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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Aug 05. 2024

슬기로운 홈베이킹 생활



회사를 퇴직하고 나서 뭘 할까 생각하다가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이 제과제빵 학원이었다. 거기서 빵 만드는 걸 배우고 이어서 바리스타 교육까지 받았다. 그 후 홈베이킹을 취미생활로 즐기며 지냈는데, 뭐든 배워 놓으면 다 써먹을 때가 있다더니 요즘 그 베이킹이 한몫하고 있다. 바로 딸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북카페의 디저트를 만드는 것. 커피와 디저트. 이것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조합이다. 그래서 커피를 팔기 위해서는 디저트가 있어야 하는데, 맘에 드는 디저트를 확보하는 데는 뭐니 뭐니 해도 직접 만드는 게 최고다.


그리하여 디저트를 직접 만들기로 하였고, 일단 메뉴는 보존성을 감안하여 마들렌과 파운드케이크 두 종류로 정했다. 그런데 다음이 문제였다. 나는 '맛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딸은 그게 아니었다. 맛은 두 번째고 첫 번째는 모양이라고 다. '크기는 작게, 모양은 예쁘게'. 딸의 주문간단하고도 단호했다. 덕분에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 겨우 딸의 합격 사인을 받았다.


요즘 일주일에 두세 번 빵을 굽는다. 노르딕웨어 나뭇잎 모양 틀을 이용한 마들렌과 미니 파운드케이크 틀을 이용한 미니 파운드케이크. 파운드케이크는 세 종류. 크림치즈, 녹차, 쵸코이다. 여러 가지를 홈베이킹의 열악한 설비로 구워내는 게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지만 열심히 만들고 있다. 덕분에 매일매일이 바쁘. 오전에 집에서 빵 만들고, 오후엔 가게에 나가 커피 내리고.




지난번에 가게 메뉴 사진 촬영을 했던 사진작가가 다시 서 디저트 사진을 찍어주셨다. 전문 작가님의 손을 거친 사진은 역시 다르다. 뭔가 더 고급지고 맛도 더 좋을 것 같다. 커피와 디저트.  어울리는 모습이다.




가게에는 토요일에 손님이 가장 많다. 장소가 협소한 관계로 손님들이 많이 찾는 오후 시간대에는 빈자리가 없어 그냥 돌아가는 분들도 계신다. 날도 더운데 2층까지 계단을 올라왔다가 헛걸음하는 손님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다. 어떻게 자리를 더 확보할 방안은 없을까? 가장 큰 고민거리다.


커피나 음료와 함께 내가 만든 디저트도 하나씩 팔려 나간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다 팔려버리는 품목이 생긴다. 토요일 오전, 바쁘게 크림치즈 파운드케이크를 만들어서 가게에 갔다. 그리고 열심히 장사를 하고 나서 저녁에 수량을 확인해 보니, 녹차 파운드케이크는 다 팔렸고, 초코는 두 개, 마들렌은 겨우 하나 남았다. 이래 가지고는 다음 날 크림치즈 파운드케이크 하나 가지고 장사를 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그래서는 안되었다.


일요일 아침 일찍 일어났다. 다시 빵을 구웠다. 딸은 녹차 파운드케이크를 주문했지만 마침 재료가 떨어져 못하고, 대신에 초코 파운드케이크를 만들었다. 마음이 급해서인지 모양이 썩 잘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쓸만하여 부랴부랴 챙겨서 가게로 갔다. 오늘은 내가 오전 근무라 11시에 문을 열어야 했다. 바빴다. 실내 공기 환기시키며 청소기 들고 한 바퀴 돌고 나서 에어컨을 틀었다. 잠시만에 땀으로 흠뻑 젖었는데 좀 살 것 같다. 다음은 에스프레소 머신 세팅. 몇 차례 분쇄기를 조절하며 25~30초 사이에 35g의 에스프레소를 내린다. 아메리카노로 맛을 보니 기대했던 딱 그 맛이다. 굿. 손님맞이 준비 끝.



에스프레소를 다시 내린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카페라테를 만들기 위해서다. 핫 카페라테를 들고 창가로 간다. 부드러운 라테 모금이 목으로 넘어가며 쌉싸름하면서도 고소하게 느껴지는 맛과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 향이 좋다.


그래 이 맛이지.


카페라테 한잔으로 아침 일찍부터 바쁘게 설쳤던 고단함이 사르르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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