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잿빛 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벌판, 계곡 그리고 산. 그 위로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에 언뜻언뜻 반짝이는 검거나 하얀 알갱이들. 그러다 세찬 바람이 불면 모래먼지가 허공에 날려 세상을 온통 희뿌옇게 흐려 놓는 풍경. 풀 한 포기 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는 삭막함. 움직이는 생명체라고는 절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황량한 곳. 그런 곳의 한 언덕에 머리가 땅에 사분의 일쯤 파묻힌 물체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우주탐사선 희망호였다. 선체 이곳저곳에 무수한 상처가 나 있고 후미 부분은 아예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그리고 그 언덕에 이르기까지 수킬로에 걸쳐 땅바닥이 깊게 패어 있는 모습은 희망호가 정상적으로 착륙하지 못하였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패인 땅 밑으로는 회색모래가 아닌 황토색 흙이 드러나 보이기도 하였다.
희망호는 어떻게 이런 곳에 오게 되었을까? 그리고 이곳은 대체 어디일까? 우주공간에 균열이 생기면서 나타난 웜홀이 희망호를 삼켰었다. 그리고 시공간이 뒤틀린 곳을 흐르다 내쳐진 곳. 그곳이 바로 여기였다. 사실 희망호가 이곳에 오게 된 실마리는 있었다. 조함장이 정신을 잃기 전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좌표를 입력한 곳이 바로 지구였다. 그리고 그 결과 타임슬립에 빠진 희망호가 기적과 같이 지구로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그랬다. 이곳이 바로 지구였던 것이다.
한편 희망호 내부는 더 엉망이었다. 몇 차례 커다란 암석과의 충돌로 폐쇄된 곳이 있을 정도로 타격을 입은 데다가, 웜홀 속에서 무지막지한 속도로 끌려다니면서 평형을 유지하는 비행을 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마치 세탁기 속에서 한참을 돌고 난 빨래가 이리 엉키고 저리 엉키듯이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그나마 조종실에서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던 승무원들은 온전한 모습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좌석에 매어 늘어져 있던 조함장의 손이 꿈틀 하였다. 그리고 고개를 한번 흔들더니 눈을 떴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그가 고개를 들었다. 모니터 화면은 꺼져 있고 빨간 비상등이 점멸하고 있었다. 그가 눈을 찌푸린 채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니 일등 항해사인 최대식 소령과 김태평 박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안전벨트를 푼 그가 일어서다가 다리가 풀려 비틀하였다. 다시 중심을 잡고 선 그는 최항해사와 김박사를 차례로 흔들어 깨웠다.
"어떻게 된 거죠? 여기가 어딘가요?"
"나도 모르겠소. 일단 상황파악을 해봐야겠소. 다른 승무원들도 찾아보고 말이요."
정신을 차린 김박사의 질문에 조함장 역시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기는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우선은 그 소용돌이 속에서 동료 승무원 몇몇이 함께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될 뿐이었다.
희망호 승무원 중 총 여섯 명이 살아남았다. 그들 세명 외에 언어학자인 이한나 박사 그리고 엔지니어 두 명이 더 있었다. 이박사는 객실에 갇혀있다 구조되었다. 나머지 여섯 명 중 세 명은 숨진 채로 발견되었고, 세 명은 떨어져 나간 선체 구멍을 통하여 밖으로 빨려나갔음인지 시체조차 찾을 수 없었다. 내부 수색을 마친 승무원들이 모두 조종실에 모였다. 각자 임무를 부여받은 대로 시스템을 점검하고 현재의 위치가 어디인지 상황파악에 나섰다.
"함장님, 이곳이 중국 랴오닝성 선양 근처로 나옵니다!"
"예? 뭐라고요?"
시스템을 한참 살펴보던 일등 항해사 최소령이 소리쳤고, 그 말을 들은 승무원 모두 깜짝 놀랐다. 아니 이곳이 지구라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것도 우주탐사선이 일 년 반동안 비행한 거리를 순식간에 거슬러 오다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모두들 어리둥절해 있는데 최항해사가 덧붙였다.
"시스템에 이상이 없는 한 우리가 지구로 돌아왔다는 말입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재차 확인하였지만 시스템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최항해사의 설명을 들은 조함장이 입을 열었다.
"지금 안심할 상황이 아닙니다. 선체 밖의 풍경이 중국 선양과는 거리가 멉니다. 선양 근처라면 푸른 평원과 녹색 산림이 우거진 모습이어야 하는데, 이건 사막 같은 불모지에다가 마치 화산재가 덮여있는 모습 같거든요. 좀 더 면밀히 살펴보고 외부 대기질도 분석해 봅시다."
