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계산하실 건가요?

처음으로 나도 따로 계산했다

by hazel


“두 분 따로 계산하실 건가요?”


남편과 동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계산대로 갔을 때, 아주머니가 내 손에 든 카드를 보며 물었다. 남편은 저 멀리 우리가 먹던 테이블 옆에서 외투를 입고 머플러를 두르고 있었다.


“네?” 내가 놀라 말했다. “함께 와서 따로 계산하는 사람이 보네.”


“장사하다 보면 온갖 손님이 다 있어요. 같이 와서 각자 따로 내기도 하고, 여럿이 와서 한 사람은 두 사람 것만 내고 나머지는 각자 내기도 하고… 정말 별의별 손님이 다 있다니까요.” 아주머니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슬며시 웃음이 났다. 얼마 전 나도 그 대열에 끼어 있었으니까.




지난 토요일, 소설 읽기 모임 1주년을 기념해 점심을 함께 먹기로 했다. 작년 겨울부터 네 명의 여성이 2주에 한 번씩 만나 영어 소설을 돌아가며 낭독하고 있다. 뇌과학자 김대식 교수는 “나이가 들수록 사물을 듬성듬성 인지하게 되어 시간이 더 빨리 가는 것처럼 느낀다”고 한다. 정말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났다. 마침 낭독하던 책도 끝나는 날이라 타이밍이 좋았다. 모임 리더가 제안한 요즘 뜨는 익선동 한 한옥 카페에서 책을 읽은 후, 우리는 복잡한 인파를 가르며 가까운 맛집으로 향했다.


메뉴가 너무 많아 무얼 고를지 고민하다가 생선을 좋아하는 나는 고등어가 올라간 솥밥, 두 사람은 가지 솥밥, 그리고 한 사람은 닭튀김 솥밥을 시켰다. 네 사람 모두 엄지척을 하며 먹었다. 아침에 책 읽기로 에너지를 쓴 데다 음식도 우리 입맛에 맞아 네 사람 모두 맛있게 그릇을 비웠다.


식사를 끝내자 젊은 분 중 한 사람이 “각자 따로 계산할까요?”라고 말했다. 순간 놀랐다.


우리 모임은 40대 두 사람과 나보다 세 살 어린 60대 한 사람, 그리고 70세인 나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는 토요일 아침 10시, 카페에 도착하는 대로 각자 자기 음료를 사서 카페 방으로 간다. 낭독 후 점심을 먹게 되면 처음에는 돌아가면서 내다가 1/n로 나눠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은 점심도 각자 카드로 따로 다.


문득 지난 2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당시 막 출산을 한 며느리가 머물던 산후조리원 근처 작은 식당에서 남편은 곰탕, 나는 꼬막비빔밥을 먹고 있었다. 착한 가격과 맛 때문인지 식당은 젊은 손님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옆 테이블의 젊은 남자 둘, 여자 하나가 식사를 마치자마자 각자 카드를 꺼내 들고 계산대로 갔다. “요즘 젊은 세대는 따로 계산하나 보네.” 남편에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그 풍경이 그저 신기했다.


그러나 지금, 나도 바로 그 상황 한가운데 서 있다. 나도 젊은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내 또래 친구들은 1/n로 계산한다. 보통 식사 후 카페로 자리를 옮기는데, 한 사람이 식사값과 찻값을 계산하면 나머지는 똑같이 나눈 금액을 계산한 친구에게 송금한다.


카페에서 내가 늘 주문하는 메뉴는 카페라테다. 친구들 대부분은 아메리카노를 선택한다. 라테가 몇 백 원, 어떤 곳은 천 원 가까이 더 비싸 작은 미안함이 있었다. 1/n로 똑같이 나누니 내가 더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몇 번은 1/n에 조금 더 얹어 계산한 친구에게 송금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모두에게 돌아가는 게 아니라 해결책은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서 밤에 잠을 설치는 친구들이 늘어 커피 대신 허브차 주문이 많아졌다. 디카페인을 선택하는 친구도 생겼다. 허브차는 대개 커피보다 비싸고 디카는 추가 금액이 붙는다. 가격이 다양해지니 라테를 먹는 내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친구들도 젊은 사람들처럼 “자기가 먹은 만큼 내면 어떨까?” 라테를 마시면 라테 값을 내고,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아메리카노 값을 내는 거다. 그럼 비싼 차를 주문한 사람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텐데. 하지만 70세 우리 친구들이 이 방식을 어떻게 생각할까? 정이 없다고 여길 것이다. 야박하다며 손사래를 칠 것이다. 우르르 계산대에 가서 한 명씩 카드를 내미는 것도 번거롭고, 식당도 귀찮아할 것이다. 아직은 1/n이다.


하지만 1/n 방식도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했다. 그런데 몇 번 하다 보니 어색함이 사라졌다. 지금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되었다.


언젠가는 ‘각자 계산’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 세상은 계속 변하니까. 우리의 마음도 함께 변해가니까.



카드 사진 출처: Free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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