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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Jul 26. 2022

열대과일에 대한 소고(小考)

두리안 예찬



베트남에 있을 때 열대과일을 참 많이 먹었다.


열대과일 하면 대표적인 맛이 뭐니뭐니 해도 '달콤함'이다.

우리나라 과일이 '새콤함'을 기본 베이스로 깔고 그 위에 '달콤' '시원'을 얹었다면, 열대과일은 '달콤함' 위에 '향긋' '새콤'을 얹었다.


나는 그런 달콤한 열대과일 중 특히 망고를 아주 좋아했는데 노랗게 잘 익은 망고를 한 조각 베어 물면 향긋한 향과 함께 달콤한 맛 그리고 부드러운 식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게 참 좋았다.


베트남 생활이 어느정도 익숙해진 후 살짝 덜 익은 푸른색 망고를 소금에  찍어 새콤한 맛과 단단한 식감을 즐기는 현지인들을 따라 해보기도 하였지만 역시 망고는 달콤하고 부드러워야 망고답다.


그러고 보니까 현지인들은 과일을 소금에 찍어 먹는 걸 즐긴다.

망고뿐만 아니라 수박도 소금에 찍고 자몽도 소금에 찍어 먹는데 아무래도 더운 나라이다 보니까 땀을 많이 흘리고 그렇게 해서 부족한 염분을 틈틈이 보충하는 것 같다.


내가 망고를 워낙 좋아해 베트남에서 근무할 때 회사 내 공터에 망고나무를 몇 그루 심었다.

2~3년 키우면 열매가 열릴 수 있게 묘목이 아닌 제법 자란 나무로 심었는데 아쉽게도 일찍 한국 본사로 복귀하는 바람에 끝내 그 맛을 보지는 못하였다.




그다음으로 좋아했던 과일이 망고스틴이다.

짙은 자줏빛의 두꺼운 껍질을 벗기면 하얀 속살의 육쪽마늘이 모습을 드러낸다.

육쪽마늘 한쪽을 베어 물면 어떻게 그렇게 싱그럽고 달콤하고 풍부한 맛이 나는지 정말 경이롭다.

망고스틴을 '과일의 여왕'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 칭호를 받을만하다.


베트남에 간 첫 해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는데 과일가게마다 망고스틴이 마침 제철을 맞아 수북하게 쌓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현지 물가에 감이 없었던 시절이라 고액권인 50만동(약 2만5천원) 지폐를 운전기사에게 주면서 좀 사 오라고 했더니 커다란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 양손에 하나씩 힘겹게 들고 오는 것이었다.


'야 정말 싸네! 많이도 주는군.'하고 생각했는데 차에 싣고 나서 운전기사가 나에게 20만동을 돌려주는 것이었다.

양손에 묵직하게 들고 올 정도로 샀음데도 불구하고 우리 돈으로 1만5천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것도 망고스틴은 비싼 축에 속하는 과일이라 현지인들이 평소에 양껏 먹을 수 있는 과일은 아니라고 하니 현지의 저렴한 물가수준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베트남 말로 '밋'이라고 불리는 잭푸루트도 참 매력적인 과일이다.

외형으로 보면 겉이 투둘투둘하고 긴 타원형인데 크기가 과일 중에 제일 크다.


잘 익은 잭푸르트의 배를 가르면 윤이나는 노란색의 과육이 촘촘히 박혀있는데 보통은 이를 하나씩 분리하여 소량 포장으로 소비자들에게 판다.

맛은 바나나 파인애플 망고 등을 섞은 약간 달콤하고 향긋한 편으로 맛이 그렇게 강하지는 않으나 많이 익을수록 향이 강해진다.

과육이 좀 단단한 편이라 죽죽 찢어 먹기 좋아서 자리에 앉아 무심코 먹다 보면 끝도 없이 들어간다.


베트남에서 근무 때 자주 찾던 단골 한국식당이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 서 있는 잭푸르트 나무에 커다란 열매 한 개가 달려있었는데 볼 때마다 신기해서 가까이 가 자세히 들여다보곤 하였다.

나의 그런 모습을 눈여겨 보았던지 식당 여사장님이 '타오가 그 열매는 꼭 법인장님께 드려야 한다고 아무도 손을 못 대게 한다'는 것이었다.

타오는 그 식당 주방장으로 전체적인 식당 운영을 맡고 있는 현지인 아가씨였다.


어느 날 회사의 현지인 관리자들 포함하여 20여 명이 그 식당에서 회식을 하였다.

한국식당의 음식이 비싸서 그렇지 현지인들도 한국의 돼지갈비나 김치찜 등 한국음식을 좋아하고 소주나 막걸리도 잘 마신다.

모두들 맛있게 식사를 하고 나서 서비스로 나온 카페다(냉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드디어 기다렸다는 듯 타오가 환하게 웃으며 잭푸르트 열매를 끙끙거리며 가져왔다.

"법인장님~ 열매가 딱 맞게 익었어요!"


이미 익어서 말랑말랑해진 열매의 가운데 부분에 칼을 찔러 아래위로 그어 손으로 벌리자 죽 벌어지면서 반들반들 윤이나는 노란 속살이 보이는 것이었다.

타오는 그것들을 하나하나씩 떼어내 옆의 빈 광주리에 담았는데 끝도 없이 노란 조각의 열매들이 쏟아져 나왔다.

