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생활이 제대로 유지되려면 우리 사회의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해주어야 한다. 일반인들이 선망하는 공무원이나 대기업 직원들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먹고 살려면 먹거리를 생산해서 공급해주는 농부, 도소매업 종사자들도 제 기능을 해주어야 한다. 쓰레기를 걷어 가는 환경미화원이 며칠만 손을 놓으면 엄청난 불편을 겪는다. 어느 한 사람의 일이 더 중요하고 또 덜 중요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맡은 일에서 제 역할을 다 할 때 우리가 편리한 생활과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몇 년 전에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에 업무차 출장 갔던 적이 있다. 이 지역은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인연이 깊은 곳이다. 원래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에 속해 있었다. 발해 성터와 절터로 추정되는 지역도 있다. 무엇보다도 일제 시대에 독립운동의 중요한 근거지가 되었던 곳이다. 한인들의 집단 거주지였던 ‘신한촌’, 한인들이 최초로 설립했던 고려사범대학 건물 등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선열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안중근 의사가 거사를 모의하고 비장한 심정으로 하얼삔 행 열차를 탔던 곳도 블라디보스톡 역이다.
블라디보스톡에 남아 있는 유적들을 돌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당시 이곳에 살던 한인 선열들은 일제 치하에서 언제 나라의 독립이 올지, 과연 오기나 할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당시 국권을 빼앗겨 법적으로는 일본 국민으로 분류되었으므로 현지의 일본 영사관에서 한인들을 불러서 강하게 협박하고 회유했지만, 대부분의 한인들은 광복에 대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고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 독립을 도왔다고 한다. 우리는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는 안중근 의사 정도만 기억한다. 하지만 안 의사의 의거를 함께 기획하고 재정적으로 뒷받침해주고 그의 사후에는 안의사 가족의 생계까지 챙겨주었던 최재형 선생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목숨을 기꺼이 바친 독립군들, 그렇게는 못하더라도 충분하지 않은 재산을 털어 기꺼이 내놓은 사람들, 이외에도 역사에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았지만 많은 선열들이 독립이 언제 올지 확신조차 없는 상태에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마음으로 저항하면서 자신의 처지에서 나름 헌신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드러나지 않게 헌신했던 많은 분들의 그 열의와 노력에도 감사해야 한다. 역사에 기록된 분들 못지 않게 기려야 한다. 이 분들이 없었다면 우리 역사의 흐름이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러한 많은 분들의 헌신에 힘입어 오늘의 우리가 있다는 생각에 숙연해졌다.
코로나로 다들 어렵다. 특히 자영업을 하는 분들은 어려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하게 자기 일을 수행해나가는 분들, 그 분들 덕택에 우리의 일상 생활이 그래도 큰 어려움 없이 굴러가고 있다. 이 분들께 마음으로부터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