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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Oct 09. 2021

당신의 직무(job)는 무엇인가요?



"당신의 직무는 무엇인가요?"


인사 컨설턴트로부터 질문을 받았을 때 김 상무는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J기업의 관리부문을 책임지고 있는 김 상무는 이십여 년 동안 바쁘게 직장 생활을 해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직무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런 질문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냥 매일매일 주어진 일을 해왔을 뿐이니까.


그는 입사 이래 거의 회사 일만 생각하며 바쁘게 달려왔다. 위에서 시키는 일이라면 무조건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윗사람의 신임을 받아 한 부문을 책임지는 임원으로 성장하였다. 그냥 그렇게 하면 전부인 줄 알았다.


컨설턴트와 면담이 끝나고 김 상무는 생각에 잠겼다. 내 업무가 무엇이지? 직원들에게 회사의 비전을 심어주고 회사 목표가 달성되도록 직원들을 이끌어 나가는 것? 아니지 그건 사장님이 할 일이고. 그러면 내 밑의 팀장들을 관리하는 건가? 아니면 관리 부문 직원들이 맡은 일을 열심히 하도록 독려하는 게 내 일인가? 아니지 그건 각 팀장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내가 직접 뭔가를 해야 하는 건가? 그게 뭐지?


김 상무는 백지를 꺼내 자신의 직무에 대해서 적어보려고 하였다. 한참을 생각해 보았지만 많은 것들이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 한 문장도 적을 수가 없었다. 김 상무는 깨달았다.


"여태껏 내 직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일을 하고 있었구나!"




얼마 전 회사 VIP 고객이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만 VIP에 대한 의전에 문제가 생겨 VIP가 호텔에서 30분이나 차를 기다리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김 상무는 총무팀장을 불러 질책을 하였다.


"도대체 이런 일도 안 챙기고 뭐 했나?"


총무팀장이 말했다.

"VIP 일정은 비서실에서 챙겨야 하는데요?"


비서실장이 말했다.

"VIP 고객 일정이 바뀌는 건 당연히 해당 영업팀에서 챙겼어야죠."


영업팀장이 말했다.

"사장님 일정이 바뀌는 바람에 그렇게 된  아닌가요? 고객 양해를 구한다고 얼마나 힘이 들었는데..."




사전적 의미로 보면 직무(일, job)는 '조직 내에서 한 사람이 하는 일의 총량'이다. 즉, '1인의 업무 = 1 직무'가 된다. 회사에서 인사 관리의 대상은 '사람'과 '직무'이다. 직무에는 일의 내용과 기대되는 성과 그리고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 갖추고 있어야 할 역량이 필요하다. 이것들을 나열해 놓은 것이 바로 '직무기술서'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많은 회사들에서 직무기술서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고 있다. 있다고 하더라도 인사팀에서 컨설팅을 받으며 남의 회사 것을 베껴서 만들었거나, 아니면 인사팀의 성화에 각 팀에서 대충 만들어 놓았거나 해서, 실제 업무와 동떨어지고 전혀 참고하지도 업데이트하지도 않고 그냥 서류철에 보관만 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위의 사례처럼 '넌 도대체 이런 일도 안 챙기고 뭐 했어?'류의 질책을 상사로부터 받았을 때, '그건 내 일이 아닌데...' 하며 억울해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많은 회사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누구의 업무도 아니고 또 모두의 업무이기도 한' 희한한 현상.


일이 중복되거나 누락되는 현상. 실제로 조직 내에서 각 직무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해 놓지 않으면, 어떤 일이 터졌을 때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고 또 모두의 책임이 되기도 하는 애매모호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직무기술서는 누가 만들어야 할까? 당연히 그 직무를 수행하고 있고 가장 잘 알고 있는 본인이 만들어야 한다. 이미 전임자로부터 만들어 놓은 게 있다면 리뷰를 해야 한다. 자기 일에 대한 상당한 고민과 연구를 통해서 그것을 최신의 것으로 수정 보완해야 한다.


각 개인별로 직무기술서가 다 완성되었으면 다음 단계로 아주 중요한 과정이 있는데, 바로 팀원 전체가 모여서 '철저한 리뷰'를 해야 하는 것이다. 팀에서 수행해야 할 업무 중에 빠진 것은 없는지, 팀원 간에 일의 배분은 적절한지 혹은 중복되거나 불필요한 것은 없는지 등등. 특히 요즘같이 경영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를 해서 조직의 업무가 최적의 상태에서 원활하게 수행되도록 해야 한다.


직무 설계를 할 때 또 다른 중요한 고려 사항은 상위 조직과의 '얼라인먼트(alignment)'이다. 내가 하는 이 일이 우리 팀의 미션, 목표 또는 이루고자 하는 성과에 부합한가? 나아가 회사의 핵심 가치, 지향점, 가치 창출에 기여를 하는가? 등의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팀의 존재 가치도 새롭게 되짚어 볼 수 있다. 우리 팀은 회사에 왜 존재하는가? 우리 팀의 존재 가치는 무엇일까? 과연 회사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가?




"인사팀의 미션이 무엇인가요?"


인사 컨설턴트가 인사팀 직원들에게 물었다. '회사의 운영에 적합한 인적자원을 유지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사람을 조달하는 일에 중점을 두게 된다. '회사의 목표달성에 필요한 사람들을 양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직원 교육에 중점을 두게 된다. '회사의 성과 창출에 기여하도록 이끄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평가제도나 동기부여에 중점을 두게 된다.


가 물었을 때, 모든 팀원들은 자기 팀의 미션, 존재 가치를 동일하게 인식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회사의 핵심가치나 방향성, 팀의 존재 가치, 각 팀원들의 직무, 이런 것들에 대해서 평소에 직원들 간에 많은 토론과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면서 구체화해 놓아야 한다. 그래야 각 개인이 해야 할 일이 명확해지고 조직이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것이다.


김 상무는 자신의 직무를 이렇게 정의해 보았다.


"직원들이 실력을 키우고 그 실력을 바탕으로 회사의 성과창출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직원과 회사가 함께 성장해 나가는 데 필요한 지원을 한다."


회사에서 직원들의 업무를 보면 그냥 과거로부터 해왔으니까 또는 위에서 시키니까 등 여러 가지 사유로 관성적으로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경우에는 과거에는 중요했으나 환경이 바뀌어 이제는 필요치 않은 업무도 생겨날 수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해마다 변화하는 경영 환경에 따라 새로운 중요한 업무가 생겨 나기도 한다.


"나의 직무는 무엇인가?"


스스로 이 질문을 던져보자. 한 번씩 이 질문에 대해서 심도 있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 본다면, 일도 더 잘하고 자신의 능력도 키우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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