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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버님, 형님과 함께 본 저녁노을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by hazel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고층건물들 뒤로 붉은 노을이 숨어있다. 건물 사이사이 보이는 수평선 노을이 아름답다. 문득 지난달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서 본 황홀했던 석양이 떠오른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불안하고 어두운 우리나라 상황 때문일까. 불과 한 달여 전 일이 까마득히 먼 과거처럼 느껴진다.




여행사가 카톡으로 보낸 패키지여행 광고 사진들을 무심코 넘기다가 코타키나발루의 저녁노을에 눈길이 멈췄다. 하늘과 바다에 물든 노랑과 주홍, 분홍과 보랏빛이 신비롭다.

여행사 광고 사진

월요일 저녁에 떠나 금요일 아침에 오는 주중 일정이다. 3박 5일. 여행 두 번째 날 하루 종일, 그리고 그다음 날 오전까지 긴 자유시간이 이어진다. 조식은 호텔에서 매일 제공하지만 중식과 석식 몇 번은 개인별로 자유롭게 먹는다. 반딧불 투어, 선셋 투어 선택관광을 하면 석식이 포함되어 자유식 횟수가 줄어든다.


쉼이 있는 느긋한 일정이라 남편도 좋아할 것 같아 코타키나발루 선셋 사진을 남편 코 앞에 들이밀었다. 오래전 일정이 맞지 않아 코타니발루에서 열린 학회에 가지 못 한 적이 있다며 남편도 관심을 보였다. 남편과 나, 둘 다 백수지만 통으로 비어있는 한 주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약속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겨 월요일에 떠나 금요일에 돌아오는 여행 일정에 맞추었다.


남편이 시댁 형제 단톡방에 올린 코타키나발루 패키지여행을 보고 형님도 흥미를 보였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형님 부부도 코타키나발루는 가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럼 형님도 같이 가요!"라고 했더니 바로 아주버님과 형님도 우리 일정에 맞춰 패키지여행을 신청했다. 즉흥적으로 네 사람의 여행이 결정되었다. 시동생 부부는 아직 일을 하고 있어 주중에 가기 어렵다. 형제들 모두 같이 가는 가족 여행은 여러 번 했지만 아주버님 부부와 넷이 가는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음이 넉넉한 형님과 가는 첫 여행이라 흥분되었다. 형님 역시 설렌다고 했다.


이번 여행 중 백미는 단연 '탄중아루' 해변에서 본 석양이다. 해변에 열대성 소나무 '아루'가 많아 이름을 '탄중아루' 지었다고 한다. '탄중'은 해변이라는 뜻이다. 저녁노을이 아름다워 이 여행을 택했는데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아주버님과 남편이 저무는 해를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 형님과 나도 옆에 서서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황홀한 순간을 볼 수 있어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형님과 속삭였다. 더 나이 들어 몸이 불편해지기 전에 또 함께 여행을자고 했다. 네 사람 모두 인생의 노을에 접어든 70대 초중반이라 코타키나발루 노을에 더욱 끌렸던 것 같다. 문득 나를 70대에 포함시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말로는 내가 아직 만으로 60대 후반이라고 우기지만 어느새 내 마음속에는 세는 나이 70세가 자리 잡고 있었나 보다.


점점 수평선 밑으로 떨어지던 태양이 이내 사라져 버렸다. 수평선 아래로 꼴깍 숨어버렸다. 그렇지만 하늘과 바다에 강렬하고 찬란한 노랑과 주홍빛 잔광은 그대로 남아있다. 자기 역할을 다 끝내고 자신의 흔적을 잠시동안이지만 하늘과 바다에 아로새겨 놓고 떠나는 태양의 모습이 경이롭다.


태양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서있는 우리를 보고 가이드가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부부끼리 손을 잡으라고 했다. 앞모습 대신 얼굴 주름이 보이지 않는 뒷모습을 찍는 가이드는 역시 베테랑이다.


가이드는 또 두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라고 했다. 맞댄 두 엄지 손가락을 밑으로 최대한 잡아내려야 예쁜 하트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열심히 엄지를 끌어내린 덕에 하트 밑 부분이 뾰족해졌다.


패키지여행이지만 자유시간이 있어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었다. 가이드가 추천해 준 코타키나발루에서 가장 크다는 '이마고' 쇼핑몰 지하에서 먹은 말레이시아 음식이 생각난다. 이름은 잊었지만 아주버님이 특히 좋아하셨던 새콤달콤한 큰 생선을 한번 더 먹어보고 싶다. 그리고 살랑살랑 바람에 머리칼을 맡긴 채 일렁이는 저녁 바다를 보며 먹은 해산물도 기억에 남는다. 내가 해물을 좋아한다며 형님 몫의 랍스터와 새우를 내 접시로 덜어줘 민망하고 고마웠다. 늘 베푸는 맏며느리 형님이다.


버스 여행 내내 아주버님은 남편과 나란히 앉았고, 형님은 나랑 같이 앉았다. 두 형제가 하루 종일 저렇게 가까이 앉아 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을까? 남편보다 세 살 많은 아주버님도 이런저런 병이 있지만 오히려 동생에게 생긴 병이 안쓰러워 배려하고 걱정한다.


해가 지듯 우리 인생도 언젠가는 저물 것이다. 코타키나발루 석양을 바라보며 우리가 떠난 후 남겨진 흔적이 고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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