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올 거야? 숙소는 같이 다니기 편하게 우리 집에서 지내면 되니까 비행기표만 끊고 연락해!"
베트남 호찌민에서 사업을 하시는 김사장님의 사모님께서 아내에게 베트남에 오라고 또 전화를 하셨단다.
김사장님은 10여 년 전 내가 회사 베트남 공장에서 근무할 때 알게 된 분이다. 나이는 나보다 10년쯤 연배가 높으신데, 생산설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현지 사정을 잘 알고 계셔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당시 회사에서 베트남에 공장을 건설하는 초기에 내가 법인장으로 발령받고 갔었다. 생산설비 설치 및 운영을 하면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많이 발생하였고, 그때마다 김사장님께서 나서서 직접 해결해 주시던지 아니면 최소한 해결이 가능한 업체를 연결해 주시곤 하였다. 게다가 김사장님은 우연하게도 한국에 있는 집도 나와 같은 동네에 사셔서 더욱 친해질 수 있었다.
이후 내가 한국 본사로 복귀하고 나서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해마다 하계휴가 때면 아내랑 함께 베트남으로 건너가 김사장님 부부와 베트남 여행을 하였다. 그러다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히면서 베트남 여행이 중단되었는데, 지난달 모처럼 한국에 오신 김사장님 부부를 뵈면서 베트남 여행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게 된 것이다.
사실 코로나19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여러 가지 복잡한 속내가 있었지만, 모처럼만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7월 6일 오전, 7박 8일 일정으로 아내와 함께 베트남 호찌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019년 3월 이후 3년이 훌쩍 지나 다시 찾은 호찌민의 풍경은 전혀 낯설지 않고 친근하게 다가왔다. 베트남 날씨는 오히려 한국보다 덜 더워 한낮에도 활동하기가 한결 수월하였다. 아내와 나는 김사장님 부부와 반갑게 재회하고 국내선으로 이동하여 첫 목적지인 뀌년(Quynhon)으로 향했다.
뀌년은 영어 발음으로는 퀴논이라고 하는데, 베트남 중부 다낭과 냐짱 중간쯤 위치하고 있다. 그곳은 월남전 때 파병된 한국군과 월맹군 사이에 벌어진 치열한 전투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아픈 역사를 갖고 있는 곳이다. 아직 코로나19 영향으로 항공기 운항이 100% 정상화되지 않아서인지, 비행기는 2시간 반이나 연착하였다. 그리하여 최종 목적지인 뀌년의 FLC 골프리조트에는 밤 10시나 되어 도착할 수 있었다.
리조트는 기대 이상으로 규모가 컸다. 객실 600여 개의 5성급 호텔, 룸 300여 개의 빌라, 동물원 사파리, 36홀의 골프장 등을 갖추고 있었으며, 특히 바닷가를 끼고 있어 자연환경과 풍광이 아주 뛰어났다. 아직 외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베트남 현지인들이 가족단위로 많이 찾아 물놀이도 하고 사파리 투어도 하며 휴가를 즐긴다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골프장이 한산하여 우리는 느긋하게 골프 라운딩을 할 수 있었다.
가격도 아주 저렴하여 호찌민-뀌년 왕복 항공권, 스위트룸 3박, 골프 18홀 3일 모두 포함한 가격이 인당 500불 정도였다. 쫓기듯이 라운딩 하며 한 번에 30만 원 가까이 지출하는 한국 골프에 비하면 그야말로 천국이라 할만하였다. 그렇게 골프 라운딩과 휴식을 즐기며 모처럼 이국에서의 여유와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뀌년에서 사흘간의 꿀맛 같은 시간을 보내고 호찌민으로 돌아왔다. 호찌민에서는 김사장님 아파트에서 지냈다. 자녀가 모두 따로 살고 두 분만 계신다며 굳이 숙소를 잡지 말라고 하셔서, 염치불구하고 김 사장님 댁으로 들어가게 정말 편하게 지냈다. 가까운 친지라도 하루 이틀 집에 들이기가 쉽지 않은 요즘인데 사장님과 사모님은 객식구인 우리에게 나흘이나 묵게 하면서 불편함이 없도록 세심하게 배려를 해주셨다.
