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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현서 Sep 30. 2022

민주주의의 길

 쿠바를 제외한 중남미 모든 국가에서 대통령, 수상 등 국가원수들은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적 방법으로 선출되고 있다. 이는 중남미에 민주주의가 지배적 통치제도로 자리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개별 국가별로 민주주의적 정치제도가 운용되고 있는 현상을 보면 민주주의에 대한 복잡한 정의와 같이 서로 다른 행태와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헌법적 정부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개별 국가들이 그동안 경험한 여러 가지 역경들과 역사적 유산의 결과물이다.


 중남미는 1980~90년대 소련으로 대표되는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독재정부 종식 등 세계적 변화의 물결을 그대로 맞이했다. 브라질, 에콰도르,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칠레 등에서도 군부독재정권이 종식되었다. 파라과이에서는 1954년부터 장기집권을 유지해왔던 스트로에스네르(Alfredo Stroessner) 독재정권이 군부 쿠데타로 무너졌다.


 중미에서는 니카라과에서 산디니스타 정권이 선거를 통해 물러나고 비올레타 차모로(Violeta Barrios de Chamorro) 대통령이 취임하고 파나마에서는 미국의 개입으로 노리에가 군부독재정권이 붕괴된 뒤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엔다라(Guillermo Endara) 정권이 들어섰다.


 이후부터 미국이 주도하는 인권보호와 대의민주주의 확산이라는 정책의 틀 속에서 중남미 대의민주주의는 과거보다 더 확산되고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동안 모든 국가들의 민주주의 운용이 잘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이 기간 중에 민주주의 운용에 장애를 경험한 국가들의 형태를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베네수엘라와 같이 무책임한 좌파정권이 집권하는 경우이다.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 정권이 들어선 뒤 에콰도르, 니카라과, 볼리비아, 아르헨티나에서도 대중주의적 좌파정권이 등장했다.   


 둘째는 범죄와 폭력이 확산된 가운데 언론자유, 법의 지배 등 민주주의 지표가 후퇴한 국가들인데 멕시코, 콜롬비아,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도미니카(공) 등이 대표적 국가들이다.


 셋째는 민주적 리더십에 대한 저항을 겪은 국가로 2009년 쿠데타로 셀라야(Manuel Zelaya) 대통령이 축출된 온두라스와 2012년 탄핵으로 하야한 루고(Fernando Lugo) 대통령의 파라과이 등이다.


 중남미 민주주의는 그 정착과정에서 역사적 유산으로서 이베리아 전통, 1980년대 이전 민주주의 남용, 저개발 상황과 불공평한 소득분배, 내전, 정부 효율성 부족 등의 도전을 받았다.


  첫째 중남미에 도입되어 정착되어가고 있는 민주주의 제도는 정부 권력을 제한하는 것에 불편해하는 이베리아 반도의 전통적인 역사적 유산으로부터 도전을 받았다. 즉 전통적 정치제도로부터 수혜를 받아왔던 경제 엘리트와 군부 등 기득권 계층들은 민주주의 방식의 정치기구와 제도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이에 대한 명시적 또는 묵시적 저항을 해왔다.


 둘째 니카라과의 소모사 대통령(Anastacio Somoza Debyle)이나 도미니카(공)의 트루히요(Rafael Trujillo) 대통령들과 같은 독재자들이 민주주의적 선거를 통해 적법하게 선출되었다고 주장하며 민주주의 제도를 사실상 남용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권력에 대한 제도적 통제가 부족한 상황에서 중남미에는 강력한 리더십을 선호하는 정치문화가 만연하였다.


  셋째 20세기 마지막 10년 전후로 시작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실시에 따른 시장개방, 국영기업의 민영화, 사회복지 축소 등으로 실업이 증가하고 부의 불평등 배분 상황이 더욱 심화되어 역내 전체적으로 볼 때 빈곤계층의 비중이 크게 커졌다.


 이 결과 가난한 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빈곤계층은 기득권을 가진 부유계층들이 사회변혁을 이끌어 간다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이미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인식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하지 못하더라도 자신들의 빈곤을 걱정해주고 해결하겠다고 구호를 외치는 일련의 대중영합적인 지도자들에 의지해 변혁을 추진하고자 했다. 이러한 정치적 지형은 결국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 정권을 등장시켰고 이어서 역내에서 좌파정권 확산의 배경이 되었다.


 넷째 많은 중남미 국가들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이후부터 20세기 전반기까지 다양한 원인으로 내전을 겪었다. 내전은 1960년대의 이후 구소련 붕괴 때까지 진행된 냉전 환경 속에서 마르크스주의 게릴라 단체들이 반정부 무장활동을 전개하자 중남미 군부정권들은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살인, 고문 등 인권유린을 자행하고 이 결과 수많은 행불자들을 만드는 등 민주주의 원칙에 반하는 정치행태를 보여주었다.


 다섯째 정부 효율성 부족으로 찰스 틸리(Charles Tilly)는 ‘정부가 민주적 의사결정과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면 민주주의는 작동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중남미 국가들은 개별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지리적 또는 정치 사회적 이유로 정부 행정력이 전 국토에 완전하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행정력 부족 현상은 1970년대부터 마약 불법유통이 확산되면서 더 악화되고 있는데 이는 특히 콜롬비아, 페루, 볼리비아, 멕시코, 중미 국가들에서 더욱 뚜렷하다.


