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나서 엄마 젖꼭지를 무는 순간부터 아니 첫울음을 터트리는 순간부터 평가를 받는 것 같다. 잘났네 못났네 누구를 닮았네 안 닮았네, 어린 시절에도 형제간에 이웃 간에 비교를 당하고, 학창 시절엔 시험을 쳐서 평가를 받는다. 시험을 치면 10명이 됐건 100명이 됐건 1,000명이 됐건 1등부터 꼴등까지 명확하게 순서가 정해진다.
대개가 성적 순서에 따라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나아가 대개가 성적 순서에 따라 사회에서 남들보다 앞선 출발선에서 첫발을 내딛는.. 이른바 보상을 받게 된다.
일단은 이렇게 정리해 보자. 평가는 그 결과에 따라 보상을 하기 위해서 한다. 학창 시절의 평가 결과에 따른 좋은 상급 학교로의 진학, 최종학교의 평가 결과에 따른 좋은 회사로의 취업과 같이. 그런데 여기까지의 평가는 대개가 상대평가의 개념이다.
학교에는 정원이 있고 회사에도 T/O가 있다. 즉, 지원자가 아무리 많아도 들어갈 수 있는 인원수는 한정되어 있다. 지원자를 1등부터 꼴등까지 나열하여 필요 인원 수내에서 가차 없이 잘라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회사에서의 평가는 어떨까? 아쉽게도 많은 회사에서 상대평가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여기서 '아쉽게도'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회사 조직에 있어서 상대평가의 개념은 엄청난 독이 되기 때문이다. 독도 때로는 약으로 쓴다지만 내가 보기에는 조직을 망치고 회사를 망하게 하는 첫걸음이 바로 이 잘못된 상대평가에서 출발한다.
회사에서 평가는 왜 할까? 앞의 논리를 대입해 보면 보상을 하기 위해서 한다. 회사에서의 보상이란 대개가 승진과 연봉 인상이다. 잘난 직원은 연봉을 더 주고 진급도 빨리 시켜주어 더 열심히 일하도록 하고, 못난 직원은 연봉도 적게 주고 진급도 누락시켜 분발하게 하거나 스스로 조직을 그만두게 한다. 이것이 평가와 보상 원리이다.
보상은 직원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돈은 바로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장님들은 거기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할까? 내가 알기론 거의 대다수 사장님들은 고민을 안 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사장님들이 깊은 고민을 했다면 그런 엉터리 같고 회사를 망치게 하는 평가 보상제도를 운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냥 인사팀의 일이고 대다수의 회사에서 적용하고 있는 보편적인 방식이고 또 살아오면서 몸에 익숙하게 밴 당연한 제도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회사의 설립목적 또는 존재가치는 무엇일까? 물론 회사의 정관에 보면 목적사업이 죽 나열되어 있다. 회사는 학교와 다르다. 돈을 벌어야 하고 생존하기 위해 부단히 변화해야 한다. 그러려면 직원들이 열심히 일을 해서 성과를 창출하고 또 틈틈이 열심히 공부해서 자신들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즉 실력을 키우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향상된 실력으로 더 높은 성과를 창출함으로써 회사가 성장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직원들을 어떻게 동기부여해야 할까? 평가의 문제에서 생각해 보자. 학교에서는 비교적 객관적인 기준에서 평가가 가능하다. 전공이 같거나 또는 같은 시험조건에서 평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를 예로 들면 동일한 조건하에서 경기를 함으로써 지더라도 깨끗한 승복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회사는 다르다. 직원들 각자가 전공이 다르고 업무가 다르고 경력이 다르다. 즉, 애초에 객관적인 기준하에서 평가가 불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문제의 불씨가 생겨나게 되는데 거기에다 상대평가를 한다? 이것은 불씨를 대형산불로 키우는 일이다.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회사에서 그런 짓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곤 한다.
전체 직원을 100으로 봤을 때, A등급 10%, B등급 15%, C등급 50%, D등급 15%, E등급 10%식이다. 이렇게 분포를 정해 강제 할당하는 방법을 쓴다. 과연 몇 %의 직원들이 평가결과에 만족할까? A, B등급의 25%?
