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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린 Jan 05. 2021

'새' 해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2021년이다. 지인들과 주고받는 새해 인사로 휴대폰이 쉴 틈 없이 몸을 떤다. 새해에는 복을 많이 받기를, 그리고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서로서로 빌어 주면서 어떻게든 새로이 한 해를 '시작'하려 애를 쓰다 보니, 도대체 2021년을 여는 오늘이 2020년을 닫은 어제와 뭐가 다른 것일까 라는 의구심이 든다. 정신분석의 아버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뒤를 이어, 정신분석의 새 장을 열었던 자크 라캉은 어느 해 1월, 그 해의 첫 강의에서 같은 질문을 청중들에게 던진다. 도대체 뭐가 새롭다는 것인가, 같은 해가 같은 궤도를 돌아 하루를 만들어 내는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이 어떻게 '새' 날이고 '새' 해의 시작이냐고 묻는다. 숫자로 구분 지어 놓은 작년과 올해는 반복적인 자연의 순환 원리에 상응하지 않는다.


그의 결론은 명료하다. 우리가, 인간이 어느 시점에서인가 '새' 해가 필요하기에 우리는 어제와 오늘을 구분하고 작년과 올해를 나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지점에서 우리는 결심을 세운다. 결심과 계획은 행동(act)을 촉구한다. 그리고 우리는 인생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기꺼이 새롭게 뭔가를 시작한다고 믿고 한해 달력의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직선으로 달린다. 결국 핵심은 행동이다. 계획과 결심이 아니라 act 가 시작을 만들고, 작년과 다를 바 없는 오늘을 '새'해로 만든다.


올해 계획과 결심이 솟구친다. 작년보다 더 많은 그리고 더 나은 글쓰기가 먼저 떠오른다. 작업하고 있는 영화 학술서, 쓰고 싶은 주제의 학회지 논문, 그리고 새롭게 맡은 정신분석학회의 직분에 따른 국제 세미나 개최, 학회 동료와의 공동 연구 계획 등등. 그리고 이 모든 '새'해 계획의 반 이상이 작년에 이루지 못하고 이월된 항목이라는 자괴감이 어김없이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무엇보다도, 새로 입양한 아기 고양이 나비와, 나의 아픈 손가락인 심장병 고양이 틸리, 그리고 올해 고3이지만 여전히 인생이 Fun 해야 한다고 믿는 철없는 청소년을 보듬고 하루하루 버티고 견디며 일보 전진과 이보 후퇴를 무한 반복해야 하는 2021년은, 시작한 지 하루 만에 벌써 사람을 지치게 한다. 이왕 '새'해를 맞았으니, 뭔가 '해'야겠다. 정신줄을 제대로 잡고 한 해를 보내려면 아무래도 이 방법이 최선이다.


분주한 연말에 미뤄둔 학교 이메일 답신, 클리닉의 잡무 처리, 어수선한 책상 정리, 올해 다이어리 시작, 나사가 헐거워져 건들거리는 캣타워 수리 등등을 손에 잡히는 대로 해치운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였던 브런치 작가 신청. 어제 같은 오늘이 한결 새롭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나는 한 살 더 먹는다.


2021.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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