인생 드라마 1위로 꼽고는 했었다.
그리고 4년 여가 흐른 지금(흑 눈물 콧물 쏟으며 도깨비를 본방 사수했던 그때, 나는 20대였구나) 도깨비를 다시 보며, 나는 그때 왜 그렇게 도깨비를 좋아했는지 곰곰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1. 위로가 되었던 권선징악의 드라마
이 드라마에는 '사랑' 이야기가 주축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일관되게 전달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권선징악. 착하게 산 사람들은 결국 언젠가 보답을 받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언젠가 그 대가를 치르는 것. 당시의 나는 많이 힘들었을 때였다. 나의 처지와 현실로도 힘들었고 또한 사람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많이 힘들었을 때였다. 사람과 상황으로 받은 상처들로 인해 내가 오랜 기간 지켜왔던 가치관이 흔들렸고,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했던 것이 의미가 없어진 것 만 같을 때였다. 그때 이 드라마 속에 권선징악들을 보며, 지금의 당장은 조금 (아니 많이~) 힘들지만, 그래도 참고 버틴다면, 나도 나아질 때가 있겠지, 그리고 내가 지켜온 가치관들과 해온 노력들이 결국 의미 없는 것들은 아닐 거라는 위로를 받았다.
특히 드라마 속에서 '아홉은 가장 온전한 수인 0이 되기 직전의 숫자'라는 대사가 있는데, 당시 29살을 지내며 지독한 아홉수를 겪었던 내게 그 문장 한 줄은 정말 큰 위로가 되었고, 30살을 공포가 아닌 , 기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2. 김은숙 작가 드라마의 '말 맛'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에서 캐릭터들이 하는 '말'은 항상 맛있다. 새콤달콤에 매콤한 맛까지 곁들여진 맛이랄까? 드라마 속에서 캐릭터들끼리 한마디도 지지 않고 서로 툭툭 치고받는 대사가 너무 재미있다. 특히 도깨비에서는 각본에 연출력 연기력 모든 것이 곁들여져 '말의 맛'이 더 맛있었던 것 같다.
공유과 은탁이가 주고받는 대사가 한마디 한마디가 그랬고, 브로맨스를 보여줬던 왕여와 공유의 대사도 그랬다. 특히 '써니'역의 대사는 한마디 한마디 무릎을 탁 치게 했다. 시크하지만 유머러스하고, 그러면서도 맞는 말만 하는 것 같았던 그녀의 대사는 단순히 재미를 넘어 인생의 교훈을 주는 것 같았다.
그녀의 그 재치 있는 대사들 덕분에, 별로 웃을 일 없던 그때, 드라마를 보며 하하호호 웃고 매일 본방 사수를 하며 드라마에 푹 빠져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 재치에 넘쳤던 맛있는 그 대사들은 다시 봐도 '여전히' 맛있다.
3. 배우들
공유가 멋있었음은 이렇게 적을 필요도 없이 모두가 공감하는 내용 아닐까? 내가 딱 20살 때 커피프린스라는 드라마를 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나의 20대 시작과 끝은 '공유'와 함께 했구나 ㅎㅎ) 그때의 공유는 그냥 키 크고 잘생긴 배우였던 것 같다. 그리고 10년(9년인가?) 뒤에 만난 공유는 단순히 키 크고 잘생긴 배우가 아닌, 멋있고 깊이가 있어진 배우가 되었다고 느껴졌다. 한 번도 실제로 그를 만나보지 못했지만 드라마 속을 통해 보이는 그는, 깊이가 생겼고 그로 인해 나이 들었음에도 '멋있어졌다'. 이런 공유가 김신이고 도깨비였기에 더 몰입해서 드라마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어색할 수 있었을 사극톤 대사도, 말 그대로 판타지인 각종 마법(?) 들도 전혀 이질감 없게 느꼈을 것이다.
'김고은'이 아닌 다른 이가 '지은탁'을 했다면, 내가 이만큼이나 '도깨비'를 좋아할 수 있었을까? 내가 이렇게 도깨비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만큼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고, 이 몰입의 이유에는 바로 '김고은'이 '지은탁' 역을 맡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에 그녀는 '소박하고 평범한 여학생'이었다. 그리고 그랬기에 마치 내가 지은탁인 양 많이 몰입해서 드라마를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내가 엄청 초라하다고 느꼈을 때인데, 만약 그녀가 그렇게 소박하고 평범한 여학생 역할을 제대로 표현해 주지 않았다면, 아님 다른 배우가 했더라면 나는 그렇게 내가 지은탁인 양 그 드라마에 몰입할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당시에는 마냥 지은탁이 예뻐 보이고 불쌍하고 좋기만 했고 그 이유는 사실 몰랐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도깨비'를 다시 보며 그 이유를 알았다. '지은탁'이 나 같았기에 내가 나를 예뻐하고 불쌍해했고, 또 사람들이 그렇게 여겨주길 바랬기에, 그때의 지은탁과 김고은을 내가 그리 좋아했구나.라고 깨달았다.
내가 그때 그렇게 생각하고 몰입하며 드라마를 볼 수 있었던 것에는 그 배우의 힘이 컸지 않았을까?
지금의 나는 그때처럼 기적이 필요하지도 않고, 더 이상 초라하고 불쌍하지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도깨비는 내 최고의 인생 드라마이다. 다시 본 도깨비는 여전히 위로고 힐링이며, 나의 29살을 추억할 수 있게 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