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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잭변 LHS Sep 17. 2023

홍범도 장군에게 이름 붙이기

홍범도 장군에게 ‘공산주의자’란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무엇인가

피아식별이라는 사람들의 본능

사람들의 습성 중 하나는, ‘우리 편’과 ‘다른 편’을 구분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아마도, 오랜 수렵생활에서 빚어진 습성일 것이고, 빠른 피아식별이야 말로 오랫동안 인류에겐 필수적인 생존능력이었을 테니, 사람이 그런 습성을 가졌다는 점이 현대에 와서야 안타깝지만, 인간의 본성 중 하나임을 부인할 수는 없겠다.


특히, 쉽게 이름 붙일 수 있는 ‘어떤 기준‘을 근거로 ’ 우리‘와 ’ 그들‘을 구별하면, 그런 구별에 동조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그 구별이 차별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어떤 나라에서는 그 차별의 기준이 ’ 인종’이기도 했고, ‘국적’이 되기도 했으며, 심지어 조그마한 이 나라에서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싶은 ’ 출신지역‘이 차별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이름 붙이기 쉬운 종류의 기준은, 정말 끈질기게도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살아남아 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런 ‘이름 붙이기’는 또 정치인들이 잘하는 분야이고, 정치인이라면 오히려 그런 것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20세기 후반 한국 정치의 아이돌들은 모두 ‘우리가 남이가’와 같은 캐치프레이즈로 알 수 있듯이, ‘특정 지역’의 총아를 자처했었지 않았던가.


사상으로 이름붙이기 : 반공동화의 추억


그런 ‘이름 붙이기’의 기준 중 하나로서, 20세기를 풍미했던 ‘사상’을 빼놓을 수 없겠다. 20세기, 제1세계에서는 “공산주의“라는 이름이, 제2세계에서는 “자본주의”라는 이름이 각각 터부의 대상이었다. 사실 사전적으로 생각해 보면 두 사상은 경제생산의 방법론의 차이일 뿐일 수 있음에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국가들은, 서로 상대편 국가들의 사람들을 ‘우리와 다른 어떤 존재’라는 딱지를 붙였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정적을 “공산주의자”나 “부르주아”와 같이 사상의 딱지를 붙여 제거하기도 해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공산주의자들을 피부가 빨간 괴물같이 표현하는 반공도서를 10세 미만의 어린아이들에게 읽히고는 했는데, 경제사상에 대한 교육 이전에, 특정 사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비인간화를 교육시킨다는 점이,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무척 소름 돋는 일이다.


하지만, 소련이 붕괴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그런 이름 붙이기는 세계적으로 조금씩 힘을 잃어갔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국가들은 활발한 교류를 다시 시작했고, 시장만능주의도 아니고 국가주도형 생산체제도 아닌, 중간 어디쯤의 시장경제에서 대부분의 나라들이 사상을 제거한 경제정책을 고민하는 시절이 온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사상으로 이름 붙이기‘는 세계 몇몇 곳에서 살아남아, 유령처럼 몇몇 국가들을 배회하고 있다. 분단국가라는 특수성 때문에, 대한민국도 그 유령이 끝까지 살아남은 곳 중 하나이다. 아직도 대한민국에서 ‘공산주의’라는 이름표는, 상대방을 터부시 해야 하는 어떤 대상이 되게 만든다. 물론, 북한의 기형적인 전체주의가 ‘공산주의’라는 껍데기를 쓰고 있으니, 대한민국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북한의 전체주의는 ‘공산주의’에 진정으로 포섭되기도 어려운 기형적인 사상이라는 것을, 이제 모두들 잘 알고 있기에, 사실 민주화 이후의 대한민국의 정부들은 보수적인 정권이라 하더라도, 이제 한물 간 이데올로기에 대한 화두를 전면적으로 꺼내려고 하지 않았다.


이름 붙이기가 정치인의 원죄라면,
판단은 유권자의 의무

그런데, 21세기도 이제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이때, 대한민국의 정치권에서 ’ 공산주의‘가 화두가 되었다. 미국의 대통령이 베트남 공산당서기를 만나고 오는 그즈음, 대한민국의 정부는 민족의 영웅 중 한 명을, ‘공산주의자’라고 이름을 붙였다.


현 정권의 홍범도 장군에 대한 이름 붙이기의 목표는, 분명히 과거를 향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정치구도에서 어떤 전선을 긋기 위한 것일 테다. 나치의 ‘유대인’에 대한 이름 붙이기나, 일본제국주의의 ‘인종’에 대한 이름 붙이기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내년의 선거에서, 여당이 가지고 나올 무기가 무엇인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어쩌면 ‘여당에게 반대하는 이들은 공산주의자‘라는 암시를 가지고 나올 수도 있겠다. 약 30년 전에 봤을법한 그 ’ 이름 붙이기‘를,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내년 총선에서 보게 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앞선다.


정치인들은 늘 이리저리 이름 붙이기를 시도한다. 어쩌면 그것이 여러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정치인의 원죄라, 고치지 못할 고얀 습성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그런 이름 붙이기의 근거가 정확한지, 또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를 숙고해 보는 것은 이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유권자들의 의무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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