분리작업이 다 끝나자 큰 광주리를 거의 가득 채울 정도의 양이었고.. 타오는 그것을 몇 개의 접시에 수북이 담아서 우리들 앞에 내밀었다.

"법인장님 맛보세요!"


그때 잭푸르트의 해체쇼를 처음으로 흥미 있게 봤었고 신선한 과육을 맛있게 먹었던 즐거운 기억이 있는 과일이다.




'과일의 왕'이라고 일컬어지는 두리안의 첫인상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못했다.

차를 타고 가다가 과일가게에 가시가 잔뜩 난 갈색의 커다란 열매가 박스에 잔뜩 담긴 모습을 보'저게 무어냐?' 물으니 '샤우링'이라고 다. 바로 두리안이다.


어느 날 저녁 일과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서니 생전 처음 맡아보는 고약한 냄새가 진동을 하는 것이었다.

마치 시궁창 냄새 같기도 하고 화장실 냄새 같기도 하고 계란 썩은 내가 나는 것 같기도 한 최악의 냄새가 오묘하게 섞인 정말 참기 힘든 냄새였다.


숙소에서 일을 하는 현지인 가정부가 한국인 주재원의 부탁을 받고 시장에서 아주 잘 익은 두리안 한통을 사 왔는데 저녁 식사 후에 후식으로 내어 놓을 것이라고 다.


식사 후 상위에 올려져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있는 두리안을 보고 있자니 슬슬 속이 울렁거리고 두리안 과육 조각들이 마치 뭉쳐진 로 보이기까지 하였다.


"뭐? 이렇게 고약한 걸 먹으라고?"



두리안을 일컬어 '천국의 맛'과 '지옥의 냄새'를 지닌 과일이라고 하는데, 그토록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이유는 꽃가루받이 역할을 해주는 왕박쥐를 유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과연 박쥐 정도는 되어야 좋아할 만한 냄새인 것이다.


내가 두리안의 매력에 빠지게 된 때는 오히려 베트남 근무를 마치고 한국 본사에 복귀하고 나서 휴가 때 베트남 여행을 가서이다.


호찌민에서 달랏으로 가는 길에 두리안을 잔뜩 쌓아놓고 파는 농가를 지나게 되었는데 맛이나 보자며 잠시 들렸었다.

그런데 내 머리에 박혀있는 선입견과는 달리 그렇게 냄새가 독하지 않았다.

아마도 야외인데다가 과일이 신선해서 그런지 냄새가 참을만했고 맛은 전혀 뜻밖으로 괜찮았다.

푹 삶은 고구마 같은 식감에 입안에 향긋한 향이 돌며 바나나 망고 파인애플 아몬드 바닐라 커스터드 크림 등등을 섞은 것 같은 오묘하고 풍부한 맛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아하~ 바로 이맛이구나! 그래서 맛본 사람들이 잊지 못해 자꾸 찾게 되는구나!"


두리안은 정말 코로 느끼는 냄새와 입으로 느끼는 맛이 극과 극으로 다른 멋진 녀석이었던 것이다.

그 뒤로는 베트남을 갈 때마다 두리안을 찾았고 그 녀석의 참맛을 즐기곤 하였다.


다른 열대과일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두리안은 열량이 높다. 그래서 잠자기 전에는 많이 먹는 걸 피하라고 한다. 살이 찌는 것도 문제지만 자칫 위와 심장에 부담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초에 베트남 여행을 가서도 두리안에 대한 기대감을 고 마켓에 들렀었다.

거기서 두리안, 잭푸르트, 망고, 망고스틴, 석가, 아보카도 등등을 푸짐하게 샀는데 과연 두리안은 과일의 왕답게 가격이 비쌌다.

1kg에 우리 돈으로 1만7천원 정도 했으니 잭푸르트의 4배, 망고5배에 달하는 가격이었다.


가격은 비쌌지만 이번에 산 두리안이 정말 일품이었다.

냄새가 좀 나긴 하였지만 예전에 알던 그런 냄새가 아니었고 오히려 향긋하기까지 했다.

고약한 냄새가 훨씬 덜한 품종이 개발되었다고 하던데 아마도 그런 종류가 아닌가 싶었다.


포크로 푹 떠서 입에 넣어 본 녀석의 맛은 기대에 저버리지 않고 향긋하고 부드럽고 풍부한 맛을 온전하게 전해 주었다.

"그래 역시 두리안이지!"


그날 실컷 먹고 남은 두리안을 냉장고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다음날 언 상태로 먹었는데 이게 또 별미였다.

맛과 풍미는 그대로 간직한 채 입안에서 살살 녹는 아이스크림이었던 것이다.

"두리안 아이스크림은 더 맛있네!"



두리안은 확실히 호불호가 갈리는 과일이다.

냄새에 질려 절대로 입에 대지 않는 사람도 있고, 맛을 보고도 두리안의 맛을 못 느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두리안의 진정한 맛을 알고 면 자꾸 찾게 되는 중독성 있는 과일임에는 틀림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과일에 비해서 월등히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앞으로 냄새가 덜한 품종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 좀 더 대중화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이미 그 냄새를 극복한 마니아 층에서는 아쉬움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만일 홍어가 코를 찌르는 독특한 향이 사라진다면 사람들이 홍어를 찾을까?

뒤끝에 코를 탁 쏘는 홍어 한점..

"그래~ 이것이 홍어지!"


마찬가지로 두리안은 두리안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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