사장님이 사는 Vinhome Central Park 아파트는 건물만 즐비하게 늘어선 한국의 아파트 단지와는 달랐다. 사이공강변에 수십만 평의 공원과 함께 조성되어 주거와 생활이 잘 조화를 이룬 주거지로,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인프라와 환경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더운 낮에는 밖에 사람들이 많이 없지만, 아침과 저녁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원에 나와 휴식과 운동을 즐기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위치한 베트남에서 제일 높은 81층 빌딩의 75층 카페에서 내려다보는 호찌민 시내의 야경도 너무 좋았다. 우리는 그곳에 나흘간 머물면서 삼 일간의 골프 라운딩과 하루의 휴식을 취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해외여행하면 또 하나의 즐거움이 현지 음식인데, 베트남 하면 쌀국수를 빼놓을 수가 없다. 한국에서 베트남에 있을 때 즐겨 먹던 쌀국수가 그리워 많은 식당을 찾아다녔지만 베트남에서 먹던 그 맛은 찾을 수가 없었다. 이번 여행에 잔뜩 기대를 하고 다시 찾은 그때 그 식당. 쌀국수에 라임 한 조각, 매운 고추, 야채 넣고 캐러멜소스랑 칠리소스 조금 넣고 휘휘 저어서 군침을 흘리며 한 젓가락 쓱.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퍼졌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그릇을 들어 후루룩 국물을 들이켜니 속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아, 쌀국수 한 그릇으로 전해지는 그 뿌듯함과 행복감이란.
한 번은 퓨전 베지터리안 식당을 찾았다. 식당이 위치한 지역은 베트남전 이전 남쪽 월남 정권의 고위 관료나 부자들이 살던 동네라고 하였다. 베트남전 이후 주인이 대부분 북쪽 월맹군의 고위 관료로 바뀌면서, 지금은 주로 외국사람들에게 임대를 주거나 식당으로 개조하여 영업을 하는 곳이 되었다고 하였다.
우리가 찾은 식당도 옛 건물의 골격은 유지한 채 내부 인테리어만 개조하여 고급스럽게 꾸민 곳이었다. 분위기도 운치가 있었고 음식 하나하나도 깔끔하고 정갈하였다. 주 재료로 고기 한점 없이 야채 버섯 콩 두부 등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맛도 정말 훌륭하였다.
베트남의 또 하나의 매력덩어리는 신선하고 달콤하고 맛있고 게다가 값이 무지하게 싼 열대과일의 천국이라는 것이다. 망고, 망고스틴, 잭푸루트, 수박, 용과, 석가 그리고 과일의 왕 두리안 등등. 사실 베트남에 가면 바나나 같은 건 잘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너무나도 달콤하고 맛있는 과일이 지천에 널려있기 때문이다.
맛있는 베트남 음식으로 식사를 양껏 하고, 이내 후식으로 맛있는 열대과일을 또 실컷 먹는다. 너무 먹어 배가 터질 것 같은데 희한하게 소화는 잘 된다. 참으로 베트남은 천국 같은 곳이다.
순식간에 7박 8일이 지나 마지막 날이 되었다. 검사소에 들러 한국 입국에 필요한 코로나19 신속항원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음성' 판정이 나왔다. 다음으로 사우나에 가서 발마사지를 받고 사우나를 하면서 긴 여행의 피로를 풀었다.
김사장님 댁에서 사모님께서 차려주시는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고 시간에 맞춰서 공항으로 향했다. 떤선녓 공항에 도착해서 김사장님 부부와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져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우리가 탄 비행기가 활주로를 떠나 호찌민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창밖으로 저 멀리 보이는 호찌민 시내의 불빛이 아른거린다.
아, 벌써 베트남이 그립다.
김사장님 부부와는 이번이 일곱 번째 여행이었다. 내가 베트남 근무를 마치고 2012년 1월에 본사로 복귀한 이후, 한국에 오신 김사장님 부부와 식사를 하였다. 그때 '올해 휴가 때 뭐 하냐? 계획 없으면 베트남에 놀러 오라.'고 하신 게 계기가 되어, 2014년부터 매년 베트남으로 건너갔고 2018년에는 태국에서 만났다. 2019년 3월 넉넉한 일정으로 베트남에 건너갔을 때는 멀리 북쪽 끝 고산지대에 위치한 '사파'라는 곳엘 갔다. 여정이 멀고 힘들어 한국에서는 도저히 갈 엄두가 안나는 그런 곳이었다. 그곳이 지금까지의 베트남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이기도 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만나 그것도 내가 한국 본사에 복귀하면서 인연이 끊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김사장님을 마치 큰 형님처럼, 김사장님은 나를 동생처럼 격의 없이 대하며 맘이 잘 통했던 것 같다. 내 아내도 김사장님 사모님과 언니 동생 하면서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다.
친한 친구 간이나 가족 간이라도 매년 부부동반으로 여행을 함께한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서로 맘이 안 맞는 일이 생길 수도 있고 다른 여러 가지 사정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사장님 부부와 우리 내외는 여태껏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코로나19로 막혔던 하늘길이 열리자 바로 베트남으로 날아갈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또 내년엔 김 사장님 부부와 어떤 여행을 하게 될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