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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l Sep 25. 2024

오랜만에 학회 참석하니 감회가 새롭네요

지금 폴란드 서쪽에 위치 도시, 포즈난에 와있다. 한국의 아열대 여름을 떠나  비행 후에 포즈난에 도착하니 여름을 훌쩍 뛰어넘어 이미 깊숙하게 자리 잡은 가을이 우리를 맞았다. 바람이 불고 비까지 내린다. 쌀쌀한 날씨에 먹는 따끈한 커피가 유독 맛있게 느껴지고 어깨에 두른 숄도 포근하고 따뜻하다.


포즈난은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하는 남편을 따라왔다. 처음에 나는 그냥 따라만  생각이었다. 남편이 학회에 참석하는 동안 나는  수도였던 포즈난(아래 지도에서는 원음에 가까운 '포즈나뉴')의 유적지와 시내 곳곳을 둘러볼 계획이었다. 폴란드는 아주 오래전 한번  적이 있다.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남쪽에 위치한 오이시비엥침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그리고 인근 비엘리치카에 있는 소금광산에 갔던 기억이 가물거린다. 그때도 학회 끝난  잠깐 들렀던  같다.

출처: 구글 지도


그런데 남편과 함께 발표 세션 하나를 책임진 한국인 원로 교수님이 집안에 일이 생겨 학회 참석이 어렵게 되었다. 교수님은 이왕 내가 포즈난에 가니 교수님이 맡은 역할을 내가 대신해 줄 수 있냐고 물으셨. 나는 은퇴 후 학회에 가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자연히 공부도 멀어진 상태라 학회 일을 맡기가 망설여졌다. 교수님은 담당하신 발표 세션을 주제별로 분류하는 등 이미 큰 일을 다 하셔서 나는 세션 발표장에서 사회만 보면 된다. 학회에서 사회자의  역할은 발표자와 발표 논문 제목을 소개하고, 발표가 끝나면 질의응답 시간을 조절하는 것이. 교수님이 맡은 세션은 학회 첫날은 오후만, 이틀째와 사흘째는 오전과 오후 하루종일 삼일 동안 진행된다. 대부분 논문을 발표하고 다른 서람의 논문을 들으러 학회에 가기 때문에 3일 내내 사회 볼 사람을 갑자기 찾기 어려울 것 같고, 나도 오랜만에 잊고 있었던 학회 분위기도 맛보고 싶어 교수님에게 대신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불이 발등에 떨어져 마음이 급해졌다. 폴란드 관련 글과 포즈난에서 돌아다닐만한 곳 느긋하게 인터넷에서 검색하던 일을 멈추고, 부랴부랴 30명 가까이 되는 내가 맡게  세션의 발표자들의 초록을 읽어 내려갔다. 특정 분야가 아닌 포괄적인 일반 세션이라 발표 분야도 광범위했다.  전공을 벗어난 발표가 다수였다. 방청석에서 질문이 없을 경우, 사회자가 발표에 대해 논평 또는 질문을 던져 해서 방청석에서 질문이 많이 나오기 고대했다. 다행히 내 바람대로 발표가 끝날 마다 방청석에서 질문을 하기 위해  드는 사람이 여기저기 많았. 질의응답 시간이 짧아 손을 든 사람 모두에게 질문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다음 발표가 기다리고 있어 질문을  받을  없으니 휴식 시간을 이용해 개인적으로 발표자에게 질문하라는 말로 끝맺어야 했다.


의자에 장시간 앉아있는 일이 별로 없다가 3일 동안 붙박이로 자리를 지키며 세션 진행에 신경을 쓰다 보니 시차 적응도 필요 없이 숙소에 가면 쓰러져 잤다.


학회는 일요일부터 금요일까지 6일간 지속되었다. 처음 삼일 동안은 세션 사회를 맡고, 나머지 3일은 관심 가는 발표를 들으러 다녔다. 은퇴 전으로 거슬러 돌아가 학회에 참석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고무되었.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처럼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 예전의 내가 학회장을 누비고 다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학회장에서 특히 눈에 띈 분들은 우크라이나에서 온 학자들이었다. 폴란드와 국경이 맞닿아 지리적으로 가깝다고는 하지만 지금 한창 전쟁 중인데 학회에 참석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관심과 호기심이 생겨 우크라이나 학자들의 발표를 몇 개 들었다. 그중 한 분은 기조 강연을 한 키이우 보리스 그린첸코 대학의 이사벨라 부니야토바(Isabella Buniyatova) 교수. 단상에 나타난 부니야토바 교수는 인터넷에서 찾은 젊을 때의 모습이 아니라, 세월의 흐름을 실감케 하는 나이 지긋한 모습이었. 우크라이나 국기색인 랑과 노랑으로 준비한 부니야토바 교수의 센스 있는 PPT 자료가 인상적이었다. 발표 제목은 '우크라이나에서의 사회언어학적 상황'이다.


부니야토바 교수의 기조 강연

부니야토바 교수는 전쟁이 일어난 이후 우크라이나어와 러시아어에 대한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태도가 급격하게 달라졌다고 했다. 오랜 세월 러시아의 지배를 받는 동안 러시아어는 우크라이나에서 공식어였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러시아어로 공부해야 했고 관공서 등의 업무도 러시아로 봐야 했다. 그 영향으로 독립 후 우크라이나어가 공식어가 되었음에도 다수의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전쟁이 터지고 나서부터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달라졌다. 러시아어를 배척하고 우크라이나어를 사용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출판사와 작가들도 전쟁 후 러시아어 대신 우크라이나어로 돌아섰다. 볼로디미르 라페옌코(Volodymyr Rafeienko)는 우크라이나의 저명한 작가로 러시아어로만 글을 써왔다. 라페옌코는 현재 러시아의 지배하로 들어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시 도네츠크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도네츠크는 러시아어가 주로 사용되는 지역이라 라페옌코는 우크라이나 사람이지만 당연하게 러시아어를 사용했다. 살고 있던 도네츠크가 러시아에게 침공당하자 라페옌코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로 거주지를 옮겼다.

출처: 구글 지도

이우에 처음 가서는 우크라이나말로 가게 점원과 대화 나누기도 어려웠지만, 각고의 노력으로 공부한 끝에 우크라이나어로 그의 7번째 책 <몬데그린: 죽음과 사랑에 대한 노래>(2019)발간하기에 이르렀다. 라페옌코처럼 도네츠크에서 키이우로 피신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라페옌코는 이제 말은 물론 생각도 러시아어가 아닌 우크라이나어로 한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어로 쓴 두 번째 책도 곧 발간 예정이다.




부니야토바 교수 외에도 학회장에는 머리 하얗고 주름진 나이 드신 학자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은퇴를 하면 학회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이나 유럽 대학에서는 정년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나이 들어서도 계속 공부하고 학회 활동까지 열심히 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갑자기 한 세션을 맡게 되어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은 학회 담당자70대 중반이 훌쩍 넘은 네덜란드인 교수다. 이번에 참석 못하신 80대 초반 한국인 교수님은 유럽에 기반을 학회에서 아직까지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연구뿐 아니라 학회 활동도 꾸준히 하는 연로하신 노학자들의 체력과 열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퇴 전까지 서울 집과 지방 직장을 오르내리며 바쁘게 살았으니 이제 일상에 안주하며 느긋하게 소확행을 즐기고 싶은 안이한 나랑은 너무도 다른 그분들께 깊은 존경과 경의를 표하고 싶다.




<참고문헌>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3/oct/04/russian-language-war-ukrainian-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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