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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Aug 14. 2024

주차장과 전기자동차 정책 유감

그 남자의 횡설수설



평소에 오후 두 시쯤 가게에 나가 딸과 두 시간 정도 함께 일하고 딸이 퇴근하고 나면 혼자 가게를 지키다 여덟 시에 문을 닫는다. 어쩌면 가게를  곳에 얻었는지, 집 앞에서 버스를 타면 딱 가게 앞에서 내리고, 가게 앞에서 버스를 타면 집 앞에 내린다. 앱으로 버스 오는 시간을 확인하고 나가면 기다릴 필요도 없이 버스가 온다. 게다가 좌석도 여유가 있어서 늘 앉아서 간다. 운전기사가 있는 자가용을 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평소에는 자가용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다.

 


지난 금요일, 살고 있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있었다. 회의시간은 저녁 여덟 시 반. 평소보다 십분 정도 일찍 가게 문을 닫고 자가용 버스에 올랐다. 기사분도 회의 일정을 아는 양, 비교적 한산도로를 씽씽 달려 순식간에 집 앞에 데려다 놓았다. 느긋한 기분으로 회의실에 들어서니 내가 일착이다. 자리에 앉아 회의자료를 뒤적이고 있으려니 다른 분들이 하나 둘 도착하였다.


그날주차관리규약 검토 확정을 위한 임시회의였다. 요즘 구축 아파트건 신축 아파트건 주차난이 심하다. 그런 사정은 지은 지 오 년 된 우리 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원래  세대당  대의 주차공간은 보장되어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 입주민 삼분의 일 정도가 차량 두 대 이상을 보유하고 있다 보니, 늦은 밤이나 일요일 저녁에 들어오는 차들은 주차할 곳이 없어 쩔쩔매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게다가 자기밖에 모르는 얌체족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어서, 자기가 내리기 편하게 주차선을 넘어 주차하여 옆에 다른 차가 대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경차의 경우는 경차자리에 대면 좋은데, 한 세대 한 대의 주차공간은 보장된 권리라며 꿋꿋하게 일반 주차공간에만 차를 대는 사람도 있다. 덕분에 경차자리는 비어있고, 덩치가 큰 일반차는 경차자리는 못 들어가고 빈자리를 찾아 삥삥 돌기도 한다. 아파트는 공동체이고 공동체 생활을 하려면 최소한 남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러한 것들은 사실 그동안 살면서 전혀 관심도 없었고 생각 밖의 일들이었다. 그러다 올봄, 입주자대표를 새로 모집한다는 공고가 붙었고 3차 공고가 붙도록 지원자가 없어, 그동안 남일이다 하고 무심하게 지냈던 게 미안하기도 해서 입주자대표에 지원하였다. 그렇게 동대표가 되었고, 명색이 동대표를 하다 보니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오게 된 것들이다.




그날 주차관리규약을 손보면서 가장 큰 이슈가 우선주차공간을 지정하여 한 세대 한 대의 주차공간을 확보하고 두 번째 차량은 되건 안되건 한 곳으로 모느냐, 아니면 주차질서를 정비하고 현행을 유지하느냐였다.


아파트 주차장이 지하 삼층까지 있는데, 드나들기 편한 지하 일층은 사실상 차량 두 대를 갖고 있는 입주민들이 거진 점령하고 있다. 그에 따라 차량 한 대인 사람들은 지하 일층 주차장을 거의 사용하기 힘들다는 불만이 많았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지하 일층 주차공간에서 차를 빼는 동시에 그 자리에 자신의 세컨드 차를 주차시키는, 거의 전용주차장처럼 사용하는 입주민도 있다. 차량 두 대를 갖고 있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한 대를 보장받아야 할 입주민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 셈인데, 그야말로 기본적인 양심이 없는 경우이다. 그런 부모밑에서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울까 싶기도 하다. 경쟁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렇게 악착같이 해야 한다는 생존스킬이라도 보여주려는 것일까.


갑론을박 끝에 우리 아파트 입대위에서는 일단 주차질서를 확립하여 주차불편을 해소해 보자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 차량 소유자나 다 차량 소유자나 주차권리를 차별하지는 않기로 한 것이다. 그래도 공동체 생활인데 다들 필요에 의해 다 차량을 소유하고 있을 거고, 불편하지만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면서 원만한 주차질서를 확립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전기자동차 화재 사고가 아파트 주차 문화에서 있어서 또 하나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예상컨대 아마도 화재원인에 대한 명확결론이 나지 않고 흐지부지 되다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질 것으로 보인다. 각국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미는 전기자동차 사업이니만큼 배터리나 자동차의 결함으로 인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쉽게 인정했다가는 국가 간 배상에 대한 분쟁 소지도 있다. 그러다 보니 다른 희생양이 필요한데, 화재를 조기에 발견해서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다고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전기자동차 소유자의 과충전이나 차량 관리부실로 몰아가는 기운도 감지되고 있다.


애초에 불완전한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한 대기업이나, 그를 승인하고 제대로 감독하지 않은 관계당국은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있다. 앞으로 전기자동차는 계속 늘어날 것이고 늘어난 수와 더불어 노후화가 진행되면서 화재의 위험성은 더욱 커질 것인데, 그것을 어떻게 감당할지 답이 없어 보인다. 더구나 간과되고 있는 것은, 아직까지는 대부분의 경우 전기자동차 한 대의 화재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전기자동차의 수가 늘어날수록 지하주차장에 주차된 전기자동차들이 늘어날 것이고, 줄지어 주차된 전기자동차가 연쇄폭발을 일으키게 되면 위력이 실로 가공할만한 수준일 거라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모르긴 몰라도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인명과 재산 피해를 가져올 위험인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 대도시 같이 주거문화가 아파트에 집중되어 있고, 지상주차장 없이 지하주차장 일색인 상황에서 전기자동차는 정말 큰 위험요소이다. 요즘 전 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는데 어느 누구 하나 나서서 국민을 안심시키는 뾰족한 정책도 내놓지 못하고, 기술적인 설명을 통해 안전한 상품이라는 이해를 구하지도 못하고 있다. 정치꾼들은 당파싸움 한다고 바쁘고, 관료들은 몸사리기 바쁘고, 관련 기업인들은 행여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까 꼬리 자르기 바쁘다.


우리 아파트에는 아직 전기자동차 충전시설이 없다. 그래서인지 모르겠는데 아직까지는 전기자동차가 몇 대 없다. 그러나 올해까지 의무적으로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매년 수천만 원의 이행강제금을 물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전기자동차 충전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지하공간에. 정부에서 국민들이 살고 있는 발 밑에 고성능 시한폭탄을 매설하라고 종용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거기다가 충전시설을 갖추고 나면 안 그래도 부족한 주차공간은 더욱 부족해질 것이다.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친환경 친환경 하는데, 전기자동차가 과연 친환경이 맞기는 한 걸까? 앞으로 계속 늘어나는 전기자동차의 전기수요를 감당하려면 발전소가 그만큼 늘어나야 할 텐데, 그 많은 전기생산을 다 친환경 연료로 할까? 의문이다.



금요일 회의 때 참석한 다른 동대표가 전기자동차 소유주이다. 요즘 마치 죄인이 된 기분이라고 한다. 단지 전기자동차를 타고 다닌다는 이유로 잠재적 범죄자로 몰리는 것 같다고 한다. 전기자동차를 당장 팔아버리고 싶다고 한다. 누가 속 시원하게 말 좀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전기자동차 절대 안전하니 괜찮다고 혹은 위험한 물건이니 당장 갖다 버리라고.


누가 답 좀 해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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