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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잭변 LHS Nov 30. 2020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개연성 없고 불쾌한 판타지

그 모든 사건을 기억하는 우리에게, 이 영화가 이리 불쾌한 이유


영화의 시작은 좋았다.


90년대는 남녀차별, 학력차별, 대기업의 환경파괴가 아무렇지 않던 시절이었고, 그 모습들을 보여주는 초반부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성공할 것 같았다.


사라져버린 진범


그런데, 중반 이후, 이 영화에서는 이런 차별들에 대한 고발의식이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돈많은 외국인”의 등장은 마치 절대악의 재림이라서, 시스템에 빌붙어 잘나가던 남자직원도, 사건 초반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은 대기업 회장님도, 모두 ‘우리의 편’으로 묶어버리는 이상한 결론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과연, 90년대의 한국에서는 돈많은 외국인이 절대악이고, 나머지는 모두 우리 편이었던 것인가? 과연 그런 것인가? (실제 IMF 이전인 90년대 초반에는 외국 투기자본이 우리나라에 들어올 이유도, 제도도 제대로 없었다는 점을 영화는 말하지 않는다.)


실제 사건이 배경이 되었던 페놀 유출사고를 살펴보자. (출처 : 인터넷 두산백과)


1991년 3월 14일 경상북도 구미시 구포동에 있는 두산전자의 페놀원액 저장 탱크에서 페놀수지 생산라인으로 통하는 파이프가 파열되어 발생했다. 30톤의 페놀원액이 옥계천을 거쳐 대구 상수원인 다사취수장으로 흘러듦으로써 수돗물을 오염시켰다.

페놀원액은 14일 밤 10시경부터 다음 날 새벽 6시까지 약 8시간 동안이나 새어 나왔으나 발견하지 못했고, 수돗물에서 악취가 난다는 대구 시민들의 신고를 받은 취수장측에서는 원인을 규명하지도 않은 채 페놀 소독에 사용해서는 안 되는 염소를 다량 투입, 사태를 악화시켰다. 다사취수장을 오염시킨 페놀은 계속 낙동강을 타고 흘러 밀양과 함안, 칠서 수원지 등에서도 잇따라 검출되어 부산, 마산을 포함한 영남 전지역이 페놀 파동에 휩쓸리게 되었다.

이 사고로 대구지방 환경청 공무원 7명과 두산전자 관계자 6명 등 13명이 구속되고, 관계 공무원 11명이 징계 조치되는 등 환경사고로는 유례없는 문책인사가 뒤따랐다. 또 국회에서는 진상 조사위원회가 열렸고, 각 시민 단체는 수돗물 페놀 오염대책 시민단체 협의회를 결성하였으며, 두산 제품 불매운동이 확산되기도 하였다.

두산전자는 조업정지 처분을 받았으나, 페놀 사고가 단순한 과실일 뿐 고의성이 없었다는 이유로 20일 만에 조업 재개가 허용되었다. 그러나 4월 22일 페놀탱크 송출 파이프의 이음새 부분이 파열되어 또다시 페놀원액 2톤이 낙동강에 유입되는 2차 사고가 일어남으로써 사태가 악화되어 국민들의 항의 시위가 확대되었다. 마침내 두산그룹 회장이 물러나고, 환경처 장차관이 인책, 경질되는 결과까지 초래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낙동강페놀오염사건 (두산백과)


이 사건 어디에도 '외국인'이 개입했다는 증거는 없다. 이 사건에서 비난받아야 할 것은, 우리나라 특유의 피라미드형 대기업과 무사안일주의에 젖은 행정청의 관료였을 뿐이다. 이 사건과 관련이 없는, 비난하기 쉬운 외국인은 실제 페놀방류 사건의 조연조차도 아니었다는 말이다. 



사라져버린 소수자들의 결말


또, 실제 여자 100명당 남자가 119명씩 태어나던 90년대, 여성 근로자들은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되었을까? 페놀 유출사고 이후 무려 7년이 지난 시점의 기사이다. 


98.04.24. <연합뉴스>, 여성부당해고 실태-“커피 안 타준다고 해고 등”

정영애 숭실대 강사는 IMF이후 여성근로자들의 부당해고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등을 통해 수집해 공개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ㄱ. 사무실 분위기를 차갑게 했다고 해고. 직원들에게 커피도 잘 안 타주고 싹싹하지 못했다는 것.

ㄴ. 모 건축회사, 사내 부부 7쌍을 불러다 놓고 “둘 중에 누가 그만두겠느냐”고 말해 결국 여직원들 모두 퇴사.