승무원들은 각자 임무를 다시 부여받고 임무 수행에 들어갔다. 한참 후 최항해사가 다시 소리쳤다.
"함장님, 시스템이 이상합니다. 두 개의 날짜를 보여주고 있는데, 하나는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날짜이고 다른 하나는 1,800년 후인 3,966년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뭐라고요? 3,966년? 그건 또 뭐지?"
조함장을 비롯하여 승무원 전원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최항해사가 띄운 시스템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분명히 두 개의 날짜가 표시되어 있었다. 하나는 파란색, 다른 하나는 빨간색으로.
D.2166.10.16
D.3966.10.16
7.
명왕성 너머 카이퍼벨트 언저리, 우주탐사선 희망호가 외계로부터 오는 정체불명의 신호에 거의 근접할 때쯤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동시에 정체불명의 신호도 사라지고 말았다. 희망호를 계속 추적하고 교신을 주고받던 대한민국 태백산에 위치한 우주항공청 지휘통제실에서는 상황을 파악하느라 분주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어떠한 답도 찾을 수 없었다. 불의의 사고로 희망호가 폭발해 버린 것인지 아니면 외계 신호에 이끌려 미지의 세계로 사라져 버린 것인지. 하지만 폭발하였다면 폭발할 때 발생하는 광선이라도 아니 그 이전에 위급상황을 알리는 교신이라도 있어야 했다. 그리고 외계 신호에 끌려가는 경우라도 마찬가지였다. 희망호로부터 전혀 아무런 연락이 없었던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였지만 어느 누구도 그럴듯한 답을 내놓지 못하였다. 그러던 차에 NASA에서 새로운 가설을 제시하였다. 태양계 너머 먼 우주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블랙홀이 관측되었다는 것. 그리고 희망호가 그 블랙홀의 영역 안으로 끌려들어 갔을 수도 있다는 것. 한번 빠지면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다는 블랙홀. 그나마 그게 제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그걸로 끝이었다. 우주항공청에서는 더 이상 희망호의 흔적도 외계신호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23세기 들어 지구에 재앙이 들이닥쳤다. 아니 사실은 훨씬 전부터 예고되어 온 결과인지도 몰랐다. 인간에 의해 오랫동안 지속된 환경파괴와 그에 따른 온난화의 영향으로 대기온도가 급격하게 상승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임계점을 넘어 버렸다. 지구의 자정능력이 상실되었고, 인간의 힘으로는 복구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내리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고도가 낮은 많은 땅들이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태풍의 위력이 매번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며 발생하였고, 폭우를 동반한 해일은 그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평야지대를 지나 산기슭까지 밀어닥쳤다. 그리고 인간의 삶의 터전에서 많은 것들을 쓸어갔다. 한편 사막이 더욱 뜨거워지고 수시로 발생하는 강력한 모래 열풍은 더욱 위력을 키워 밀림지대까지 모래를 실어 날랐다. 그 결과 불모지가 점점 늘어나면서 열대지방은 인간이 거의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해갔다. 평야지대도 마찬가지였다. 가뭄과 뜨거운 열기로 농작물이 타들어 갔다. 인간들은 살기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살 수 없는 곳에서 그나마 사정이 나은 곳으로. 기아와 전쟁 그리고 살육. 누구는 살기 위해서 빼앗아야 했고, 누구는 살기 위해서 지켜야 했다.
