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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Dec 19. 2024

전쟁의 서막

인터스텔라_대한민국 편 #7



17.

마을 주민이 그것들에게 잡혀간 이후 김박사는 무엇인가가 주위에 어슬렁거리는 것 같은 느낌을 자주 받았다. 특히 밤이 되면 그런 느낌이 더 심해져 오싹하는 기분과 함께 목덜미가 서늘해지고는 하였다. 그런 기분은 다른 희망호 승무원들도 마찬가지여서 모두가 긴장한 채 경계를 늦추지 못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반면에 마을 주민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평범한 생활을 즐기는 듯하였다. 여자들의 웃음소리와 아이들이 즐겁게 뛰노는 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들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것들에게 잡혀가지 않게 최대한 조심을 해야겠지만 잡혀가도 어쩔 수 없다는.


희망호 승무원 중 조규함 함장과 최대식 일등항해사는 현직 군인 신분으로 우주탐사선에 합류하였다. 그들은 부하들을 다루는 일에 능숙하였고 전투경험이 풍부한 군인이었다. 게다가  첨단 무기를 갖고 있었다. 그들에게 마을 주민들을 그것들로부터 보호하는 일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조함장이 마을로 접근하는 그것들을 퇴치할 계획을 수립하였다. 마을 주민들로 하여금 울타리를 튼튼하게 높이 쌓아 방비를 하고, 야간에 동서남북으로 두 명씩 보초를 서게 하였다. 그리고 그것들이 나타나면 즉시 자신에게 알려줄 것을 당부하였다. 조함장과 최항해사는 레이저건으로 무장하고 적외선 야간투시경을 장착하고 대기하였다.


첫날은 아무 일 없이 넘어가고 그다음 날 밤이 되었다. 서쪽에서 망을 보고 있는 보초로부터 연락이 왔다. 먼 곳에서 그것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것이었다. 조함장과 최항해사가 그쪽으로 쫓아나갔다. 과연 그것들의 울음소리 같았다. 탁하게 그르릉 거리며 심장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소리. 보초를 서고 있는 주민들이 겁에 질려 몸을 떨었다. 조함장이 그들의 어깨를 다독이며 걱정 말라고 진정시켜 주었다. 잠시 후 그것들의 울음소리가 뚝 그쳤다. 그리고 적막.


멀지 않은 산능선에 은은한 달빛에 비친 그것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줄잡아 열 명쯤 될까? 그것들은 아주 민첩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빠르게 마을로 접근하였다. 조함장과 최항해사는 레이저건을 들고 야간투시경을 통하여 그것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였다. 마을 주민들 눈에는 그것들이 보이지 않았지만 야간투시경에는 선명하게 잡혔다. 그것들이 백 미터 안쪽으로 접근하였을 때 두 사람의 레이저건이 불을 뿜었다. '!' '!' 레이저건에 맞은 그것들이 맥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하나, 둘, 셋. 우르르 몰려오던 것들이 옆에서 동료들이 하나 둘 쓰러지자 이상함을 느꼈는지 주춤하고 본능적으로 납작 엎드렸다. 그리고는 오던 길을 돌아서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찌잉!' '찌잉!' 레이저건이 다시 불을 뿜었고, 두 놈이 더 쓰러졌다. 그러는 사이 나머지 네댓 놈은 바위와 나무가 우거진 숲사이로 도망가버리고 말았다.


그날 그것들 총 여섯 놈을 잡았다. 조함장과 최항해사는 그것들이 물러간 것이 확실하였지만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그것들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한편 마을 주민들은 겁에 질려 아예 울타리 밖으로 나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두 사람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레이저건을 맞고 쓰러진 그것들이 모두 죽은 것을 확인한 두 사람은 그것들 중 한놈의 발을 한 짝씩 잡고 질질 끌고 돌아왔다. 그러고서는 횃불이 환하게 밝혀진 공터에 털썩 내려놓았다. 최항해사가 그것이 입고 있는 회색옷을 칼로 북 찢어서 몸이 훤히 보이도록 젖혀 놓았다.