ㄷ. 백화점 측이 판매사원을 모두 젊은 사람으로 교체해 달라고 요구해 해고.


이 영화가 말하는 것처럼 90년대 토익을 잘하게 된 여성들이 잘나가긴.. 개뿔이다.

 여성들에 대한 그 부조리는 90년대에도, 지금도 결코 완전히 사라진 적이 없다. 


영화가 외면하는 질문들 


이 모든 사건을 알고 있는 우리의 머릿속에는 영화가 마쳐지면 불쾌한 질문만이 계속 맴돈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이 질문들에 한 번 대답해 보기 바란다. 


영화에서, 페놀 오염수를 마신 산모는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었을까? 과수원의 주인은 병을 다 치료할 수 있었을까? 그 딸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장님은 마을 사람들에게 이 모든 사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을까? 

영화는 그냥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얼머부릴 뿐. 보상금만 몇푼 쥐게 된 이들의 얼굴은 왜 영화 말미에 보여주지 않는 것일까? 보상금만 받으면 이들의 상처는 치유될 수 있는 것인가?


영화에 잠시 등장했던 이 모든 약한자들의 결말에 대해, 영화는 정말 놀랍게도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토익만 잘하면 이들은 진짜로 대리가 될 수 있었나? 수학 천재이지만, 가세가 기울어 어쩔 수 없이 상고에 가, 떠듬떠듬대며 이야기하는 주인공이, 만약 업무에 치여 자신의 전문분야도 아닌 토익을 공부하지 못하여 정리해고 당한다면, 이것은 결국 열심히 하지 못한 그의 책임이라고 손가락질해야 하는가?


왜 숫자와 추리와 정의감각에 능력있는 자들이, 그 스스로의 능력들을 발휘하여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정해준대로, “거대한 악인 외국투기자본”이 사용하는 영어를 공부하여 토익 600점을 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그래서, 토익 600점을 넘긴 주인공들은 승진을 했으니, 토익 600점을 넘기지 못한 다른 엑스트라들은 더욱 회사에서 위험한 입장에 놓였을테지만,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지 영화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가 90년대를 추억하는 방법 

결국, 이 영화는 90년대에 치열하게 살아남아야 했던 소수자들이 용기있게 시스템의 부조리를 폭로하는 영화가 아니었다.


이 영화는 그 때 당시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던 “외국 투기자본”이라는 알 수 없는 악의 등장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차별받던 자들이, 피라미드의 정점에 선 회장님과 한 편을 먹고 시스템을 수호하는 판타지를 그린 영화이다. 그리고, 시스템이 요구하는 토익 600점을 넘겨 승진할 수 있었던 그 일부 능력있는 소수자들은, 너희는 나처럼 엄청 잘나지 못해서, 시스템을 뛰어넘지 못한거 아니냐고 살짝 비웃고 있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배려없는 모습과, 시스템에 대한 적응이, 고작 우리가 이루어낸 변혁의 90년대를 추억하는 방법인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사라진 진짜 소수자들의 승리

90년대 여성과 소수자와 우리가 혁파해 온 것은 '관료주의'와 '차별로 점철된 기업의 시스템'이었고, 그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그렇게 수십년간 바꾸어 온 실제 역사의 여정을 분명 우리 국민은 분명 자랑스레 여겨도 된다. 하지만, 재벌기업의 족벌경영을 일삼는 회장과 바뀌지 않는 관료주의와 타협하는 소수자를 보여주는 것이, 그리고 그것이 실제 사건에서 등장하지도 않았던 허구의 "외국인"을 타파한다는 목적이어서 정당화된다는 것이, 고작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판타지라면, (그리고 심지어 그 판타지가 만듦새조차 좋치 않다면) 나는 이 영화를 만든 자들에 대한 앞으로의 어떤 기대도 접을 수 있을 것 같다. 


어차피 실제 사건 당시에 등장하지도 않았던 절대악인데, "외국인"이 아니라, 정신나간 큐어넌이 주장하는 것처럼 "외계인"이었으면 어땠으랴. 그랬으면 웃기기나 했을 것 같다. 


p.s. 실제 일어난 사건의 범인까지 잡범으로 옹호해가면서 '민족의 주체성'만을 강조하는 영화가 꿈꾸는 사회는, 민족의 이름으로 관료주의 사회를 구축한 북한의 주체사상이 꿈꾸는 사회와 다른 것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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