 페루에서는 마르크스주의 게릴라 단체인 ‘빛나는 길’이 수십 년 동안 우야아가 계곡(Huallaga Valley)에서 마약 불법유통과 반정부활동을 하고 있고 콜롬비아에서도 1990년대까지 메데인과 칼리 카르텔들이 전국적으로 활동하였고 이들이 몰락한 후에는 소규모 마약 불법유통조직, 민간 준군사조직(paramilitaries), 반정부 무장단체들의 준동으로 정부 행정력의 효율적 집행이 어려웠다. 21세기 들어서는 멕시코에서 마약 카르텔들이 급속하게 성장해 정부의 행정력 집행을 어렵게 하였다. 이는 결국 멕시코 마약전쟁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사상자와 인권유린 상황을 만들었다.


 1978년부터 중남미 역내에서 민주주의 물결이 확산되면서 대부분 국가들은 과거보다 자주 자유롭게 대통령을 선출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는 중남미 국가들 모두에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가 완전하게 도래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일부 국가들에서는 위임 민주주의(delegative democracy)가 자유민주주의를 대체하기도 했다.


 피터 스미스는 자유민주주의를 ‘한 국가가 자유스럽고 공정한 선거를 치르면 그것은 선거 민주주의(electoral democracy)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여기에 광범위한 시민권을 보장한다면 그것은 자유민주주의’라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광범위한 시민권이 보장되지 않은 선거 민주주의는 반 자유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로 보고 있다.


 필립 슈미터(Philippe Schmitter)와 테리 린(Terry Lynn Karl)도 선거가 자유민주주의를 정의하는 유일한 기준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열 가지 특징을 제시했다.


 프리덤하우스는 선거민주주의를 정치적 권리의 최소기준이라고 정의하고 세계의 모든 자유국가들은 선거민주주의와 함께 시민권이 보장되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프리덤하우스는 정치적 권리(political rights)와 시민권(civil rights)에 각각 40%, 60% 비중을 두고 국가 자유도를 평가하고 있다. 평가결과는 평점에 따라 자유(Free), 부분 자유(Partly Free), 부자유(Not Free)로 구분하고 있다.


 프리덤하우스의 중남미 개별 국가별 2021년도 평가결과를 보면 쿠바(12점)와 베네수엘라(14점), 니카라과(23점), 아이티(33점)등이 부자유 국가들이며 아르헨티나(84점), 브라질(73점), 칠레(94점), 코스타리카(91점), 에콰도르(71점), 가이아나(73점), 파나마(83점), 페루(72점), 우루과이(97점)등이 자유국가로 평가되었다. 볼리비아(66점), 콜롬비아(64점), 도미니카공화국(68점), 엘살바도르(59점), 과테말라(51점), 온두라스(47점), 멕시코(60점), 파라과이(65점)등이 부분 자유국가이다.


  위임 민주주의는 대통령이 주어진 임기 동안 자신이 적합하다고 판단하는 대로 통치할 권한을 부여받았다는 전제하에서 이루어지는 통치 형태로 이러한 형태에서는 의회나 정당 그리고 법원은 대통령의 정책의지를 방해하는 제도로 인식되기 때문에 이를 우회하여 정책결정과 변경이 이루어진다.  


 역내 국가들은 군부정권이 무너진 뒤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선출된 대통령을 가질 수 있었고 거의 완벽한 보통선거권을 확보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민간정부의 정책 실행이 민주주의의 틀 속에서 피상적이고 많은 한계를 노정하자 시민들의 실망감은 커졌다.


 이 간극을 빌미로 역내 대중영합주의 정치지도자들은 대중적 지지에 기대어 대통령 권한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정치체제를 구현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일명 ‘저강도 민주주의’, ‘조현 병적 민주주의’, ‘위임 민주주의’로 부르고 있다.


 기에르모 오도넬(Guillermo O’Donnell)은 위임 민주주의의 네 가지 특징을 지적하고 있다. 첫째는 대통령을 국가와 일체화시키거나 국가이익을 보호하는 후견인으로 인식한다. 둘째는 대통령은 선거 캠페인 때 발표했던 공약들을 준수할 필요가 없고 상황에 맞춰 대통령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대통령은 국가이익을 보호하는 후견자로서 그의 권위는 특정 정당의 정치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전체 국민들의 지지로부터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제반 정당과 제도들을 감독하고 지도할 수 있다고 본다. 넷째 의회나 사법부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국내외적으로 국익을 위해 하는 일에 방해가 될 뿐이라는 인식이다.


 이상과 같은 위임 민주주의 상황이 역내 국가들에게는 도래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실제는 21세기 전후에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베네수엘라,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볼리비아, 라파엘 코르레아 대통령의 에콰도르에서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 수준은 낮지만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의 콜롬비아, 네스토르 키르츠네르 대통령의 아르헨티나에서 나타났다.


 참고로 폴 손드롤(Paul Sondrol)은 위임 민주주의를 위장으로 가린 민주주의라고 부르며 네 가지 특징을 지적하고 있다. 첫째 선거를 통한 권력이동 장치를 봉쇄하고 둘째 민주주의적 위장 속에서 제도와 기구들의 역량을 약화시키며 셋째 정권 엘리트들의 조작과 통제를 통해 정치적 자유화와 경제적 자유화 간 정책 단절을 일으킨다. 그리고 끝으로 시민사회의 역량을 축소시킨다.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정권이 이에 대한 주요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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