그것을 보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그것은 확실히 평범한 인간의 모습은 아니었다. 신장 150센티 정도에 굵고 단단해 보이는 팔다리, 코와 입이 돌출되고 수염이 거칠게 자란 .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뾰족한 송곳니가 보이고, 어깨 팔다리 가슴 등이 짙은 털로 덮여있는 모습. 마치 유인원과 인간의 중간 단계쯤 되어 보인다고 할까? 횃불에 일렁거리는 그것의 얼굴이 기괴스러웠다.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 사람들을 잡아 뜯을 것 같았다. 그것을 살펴본 마을 주민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뒤로 물러났다.



18.

다음날 날이 밝자 최항해사가 마을 주민들을 인솔하여 밖으로 나가 나머지 그것들의 시체를 끌고 왔다. 모두 여섯 구. 김박사는 의사로서 그것들의 신체구조가 궁금하였다. 인간인지 아닌지. 살펴보니 여섯 구 모두 남자였다. 김박사는 그것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세히 관찰해 보았다. 전체적으로 털이 많고 단단한 근육질에 아주 건장한 몸 구조였다. 힘으로는 그들보다 키도 크고 체격도 큰 희망호 남자 승무원이 당해내지 못할 것 같았다. 손이 크고 솝톱도 날카로워 한번 맞으면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얼굴에도 털이 많았고 입이 다소 돌출되어 있었다. 김박사는 그것의 머리 형태를 보기 위하여 머리며 얼굴에 난 털을 끔하게 깎아 보았다. 그러자 그것의 얼굴 생김이 유인원보다는 인간에 훨씬 가깝게 보였다. 생식기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의 수북한 털을 깎고 드러난 것을 보니 그 생김 인간의 것과 다르지 았다. 그것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거나 언어로 대화를 하는지 등을 확인한다면 더욱 분명하겠지만 일단은 인간인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럼에도 외관상으로 보아 많이 다른 것은 분명하였다.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진화한 것일까? 혹은 퇴화된 것일까? 김박사는 고개를 갸웃하며 사체 확인을 마치고 물러났다.


조함장은 그것들을 장대 끝에 매달았다. 그리고 마을 앞 뒤 입구에서 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 각각 세 구씩 세워 놓도록 하였다. 그것들로 하여금 마을에 접근하면 그렇게 된다는 본보기로 삼도록 한 것이었다. 손발이 묶이고 레이저건에 맞은 가슴에서 흐른 피가 검붉게 엉겨있는 상태로 긴 장대 끝에 매달려 머리가 축 처져 있는 그것들의 모습은 공포스럽기 짝이 없었다. 마을 주민들은 그런 모습을 전혀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그동안 농사짓고 산나물이나 과일 수확하며 평화롭게 지내왔지 남을 죽이거나 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그렇게 끔찍한 사체를 전시까지 한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넓은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 떼, 그들은 딱 그런 삶을 살아왔다. 그런 삶에서 큰 불편도 큰 불만도 느끼지 못하였다. 그런 그들에게 절대적인 변화의 순간이 도래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온 인간들에 의해서.


조함장은 마을 우두머리 아마라를 비롯하여 원로들을 모아 놓고 설득하였다. 이박사와 레나가 중간에서 의사소통을 도왔다. 조함장은 그들에게 마을을 스스로 지키려면 힘을 길러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무장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나아가 그것들의 소굴로 쳐들어가 놈들을 소탕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야 평화가 온다고 하였다. 조함장은 태어나서 농사만 지었지 몽둥이 한번 제대로 휘둘러 보지 않은 순박한 사람들을 군인으로 만들려 하고 있었다. 덩치가 자신들보다 훨씬 큰 데다 희한한 무기로 단숨에 그것들을 죽이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마을 주민들 누구도 조함장의 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그중에 혈기 왕성한 젊은 남자들은 박수까지 치며 환호하였다.


