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았던 우리는 더 줄어들고, 아이들은 훌쩍 크고
요즘 전철을 타거나 길을 걸을 때면 젊은이들의 키가 눈에 띈다. 훌쩍 크다. 우리 세대가 젊었을 때와 확연하게 다르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 세대의 체격이다.
며칠 전, 예전 직장 동료들을 만났다. 같은 중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이기도 해서 우리 네 명은 은퇴 후에도 꾸준히 만나고 있다. 식사를 마치고 같은 건물에 있는 유니xx 매장 앞을 지나는데, 선배 한 분이 발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친구가 여기서 키즈 사이즈 기모바지를 샀는데 우리한테 딱 맞고 좋대요. 한번 들어가 볼래요?"
선배를 따라 우리는 키즈 바지 진열대 앞으로 갔다. 마침 1만 원 할인까지 하고 있었다. 기모 바지는 색상과 사이즈별로 선반 위에 잘 정리되어 있었다. 키가 큰 편인 한 선배와 동기는 베이지 160 사이즈를 골라 입고 "허리도 기장도 딱 맞아!" 하며 아이들처럼 웃었다. 키가 작은 편인 선배도 청색 150 사이즈를 입고 잘 맞는다며 우리 앞에서 빙그르르 한 바퀴 돌았다.
"아동복이 우리한테 맞다니!" 누군가의 말에 우리는 한바탕 깔깔대며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얼마 전 바지를 새로 샀기 때문에 이번엔 사지 않고 세 사람의 유쾌한 아동복 쇼핑을 지켜보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신기한 듯, 흡족한 표정으로 거울 속 자신들을 살피는 동료들의 모습에 수십 년 전 미국 유학 시절의 내 모습이 겹쳐졌다. 아마도 1980년대 초반이었을 거다. 성인용 바지는 도무지 맞는 게 없었다. 허리며 기장이 크고 길었다. 가게를 몇 군데 전전하다 결국 발길을 돌린 곳은 아동복 매장이었다. 그제야 나한테 꼭 맞는 바지를 찾을 수 있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때의 기분이 선명하진 않다. 맞는 사이즈를 찾아 안도했을까? 아니면 서양인들에 비해 작은 내 체격에 움츠러들었을까? 내가 작기도 하지만 저들이 커도 너무 큰 것이라며 스스로를 달랬을 것 같기도 하다.
40여 년이 흐른 지금, 나는 한국에서 다시 아동복 바지를 마주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느끼는 감회는 그때와는 다르다. 우리가 아동복을 사는 이유는 미국 사람들의 큰 키 때문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키가 훌쩍 커졌고 우리는 나이 들어 더 작아졌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계산을 하는 동안 매장 주변을 지나가는 젊은이들을 바라보았다. 크고 당당한 그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세월에 밀려 우리의 키가 줄어든 것은 서글프지만 젊은이들이 건강하게 커진 모습은 뿌듯했다. 미국에서와는 전혀 다른 든든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