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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현서 Apr 13. 2024

스페인 3개월 살이(15)

- 몸 상태가 좋지 않은 날의 일상 -

 아침 5시 반 경에 일어났다. 그런데 머리가 띵하면서 뒷머리가 조금 무겁고 당기는 느낌이 있어 개운하지가 않다. 여행을 하다 보면 대개 베개와 침대가 평소 사용하던 것이 아니라 불편한데 그 탓이 아닐까 하고 목을 포함한 상체 스트레칭을 해보았지만 별 효과가 없다. 나는 낮고 단단한 느낌의 베개와 쿠션이 없는 침대에 익숙한데 이 숙소의 침구는 그 반대다. 


 숙소에서 따뜻한 우유 한잔과 크루아상 하나로 아침식사를 해결했다. 그런데 머리가 띵하고 뒷머리 댕김이 가시지 않는다. 우선 타이레놀 한 알을 복용한 뒤 핸드폰에 뜨는 한국 선거 소식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돋보기안경이 무거워지고 정신이 아뜩해진다. 바로 안경을 벗고 휴식을 취했다. 시간이 지나니 몸 상태가 조금 나아지기는 했다.


 오늘이 결혼 45주년 되는 날인데 몸 상태가 시원치 못해 걱정되었다. 더군다나 객지에서 아내가 숙소에서 텔레비전만 보게 할 수가 없다. 산책을 나가면 기분도 회복되고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아내와 그란 비아 거리로 나갔다. 오전 11시가 넘는 시간이라 햇살이 강하다. 그렇지만 공기가 서늘하여 걷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마드리드에 와서 2주 가까이 생활하다 보니 처음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조금씩 자세하게 보인다. 대로 빌딩 1층에 자리를 잡은 많은 상가와 식당, 카페들의 상호들이 기억되고 상권의 힘이 느껴진다. 골목길에도 많은 식당과 상가들이 숨어있는데 다니면서 ‘아~ 이렇게도 영업하는구나. 다음에 한 번 와보아야지’ 하면서 지나가기도 한다. 숙소가 있는 동네 골목에서 독일음식 전문식당도 보았다. 


 중국음식점은 대로에서 뿐만 아니라 골목길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정말이지 스페인에 중국인이 이렇게 많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알았다. 일본 음식점도 수시를 퓨전 화한다거나 고급 참치전문점을 만들어 성업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북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에서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넘어온 이민자들이 길바닥에서 소위 짝퉁 가방이나 의류 등을 판다. 단속반이 나타나면 이 물건들을 재빠르게 보퉁이로 감싸 매고 도망친다. 유별나게 키와 체격이 크고 피부가 어두워서 눈에도 잘 띄는 이들 이민자들이 떼를 이루어 그란 비아 거리를 뛰어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의 삶의 고단함에 애잔함이 느껴진다.



 시청에서 나온 여자 주차단속원이 골목에 불법 주차한 차량의 번호판을 촬영한다. 내가 관심을 가지고 쳐다보니 눈가에 웃음을 흘리며 찡긋한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낡은 중고서적 가게도 눈에 띈다. 안쪽을 눈여겨보니 역시 노인 한 분이 앉아서 책을 보고 있다.



 내가 2~30년 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빈티지 시계나 만년필을 파는 가게도 골목길에 숨어있다. 신기한 마음을 가지고 가계 진열장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이제는 모두 부질없게 느껴지지만 한 때는 그런 것들을 수집하는 재미에 빠졌었다. 



 1시가 넘었다. 아내 점심을 챙겨주어야 한다. 스페인 광장 쪽으로 내려가다 어느 식당 입구에 내놓은 메뉴판을 보니 해산물 수프가 보인다. 스페인어로 ‘Sopa de Mariscos y Pescados’라고 하는데 그대로 직역하면 ‘생선과 해산물 수프’이다. 아내에게 의견을 물어봤더니 반가워한다. 아내는 해산물 수프 나는 샐러드를 주문했다. 머리가 무겁고 산만한 데다 식욕이 없었는데 샐러드를 먹고 싶어 주문한 것이 아니고 시켜놓으면 아내가 먹을 수 있을 거란 계산이었다. 아내는 샐러드를 매우 좋아한다. 역시 아내는 수프의 국물 맛이 좋다면서 잘 먹었고 내가 남겨놓은 샐러드도 잘 먹었다. 



 그런데 식당에서 나오니 내 몸 상태가 더 좋지 않다. 식당에서 조금 먹은 것이 또 위에 부담을 준 것인지 가슴이 답답하고 띵한 두통과 어지럼증이 온다. 다시 거리의 벤치에 앉아서 회복을 기다렸다. 한국에 있으면 약국에 가서 가스 활명수라도 한 병 마시련만 이곳에서는 손가락 끝을 누르는 지압과 아내가 등을 두드려주는 것뿐이다. 한 시간 정도 앉아 있었을까? 가벼운 트림을 하며 가슴에 막힌 무언가가 꿀꺽하며 내려간다. 그러면서 기분이 다소 나아졌다. 



 이곳에서의 일상이 한국에서의 일상과 차이가 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몸 상태에 기복이 있는 것 같다. 정말 전에는 이런 일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작년부터 몸 상태가 예전만 하지 못하면서 이 긴 여행을 속으로 걱정하기 시작했다. 출발 전에 이런 걱정을 얘기했더니 아내는 앞서 가지 말라고 핀잔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나이가 이른 셋이니 옛날의 젊었을 때만 기억하며 모든 일을 할 수는 없다. 이제 현실을 인정하고 체력 안배, 식음 주의하며 여행을 이끌어 가야겠다.


 오후 5시가 되어 숙소에 돌아가는 중 카르푸 슈퍼마켓에 들러 사과, 망고, 딸기 등 과일과 샐러드용 야채, 모차렐라 치즈, 우유, 오렌지 주스 등을 구입했다. 살아가는 일상이라 이곳에 와서도 식품을 계속 구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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