소수의 패권국가와 소수의 테러국가 그리고 다수의 평범한 국가가 있었다. 소수의 패권국가가 대부분의 자원과 식량을 통제하였고, 그 그늘에서 다수의 평범한 국가가 근근이 살아갔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세계적으로 자원과 식량 수확이 줄어들게 되면서 패권국가들의 횡포가 심해졌다. 반면에 평범한 국가의 삶은 상대적으로 피폐해져 갔다. 그 결과로 평범한 국가에서 테러국가로 전락하는 나라들이 늘어 갔다. 국가 간 식량을 둘러싼 테러와 약탈이 일상화되고 정당화되었다. 핵무기는 더 이상 패권국가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테러국들 간에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기술이 오갔고 전술핵과 전략핵을 보유한 국가들이 늘어 갔다. 핵무기 보유 여부로 큰소리치던 시대는 이미 저물고 있었다. 테러국가에서의 핵무기는 마치 철부지 어린아이가 폭탄을 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2245년 8월 어느 날, 최초의 원자폭탄이 일본에 투하된 지 삼백 년 후, 그보다 위력이 천배는 큰 핵폭탄이 중국 베이징에 떨어졌다. 그리고 몇 분 후 비슷한 위력의 핵폭탄이 미국 뉴욕과 러시아 모스크바에 떨어졌다. 이어서 세계 곳곳의 주요 도시, 핵무기 저장고, 핵발전소 등에 핵폭탄이 떨어졌다. 핵폭탄보다 더 비극적인 건 핵무기 저장고의 엄청난 폭발이 땅을 뒤흔들며 화산활동을 촉발시킨 것이었다. 핵폭발이 일어난 곳과 인접한 곳의 화산들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시뻘건 불길과 함께 시커먼 화산재가 하늘로 치솟았다. 후지산과 백두산도 마찬가지였다. 시뻘건 용암을 토해 내었다. 지구 곳곳에서 분출된 화산재가 대기를 가득 채웠고 세상을 온통 회색으로 바꾸어 놓았다. 대기의 색깔이 점점 짙어지면서 지구 종말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그렇게 세상을 말아먹은 핵전쟁의 시작은 중동에 위치한 한 테러국에 의해서 자행되었다. 그 나라는 수천 년 동안 나라 잃은 설움을 간직한 민족이 어렵사리 얻은 척박한 땅에서 새롭게 시작된 나라였는데, 오래전부터 세계를 상대로 복수의 칼을 갈아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미치광이가 정권을 잡게 되었고 추종자들과 함께 미친 계획을 짰다. 그 미치광이 일당은 세계를 갈아엎고 자신들만으로 새 판을 짜기를 원했던 것이었다. 마침 어리숙한 지도자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선조는 그 테러국 출신이었다. 그 테러국의 미치광이들은 미국을 등에 업고 우주로 날아올랐다. 미국과 합작으로 우주에 구축한 스페이스 넷. 지구를 따라 도는 수백 개의 인공위성과 십여 개의 우주정거장을 네트워크로 엮었다. 스페이스 넷은 정보수집뿐만 아니라 공격용 무기가 탑재된 전투머신이었다. 마침내 D-day가 되었을 때, 그들은 기습적으로 미국 측 사람들을 제압하고 스페이스 넷을 장악하였다. 그리고 자국에서 대대적인 핵공격을 감행할 때, 우주정거장에 구축된 레이저 포로 각 나라의 방어시스템을 무력화시켰다. 그렇게 해서 세계 곳곳에 핵공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세상이 그 테러국의 미치광이 지도자 뜻대로 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만사가 순조로울 수는 없었다. 그 테러국의 이웃에 서로 철천지 원수처럼 지내는 또 다른 테러국이 있었다. 핵무기와 잇따른 화산 폭발 등으로 전 세계가 아수라장일 때, 전술핵을 교묘하게 숨긴 다른 테러국의 부대가 그 테러국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그 테러국의 미치광이 지도자의 집무실을 공격하였다. 말이 전술핵이지 그 위력은 어느 핵폭탄 못지않았다. 그 공격으로 기고만장 날뛰던 그 테러국의 미치광이 지도자가 추종자들과 함께 흔적도 없이 저세상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그와 더불어 세계를 그들의 세상으로 재구축하려던 미친 꿈마저 사라져 버렸다.
지상의 통제력을 잃은 스페이스 넷은 우주에서 고립되었다. 지구 곳곳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그들에게 원조품을 실어다 주거나 지구로의 복귀를 위해 그들을 실어 나를 우주선도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고립된 생활을 하다 하나씩 사라져 갔다. 지구의 사정은 더했다. 혼돈의 세상에 빠지면서 그나마 피해가 덜했던 나라들도 평소에 자신들의 주적이라고 생각했던 나라에 갖고 있던 모든 폭탄을 쏟아부었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주고받았고 세상 곳곳이 불지옥이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생물이 살 수 없는 땅이 되어버렸다. 햇볕이 회색 먼지에 가려 지상에 도달하지 못하였고, 풀과 나무가 말라죽고 짐승들이 죽어 나갔다.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폐허가 된 거리에 죽은 시체가 즐비했고 어쩌다 하나씩 보이는 움직이는 것들이 비틀비틀 발걸음을 옮기다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 위로 회색 먼지가 내려앉아 쌓였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오래도록.
<4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