내가 과거 팀장으로 근무할 때를 돌이켜보면 평가결과를 직원들에게 피드백하는 게 여간 곤혹스럽지가 않았다. 특히 C등급 이하를 준 직원들에게는 주로 잘못한 일, 결점 등을 지적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면 어떻게 하면 A등급을 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하는 직원에게 제대로 답변조차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기준상으로는 다른 팀원이 더 잘하면 결코 A등급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팀워크를 강조한다. 정말 제정신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못해야 내가 좋은 평가를 받는데 서로서로 도와주라니...
직원들 각자가 전공도 다르고 업무도 다르고 경력도 다른데 일률적으로 시험을 치르듯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할까? 대다수 회사에서 인사팀에 물어보면 '평가는 원래 주관적인 겁니다' '일부 직원들의 불만은 어쩔 수 없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대개의 회사에서 직원 평가 자료는 인사 비밀이다. 왜 그럴까? 물론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거기에는 공정과 정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이 오픈되면 직원들 사이에 엄청난 혼란과 불만이 야기될 수 있기 때문에 꽁꽁 숨겨두는 것이다.
내가 인사팀장으로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내 유수의 인사컨설팅 회사에서 만들어 준 제도를 도입해서 그냥 썼다. 거기엔 어떤 혼도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도 없었다. 그냥 인사팀의 업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다시 돌아와서, 그러면 회사에서의 평가과정을 조금이라도 객관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은 간단하다. 최대한 평가과정을 오픈하는 것이다. 누가 어떤 업무를 하는지, 어떤 평가과제를 부여받았는지, 팀장과의 피드백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등등. 가능하면 회사 전체 직원들의 내용이 오픈되면 좋겠지만 그게 힘들 경우 사업부문내 혹은 팀 내라도 오픈되어야 한다. 물론 비밀을 요하는 프로젝트 등이 있을 경우에는 그 업무에 한해 블라인드 처리하면 된다.
이렇게 직원들의 업무수행 및 평가과정을 오픈하면 부수적인.. 아니 이게 본질인지도 모르겠는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업무와 성과를 부풀리거나 남의 공을 가로채기가 힘들어진다. 왜냐하면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성과를 냈는지 다 오픈되므로 거짓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회사 조직 내에는 놀고먹는 직원들이 의외로 많다. 그런 사람들이 또 윗사람에게는 잘 보이고 아랫사람 찍어 눌러서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겠지만 회사 입장에서 보면 좀비 직원이다. 그리고 윗사람 중에도 이런 아부 잘하고 자신의 가려운 데를 잘 긁어주는 직원을 편애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그런 좀비 직원들이 살아남아 회사를 야금야금 갉아먹게 되는 것이다. 업무와 평가과정을 오픈하면 이런 좀비 직원들이 배겨낼 수가 없게 된다. 아부는 남들에게 떳떳하게 오픈할 수 없을 테니까.
평가과정을 오픈하면 평가자도 직원들이 보는 눈이 있으니까 최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직원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직원들도 누가 무슨 일을 했는지, 어떤 성과를 냈는지 서로서로 알게 되므로 누가 일을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안다. 결과적으로 평가결과에 대한 직원들의 수용도가 높아진다.
회사 전체적으로 평가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가고 제도 정착이 되면 상대평가 -> 절대평가로 기준을 바꾸어도 평가 보상제도가 무리 없이 잘 운영될 수 있다.
서두에서 '평가는 그 결과에 따라 보상을 하기 위해서 한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사실상 평가의 진짜 중요한 목적은 '직원 육성'이다. 과제를 주고 수행과정의 피드백을 통해서 직원들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게 회사 입장에서는 보상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직원들의 역량이 향상되고 그 역량이 바탕이 되어 업무를 수행하게 되면 성과는 저절로 따라온다. 따라서 평가는 직원들의 역량을 향상시키는 '과정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직원의 역량향상에 초점을 맞춘 직원평가가 이루어지고 평가과정이 객관적으로 오픈되면 직원들 간의 자발적인 선의의 경쟁을 기대해 볼 수 있다. 평가과정과 결과에 신뢰가 쌓이면 직원들은 스스로 더 어렵고 더 힘든 과제를 하려고 한다. 자아실현의 욕구가 분출되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성공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직원들의 실력이 쌓인다. 그리고 나아가서 회사의 성과창출에 크게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 이러한 인사관리 개념은 주로 유럽 선진국에서 발전한 것이며 오픈형태의 업무수행 및 평가과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제대로 된 운영 툴은 이미 많이 개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