다음날부터 조함장과 최항해사는 젊은 남자들과 함께 무기생산에 들어갔다. 농사짓는 데 사용하던 삽 괭이 쇠스랑 같은 농기 대신 막대기 끝에 뾰족하고 날카롭게 연마한 쇠가 달린 창이 만들어졌다. 호미나 낫 같이 벼를 베거나 밭을 일구거나 산나물을 채취하던 농기 대신 손에 쥐고 휘두를 수 있는 예리한 칼이 만들어졌다. 그러한 것들은 사실 조함장이나 최항해사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원시적인 무기였다. 하지만 변변한 무기를 생산할만한 시설이 없는 상황에서 일단은 최선을 다한 선택이었다. 어느 정도 무기가 준비되자 이제는 무기를 다루는 훈련에 들어갔다. 창이나 칼을 사용하는 법, 적의 급소를 노려 치명상을 입히는 기술이 전수되었다. 그것의 모형을 만들어 놓고 목 가슴 아랫배 사타구니 등에 창을 꽂아 넣는 훈련이어졌다.



19.

지상족을 사냥하기 위하여 지상 마을로 갔던 땅굴족 열명 중 여섯 명이 죽고 네 명이 겨우 살아서 그들의 지하세계로 돌아갔다. 그들은 동료 여섯 명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몰랐다. 함께 달려 내려가다 빛줄기가 비치더니 가슴에서 피를 튀기며 맥없이 고꾸라졌다. 동시에 털과 살이 타는 고약한 노린내가 진동하였다.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에 놀란 그들은 뒤돌아서 허겁지겁 도망쳤다. 그리고 숨어서 지켜보았다. 지상족 마을에서 덩치가 큰 놈들이 나와 주변을 살피더니 쓰러진 동료 한 명을 질질 끌고 가는 것이었다. 저놈들은 무엇이지? 분명히 지상족과는 달랐다. 눈이 어두워 흐릿하게 보였지만 일단은 지상족과 덩치부터가 달랐다. 게다가 그놈들의 냄새는 여태껏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냄새였다.


그들은 지하세계로 돌아가 그들의 우두머리에게 보고하였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몸집이 좀 더 크고 붉은 수염을 길렀는데, 성질이 급하고 호전적인 자였다. 우두머리 자리도 앞의 우두머리가 나이가 들고 노쇠한 틈을 타서 기습공격으로 죽이고 강제로 빼앗은 것이었다. 그는 지상족을 사냥하러 간 부하들이 사냥을 해오기는커녕 여섯 명이나 죽었다는 보고를 받고, '이런 바보천치 같은 놈들'하며 불같이 화를 내었다. 그리고 낯선 자들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옆에 있던 한 심복에게 그놈들까지 당장 잡아오라고 명령하였다.


다음날 밤, 부하 오십여 명을 이끌고 지상족 마을로 간 심복은 마을 입구 장대 끝에 걸려있는 동료들의 주검을 보고 기겁하였다. 상대가 결코 만만치 않음을 직감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동료들 주검만 서둘러 수습하고 철수하였다. 심복이 수습하여 온 부하들 주검을 본 땅굴족 우두머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옷이 다 벗겨진 채 가슴에는 구멍이 뻥 뚫리고 검붉은 피가 엉겨 붙은 참혹한 모습. 어떤 부하는 머리와 사타구니의 털이 다 깎인 치욕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감히 내 부하를 어떤 놈들이 이다지도 처참하게 죽였단 말인가? 내 이놈들을 모두 찢어 죽이리라!"


우두머리가 꽉 쥔 손을 부들부들 떨며 울부짖었다. 그의 포효가 동굴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리고 수많은 동굴족 사람들과 죽은 자의 가족들이 처참하게 널브러진 주검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8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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