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은 또 다른 시작

북카페 점원의 일상이야기, 마지막 글

by 이은호


가게 폐업하고 나서 몇 달은 쉬려고 하였다. 헬스클럽 다니며 그동안 뒤틀렸던 뼈마디도 맞추고, 물 좋고 경치 좋은 곳으로 놀러 다니며 흐트러진 마음도 정리하고. 아무튼 당분간은 일은 잊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그럼에도 머릿속엔 앞으로 뭐 하지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가게 정리가 막 끝나갈 즈음 SNS에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취업까지 연계한 AI 관련 교육이었다. 그런데 그날이 신청 마감일에다 대상자 상한 연령이 딱 64세였다. 그걸 보는 순간 '이게 나에게 주어진 기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바로 막차. 그걸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잠시 망설이다 바로 신청을 하였다.


매주 화, 목요일 3시간씩 12일간 총 36시간의 교육. 게다가 강의 시작 전 온라인 강의 5과목을 들어야 했다. 취업연계 및 AI 교육이라는 데 흥미를 느낀 나는 당연히 온라인 교육을 모두 듣고 오프라인 교육에 참석하였다. 교육은 짜임새 있게 진행되었고, 새로운 걸 배운다는 데 고무되어 열심히 들었다. 두 번째 날에는 사진작가가 와서 프로필 사진도 찍어 주었다. 어, 이러다 정말 취업의 길로 가는 건가 싶었다.


가게 정리 후 푹 쉬려던 마음과는 다르게, 그렇게 얼떨결에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



사장인 딸은 지역의 민간 복합 문화공간에서 일하게 되었다. 가게를 폐업하기로 결정하고 SNS에 폐업공지를 올렸는데, 그날 바로 그곳의 책임자로부터 연락이 왔단다. 그리고 오후에 직접 가게로 찾아오셔서 딸과 면담을 하였다. 평소 딸이 하는 활동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가게를 접는다는 소식을 듣고 바삐 찾았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함께 일해보자고 하였다. 주 업무는 커뮤니티 모임 활성화. 딸이 가게에서 했던 일중 커피 내리는 거만 빼고 그대로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엔 딸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딱 맞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근무조건이나 보상 수준도 괜찮았다. 딸도 구미가 당겼는지 사위와 상의하고 나서 그곳에서 일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어떻게 그렇게 딱딱 맞아떨어지는지. 폐업 결정을 하고 나자 가게 임대도 바로 나가고, 판매용 책도 어렵지 않게 팔리고, 설비와 비품도 잘 처분되고. 마치 모든 일이 기다렸다는 듯이 착착 정리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딸의 취업이 확정되어 더욱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게를 정리할 수 있었다.



딸의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의 순간에 다소 무모하고 겁 없이 도전한 북카페. 불과 2년의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일을 한다는 설렘을, 딸에게는 긴 인생길에서 소중한 경험치를 쌓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딸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게 되었으니, 얼마나 잘된 일인가. 만일 북카페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경험치를 쌓지 않았더라면 닿지 않았을 기회가 아닌가.


딸이 북카페를 하려고 할 때 꾸었던 꿈. 힘들고 지친 사람들이 뭔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할 때, 서로 응원해 주고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해 줄 수 있는 커뮤니티. 그리고 그들이 실제로 이루어낸 작은 성공들을 발표하고, 서로 갈채와 환호를 주고받을 수 있는 무대. 그러면서 점점 힘을 내고 성장해 가는 공간을 꾸미는 것.


딸은 이제는 작은 북카페의 사장이 아닌 보다 더 넓고 전문화된 공간에서 본격적인 꿈을 그려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와 희망을 주는 일을 적극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하면서, 아울러 자신의 삶에 있어서도 보람과 희망을 찾았으면 좋겠다.



동물은 움직여야 산다. 중추기관도 두뇌도 움직이는데 특화되어 발달하였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움직여야 산다. 마침은 그걸로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움직이는 것. 움직임의 연속. 그게 삶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노트북 든 가방을 둘러메고 집을 나선다.


포근함을 넘어서 더운 날씨. 밝은 햇살에 눈이 부시다. 산들산들 부는 바람에 꽃잎이 실려 날린다. 그 바람에 내 꿈도 살짝 얹어서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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