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호 Jul 04. 2024

반찬 없을 때 딱 좋은 오징어 덮밥

남자도 홈쿠킹이 어렵지 않아요



퇴직 후 집에서 밥 먹는 날이 많아지다 보니까 가끔 뭘 먹을까 막막해지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를 대비해서 평소에 인터넷이나 티브이 홈쇼핑을 보면 맘에 드는 간편식이나 식재료를 사두곤 한다. 얼마 전에 손질 오징어를 사두었는데, 뜨거운 물에 데쳐 오징어 숙회를 해 먹어도 좋고, 버터를 발라 고소한 버터구이를 만들어 맥주 안주로 먹어도 맛있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꽁꽁 얼어있는 오징어가 눈에 띄었다. '오늘은 요놈으로 뭘 만들까?' 하다가 오징어 덮밥을 만들어 먹자 싶었다.


그래도 퇴직 후 집에서 이것저것 요리를 해보았다고, 손에 요령이 붙어 어지간한 것은 망설여지지가 않는다. 오징어 볶음이나 낙지볶음이나 뻔히 아는 맛에, 어떻게 어떻게 하면 되겠다는 게 머리에 그려졌다. 보자, 그러면 먼저 야채를 다듬어야겠지? 양배추, 당근, 양파, 풋고추, 파, 마늘 등 야채를 적당한 크기로 다듬고 나서, 해동된 오징어를 깨끗하게 씻어서 역시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그다음은 양념장 만들기.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올리고당, 설탕, 굴소스 등 기본재료로 너무 맵지 않게 감으로 적당량을 섞어서 만든다. 여기서 적당량이 어떤 의미인지 주부님들은 다 아시리라 믿는다.



재료준비가 다 끝났으면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해 볼까? 먼저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열이 오르면 파와 마늘을 넣고 살짝 볶아 파기름을 낸다. 그러고 나서 당근, 양배추, 양파, 풋고추 등 야채를 넣는다. 여기서 숨은 팁 하나. 한때 몸에 좋다고 해서 사다 놓고 먹다 남은 자색 양파즙이 눈에 띄어 한 봉지 넣었더니 국물도 넉넉하고 단맛이 우러나서 괜찮았다. 그다음 손질한 오징어와 만들어 놓은 양념장을 넣고 양배추가 숨이 죽을 정도로 볶아주면 오징어 야채볶음 완성.



따끈한 하얀 쌀밥 위에 오징어 야채볶음을 얹으면 다른 반찬 없이도 한 끼 식사로 거뜬한 오징어 덮밥이 된다. 숟가락으로 쓱쓱 비벼서 한술 떠먹으니 안 그래도 요리한다고 허기진 차에 아주 꿀맛이었다.





직장을 다니던 남자는 은퇴라는 게 있지만, 집안 살림을 하는 주부에게는 은퇴라는 게 없다. 당연히 여자도 밥하고 세탁하고 청소하는 일에서 손을 떼고 싶을 것이다. 내가 퇴직 후 집에 있으면서 청소며 세탁이며 요리며 집안일을 조금씩 해보니, 이게 할 때는 별로 표가 안 나는데 막상 안 하면 대번에 표가 나는 일이었다. 늦게나마 그동안 힘들었을 아내의 고충을 이해하는 중이다. 그래서 요즘은 서로 시키지 않아도 시간 되는 사람이 그때 필요한 집안일을 한다. 요리도 그중 한 가지. 처음 해보는 것이라도 시도하는 재미가 있고, 새로운 걸 알아가는 맛이 있다. 요리에 조금씩 눈을 뜬다고 할까? 이젠 된장찌개, 김치찌개나 생선 무조림 정도는 자신 있게 만든다.  기를 살리려고 그러는지, 맛을 본 아내가 '내가 만든 것보다 맛있네' 한 마디에 기분이 우쭐해진다. 그래서 난 오늘도 주방에서 칼질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신짜오 베트남 1299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