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by hazel


차 안에서 건너편 도로를 달려오는 119구급차를 봤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절로 이 말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엄마는 유머 있는 분이셨다. 알츠하이머가 있었지만 재치 있는 말을 툭툭 던지셨다. 식사를 잘하시고는 바로 "우리 밥 언제 먹어?"라고 물으시곤 했다. "엄마, 방금 드셨잖아요." 하면 잠깐 눈을 동그랗게 뜨셨다가, "그래? 내가 이제 늙었나 보다. 나는 괜찮은데 너 먹으라고 그러는 거지." 하며 겸연쩍게 웃으셨다. 소파에 남편이 앉아 있으면 "O 서방 챙기려고 그러는 거야." 하셨다. 예쁜 치매셨다.


고관절 수술 후에도 잘 걸어 다니셨고, 가끔 동네 산책도 나가셨다. 세는 나이로 아흔일곱. 그래도 우리는 당연히 엄마와 오래 함께할 거라 믿었다.


그날은 구정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TV에는 이탈리아 밀라노-코르티나에서 열리고 있는 2026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이 한창이었다. 평소라면 엄마가 "참 예쁘다!"라고 한마디 하셨을 텐데, 그날은 소파에 앉아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떨구고 계셨다. 엄마는 소파에서 스르르 잠드시는 일이 많았다. 침대 가서 누우시라고 하면 "TV 보고 있는 거야" 하며 소파를 떠나지 않았다. 그냥 또 주무시나 했다.


그런데 입가에 음식물이 흘러 있었다. 아까 샤워도 깨끗이 하셨는데. 닦아드리려고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나는 멈칫했다.


핏기가 없었다. 보통 때의 엄마 얼굴이 아니었다.


두 남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상하게 둘 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예전에 유튜브에서 들은 말이 떠올랐다. 위급 상황엔 어설프게 병원에 가려하지 말고 119를 불러라.


손이 떨렸다. 전화기 너머 남자 목소리가 엄마 상태가 어떠시냐고 물었다. "엄마가 이상해요." "보통 때랑 달라요."


남자 목소리는 엄마를 꼬집어 보라고 했다. 엄마 팔을 꼬집었다. 반응이 없었다. 목소리는 차분하게 말했다. "전화 끊지 마시고, 평평한 곳에 눕히세요."


소파에서 바닥으로. 40kg밖에 안 되는 엄마가 그 순간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잘 안 돼요." 그만 눈물이 쏟아졌다. 목소리는 말했다. "천천히 해보세요. 잘할 수 있어요."


그 한마디가 나를 붙잡았다.


조심조심 당겨 카펫 위에 엄마를 뉘었다. 목소리는 가슴 한가운데를 양손으로 겹쳐 힘껏 눌러 펌프질을 하라고 했다. "하나, 둘" 구령을 불러줬다. 나보고 구령을 따라 하라고 했다. 잠시 후 목소리는 단호하게 말했다. "구령은 제가 할게요. 펌프질에만 집중하세요."


목소리 남자는 마치 내 옆에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분명하고 절도 있게 알려줬다.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처럼 의지가 되고 위안이 되었다.


정신없이 온 힘을 다해 엄마 가슴에 펌프질을 했다. 곧 119 대원이 왔다는 벨소리가 들렸다. 여자 한 명, 남자 한 명. 그 순간부터는 그분들이 무릎을 꿇고 엄마 가슴에 압박을 가했다.


엄마는 그날 하늘나라로 가셨다.




이제 119 차량을 보면 그 목소리가 떠오른다. 허둥대는 나에게 전화 끊지 말라고, 당황하지 말고 펌프질을 열심히 하라고 말해 준 목소리. 덕분에 나는 흔들리지 않고 엄마의 마지막을 곁에서 지킬 수 있었다.


지나가는 119구급차를 향해 나는 울먹이며 되뇌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