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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잭변 LHS Feb 13. 2023

기억해요. 내 친구. 착해지면 좋은 일이 일어나요.

필리핀 마리오의 이야기

“말도 마세요. 그때 2주 동안 갇혀 있었어요.”


필리핀 보홀 시티관광을 마치고 알로나비치로 가는 차 안, 마리오는 우리를 실어 나르는 내내, 운전대를 잡고서는 쉬지 않고 이야기를 꺼낸다. 지금 마리오는, 코로나 사태 때의 필리핀 상황이 어땠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도, 마리오는 가족들과 함께 있어서 외롭지는 않았겠네요.”

“네, 사실 그건 좋았어요, 내 친구. 그래도 그때는 가이드 일로 돈을 못 벌어서 큰 일이었죠.”

“그랬겠네요. 보홀에도 관광객들이 없었을 테니. “


마리오는 외국인들을 상대로 보홀 시내를 가이드해 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오늘의 관광객은 나와, 뒷자리에서 깊이 잠들어 버린 내 친구 단 두 명이지만, 코로나 전에는 제법 큰 무리의 사람들도 함께 가이드를 했다고 한다.


“그래도, 한국 사람들은 항상 친절한 편이에요. 다른 나라 사람들 보다도요. 아, 일본인들도 함께 친절해요 “


한국인인걸 알아서 립서비스를 하는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환한 미소로 칭찬해 주는 마리오의 표정만 봐서는 거짓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면 관광객들이 없는 동안에는 어떻게 생활했어요?”

“가족을 도와 농사를 지었어요. 저희 부모님이 원래 다 농사를 지어요. 그런데 사실 농사를 지어서 저와 제 다섯 동생들까지 생활하기에는 돈이 부족했죠.”

“다섯 동생이요?”

“네, 여섯 형제자매가 있어요. 내 친구. 제가 제일 첫째예요. 그래서 제가 돈을 벌어서 동생들을 도와야 해요. 그래서, 가이드를 16살부터 했어요. “

7년전이라지만 16살 때의 마리오가 운전을 해서 돈을 버는 게 불법은 아니었을지 조금 걱정은 되었지만, 나는 그냥 그런 말들은 삼킨다.


“마리오 참 착하네요 “

“뭘요. 당연한 거예요. 신께 감사하죠. “


그는 차 안에 매달린 십자가를 한 번 힐끗 바라본다. 정신없이 흔들리던 십자가는 마리오가 쳐다보자 잠깐 느려진 것 같기도 하다.


”마리오 차에 십자가가 있네요. 종교가 있나 봐요 “

“네, 가톨릭이에요. 내 친구. 혹시 크리스천이에요? “

“아니요. 저는 종교가 없어요. “

“괜찮아요, 내 친구. “


그러고 보면, 필리핀은 어디를 가나 가톨릭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십자가를 차에 매달고 다니고, 동네마다 성당은 사람들의 모임의 장소가 된다. 한 번은 길거리에서 교회에서 나오는 성축일 인파에 휩쓸린 적이 있는데, 무슨 세속적인 축제인양, 사람들은 새하얀 성모를 모시고 환하게 웃으며 신나게 행진하고 있었던 기억이 났다. 나도 인파에 휩쓸려 함께 잠깐 행진했더니 필리핀 사람들도 함께 환호해 줬던 기억이 났다. 잠깐 그때의 생각을 하자니 희미하게 웃음이 지어졌다.


“늘 잘 때 기도를 해요.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해 달라고요. “

마리오는 한 손으로 십자가를 가리키며 이야기한다.


“그렇군요. 기도가 잘 듣나요?”

“그럼요, 내 친구. 기도를 하면 내가 착해져요. 내가 착해지면, 좋은 일이 일어나더라고요.”


마리오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몇주 전에도, 내가 가이드를 했던 네덜란드 인 한 명이, 여권을 잃어버렸다고 갑자기 연락이 왔더라고요. 아마 연락할 데가 없어서 저한테 연락했나 봐요. 나도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걱정이 되어서 그 사람을 데리고 경찰서로 갔어요. 도와주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경찰이 결국 그 사람 여권을 찾아줬어요. 기적이죠. 내 친구. “

“그래서 마리오에게도 좋은 일이 일어났나요? 돈도 많이 받고 그랬어요? “

“아니, 아니요. 그래도 좋은 일이 일어났잖아요. 그 사람이 지갑을 찾았잖아요! 내가 착해져서, 결국 좋은 일이 일어난 거죠.”


마리오가 우리를 싣고 달리는 도로는 어느새 어둑해져가고 있었다. 운전석 너머로 비치는 석양이 마리오의 하얀 미소를 빛나게 하고 있었다.


“기억해요. 내 친구, 기도하면 착해지고, 착해지면 좋은 일이 일어나요.”


이 나라를 여행하며 다른 곳에서 듣는 ‘내 친구’라는 말은 어딘가 관행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마리오가 나를 부르는 ”내 친구“라는 말은 진심에서 나오는 이야기 같았다. 평소 다른 사람들이 내게 이야기하면 잘 귀 기울이지 않던, ‘기도하라’는 권유도, 마리오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느껴져 괜히 고마워졌다.


“네, 기억할게요. 고마워요 마리오.”


저녁의 어스름함에, 길가에 늘어선 허름한 집들에서는 하나 둘, 착한 불들이 켜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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