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과거에 정말 많은 블로그와 책과 뉴스레터를 엄청 많이 보는 사람이었다. 프로덕트 관련해서는 Andrew Chen이나 Lanny’s newsletter가 가장 기억에 남고, Feedly라는 블로그 RSS 서비스를 활용해 국내외 많은 블로그들을 구독하며 새로운 글이 올라오면 최대한 빨리 보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정보 수집에 집착했던 이유는 분명했다. 2013년 처음 창업했을 때는 25살이었는데, 스타트업과 제품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지 못했다. 해먹남녀로 옮기고 처음 PM 역할을 맡았을 때도 사수가 없다 보니 많은 글을 읽고, 사례를 찾아보고, 벤치마크를 연구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해야 조금은 성장할 거라는 기대였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어떤 정보를 모르거나 놓쳐서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책을 사놓고 싸아놓거나 수십 개의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나중에 보려고 저장해두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습관이 변하게 되었고, 이제는 내가 왜 헤비 콘텐츠 소비자에서 소비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는지 이야기하고 싶다
자기 계발, 리더십, 애자일 방법론 등 관심 분야의 콘텐츠를 수년간 꾸준히 소비하다 보니 어느 순간 '아, 이런 내용이었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새로운 책이나 아티클을 접해도 이전에 봤던 내용의 변주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 습관 형성, 리더십 발휘 방법, 애자일 프로세스 적용법 등 이미 익숙한 내용들이 다른 포장으로 반복되고 있었다.
처음 창업했을 때나 PM 역할을 맡았을 때는 모든 정보가 새롭고 유용했지만, 이제는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패턴화 된 콘텐츠에서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다른 말로 하면, 그만큼 내가 인사이트 있다고 느끼는 정보를 찾는 것이 어려워졌다.
많은 자기 계발서와 성공 사례는 한 사람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세상에 떠들어대는 성공 스토리가 나의 상황과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걸어가는 길과 우리 서비스의 성공은 남들과 다를 수밖에 없다.
이전에는 '누가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더라'라는 정보에 집착했지만, 경험적으로 그것이 나에게 맞지 않음을 수없이 확인했다. 이제는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게 된다. 다른 사람의 경험보다 나의 상황과 맥락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제는 필요한 정보가 있을 때 그때 공부하면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AI 에이전트를 활용한 딥 리서치, 원하는 유튜브 영상을 Notebook LM이나 Dia로 요약해서 보기, 책도 전체를 읽기보다는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서 읽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모든 것을 미리 알아두려는 강박에서 벗어나 필요할 때 빠르게 학습하는 방식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오히려 학습 속도는 더 빨라졌고, '미리 알아둬야겠다', '배워야겠다', '읽어야겠다'라는 부담감은 크게 줄었다.
콘텐츠보다 실제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훨씬 더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창업 과정에서 만난 다른 창업자들, 각 분야의 전문가들, 우리의 고객인 요양기관 기관장님들과의 대화에서 얻은 인사이트는 어떤 책이나 블로그에서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무언가 알고 싶을 때 '이것을 내가 학습해서 될 건지, 빠르게 전문가를 만나야 될지, 또는 전문가를 만나기 전에 리서치를 해봐야 될지' 판단하는 능력이 생겼다. 실제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사람들과의 대화는 예상치 못한 인사이트를 제공하며, 이론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워준다.
끊임없는 콘텐츠 소비가 멘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다른 창업자나 회사, 제품과 자신을 비교하게 되고, 특히 AI나 기술 분야에서 쏟아지는 정보들에 압도되기도 했다. PM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해외에서는 이렇게 하는데 국내에서 이렇게 해서 내가 될 수 있을까?', '이렇게 뛰어난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이 길을 가는 게 맞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에 공부하는 것도 도움이 되었지만, 때로는 백지상태에서 내 생각을 정리하고 필요한 것들만 취했다면 훨씬 더 건강하게 상황을 해쳐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과도한 정보 소비는 FOMO를 불러일으키고, 이는 내가 나의 문제를 건강하게 해결해 나가는데 방해가 되었던 경험도 있다.
물론 완전히 콘텐츠 소비를 중단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주말에는 웹툰도 보고, 좋아하는 스포츠 관련 콘텐츠도 찾아본다. 그중에서도 특히 자기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과정을 보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최근 가장 인상적이었던 콘텐츠는 강정호 선수의 유튜브 채널이다. 은퇴 후 다시 야구선수로 도전하고 있는 그의 모습과 현역 선수들을 지도하는 영상을 보면 정말 많은 영감을 받는다. 타자로서 어떻게 해야 좋은 결과가 나오는지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훈련 방법을 제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타구 폼을 분석하고, 스윙 각도를 조정하고, 그것을 위한 효과적인 연습법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면서 창업자로서의 나의 성장 방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결국 창업자와 운동선수는 크게 다르지 않다. 명확한 비전을 갖고, 끊임없이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며, 목표를 향해 필요한 연습을 해나가는 과정이 본질적으로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영감을 주는 것이 꼭 내 분야의 전문가들에게서만 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뛰어난 아티스트들, 다양한 운동선수들, 그리고 전혀 다른 분야에서 성취를 이루는 사람들의 과정과 철학에서 오히려 더 큰 영감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전혀 다른 업계에서, 다른 방식으로 성장하고 성취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여정이 때로는 더 신선한 관점과 좋은 에너지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