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메일함에서 꺼내본 이야기, 청도 여행
기억해 내는 것은 어렵지만 기억을 찾아내는 것은 그나마 조금 쉽다.
사진 폴더에서, 메일함에서, 블로그의 오래된 페이지에서 가끔 지나간 글들을 찾아본다. 긴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지나가버린 시간의 편린들을 찾아 읽으며 그리움보다는 그 시간 속의 나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주섬주섬 모아서 창고에 넣어두었다.
- 이 글은 <오래전> 친구가 사는 중국의 청도(靑島)에 놀러 갔을 때 큰아이에게 보냈던 메일을 보낸 편지함에서 꺼내어 그대로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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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참 빠르게, 그리고 각기 다르게 흐르고 있다는 걸 느낀다.
비행기로 한 시간 남짓 거리의 이곳 칭다오는 우리와 똑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거나 오히려 한 발 앞서 걸어가고 있다고도 생각되는 반면, 정말 시간이 이곳만 천천히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어제는 이곳의 유명한 해안가를 돌며 이곳 사람들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았고, 다시 최고로 번화한 곳을 천천히 걸으며 돌아보았다. 첨단의 건물과 호화롭게 진열된 물건들이 있는가 하면 그 옆에는 백 년도 더 된 건물이 지저분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위용을 풍기고 있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또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보존할 것은 보존해야겠다는 고집스러운 모습이 나쁘지는 않더구나.
그리고 거리를 걷다 보면 큰 나라답게 6차선 10차선 등 넓은 차도가 흔히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이 넓은 도로에 횡단보도는 있는데 신호등이 없기 일쑤여서 신호등 지키기를 어릴 적부터 배우고 비교적 잘 지켜온 엄마는 조금 당황스러웠단다. 신호등이 있는 곳이어도 십중 팔구는 무시하는 모습이기 때문에 그걸 지키기 위해 횡단보도에 서있는 사람이 이상해 보일 지경이라니까. 참참 내...
그래도 유유히 건너가는 중국사람들이나 그런 틈을 씽씽 달리는 자동차들을 본다. 언제나 느긋한 대국인들의 여유랄까 아니면 내 맘대로다 하는 배짱이랄까 하는 걸 느끼며 위험하면서도 재미있다. 그것도 여러 번 하다 보니 그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만 자율과는 다른 무질서가 제대로 적응이 안되더라. 중국사람들이니까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들의 질서를 무시하는 모습은 거리에서 뿐 아니라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아이들이 북적이는 패스트푸드 점이나 시장통 등 곳곳의 장소에서 흔한 일이다. 그리고 물건을 사면 한 번쯤 깎거나 숫자나 값을 꼭 확인해야만 할 정도로 종종 엉뚱하게 더 내도록 만들기 일쑤이기 때문에 꼭 염두어 두어야 할 사항이란다. 버스 안에서 공공장소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또 얼마나 큰지 주변 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모습은 배짱이 아니라 안하무인이란 생각이 들었다.
식당엘 가도 여러 가지 음식을, 그리고 많은 양을 시켜놓고 마냥 앉아 느릿느릿 먹고 있는 모습을 본다. 그들의 만만디가 때로 속 터지고 미련해 보이면서도 그 속에서 그들의 저력이 생겨나는 것이었나 생각이 들었다. 비록 눈부시게 잘 사는 모습은 아니어도 비굴하거나 조바심 나게 허둥대지 않는 모습이 꾸준히 발전하는 이유가 아닐까? 더구나 엄마가 만난 사람들은 모두 여유 있게 웃는 모습의 친절하고 선한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느리고 게으른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꼿꼿한 자존심을 지키며 그 이면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노력을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다.
엄마 친구 집에는 오랫동안 매일 와서 집안일을 도와주는 도우미 아줌마가 있더구나. 우리가 흔히 알기로 단순히 허드레 집안일이나 도와주는 걸로 알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만은 않았다. 간호사 출신의 그 아줌마는 꽤 괜찮은 분으로 보였다. 초기에 이곳의 말과 문화에 익숙하지 않을 때는 현민이와 윤지의 숙제나 어학공부 상대가 되어주고 또 학교에서 학부모 회의나 상담이 있을 때는 부모처럼 대신 가서 상담도 하고 자료 파악과 기재 등 중요한 일들을 맡아서 해주었다는구나. 그야말로 전문 보모였다.
뿐만이 아니다. 남의 나라에서 몸이 아프면 얼마나 서글프겠니. 더구나 병원에도 동행해서 표현하기 힘든 아픔이나 통증을 잘 알아서 의사와 상담해주고, 집안의 각종 민원이나 해결해야 할 많은 일들을 대행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단다. 타지에서 진심으로 도움을 주는 좋은 분을 만났으니 얼마나 행운인지. 이런 분들 덕분에 중국인의 인상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걸 보면 외국인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도 달라져야겠지?
어제는 한국의 샤부샤부와 비슷한 유명한 요리(훠구어火锅)라는 걸 먹었는데 처음에는 독특한 향신료의 맛이나 먹는 재미도 있고 맛있게 먹었지. 그런데 그들 특유의 기름진 요리 때문에 느끼함은 물론 끝없이 나오는 음식과 그 양에 질렸는데 무엇보다도 음식값이 궁금했고 또 은근히 걱정되었다. 다 먹고 나올 때 보니 우리 네 명 모두가 배 터지게!! 먹었는데도 서울에서 우리 가족 외식비의 1인분 정도여서 놀랐다. 적어도 이 값의 서너 배 정도는 더 나올 줄 알았거든. 네 식욕이라면 중국에서 얼마든지 만족시켜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며칠 지내다 보니 선진문화는 결코 아니지만 사소한 곳에서 우리네와 비교하며 경쟁력을 느끼게 하는구나. 우리가 분명 위기의식을 느껴야 할 때인데 그걸 잊고 있는 것 같다. 정말 네게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언제라도 네가 이곳의 문화를 직접 느껴보도록 엄마는 권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해안도시인 청도(靑島)의 바닷가에서 이곳의 유명한 청도맥주도 언젠가는 너와 같이 한 잔 들이켜보고 말이야. 물론 엄마도 원샷이다. 근데 우리나라의 맥주보다 좀 독한 것 같더라. 음식점에서 식사 중에 흔히 한 잔씩 하는 이곳 사람들을 보며 무심코 한 잔 쭉 마셨다가 갑자기 머리가 핑 돌고 어지러워서 에고.. 엄청 힘들었단다.
이곳은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이듯이 해양성 기후라서 그런지 늦가을인데도 집 앞의 잔디가 봄날의 빛깔처럼 파릇파릇하고 공원의 나무들도 초록이란다. 가을 하늘 아래 장미꽃조차 이쁘게 피어있구나. 자연의 빛깔처럼 나무도 사람들도 대체로 선하다는 걸 알게 하는 여행이다. 목소리들은 크지만 언제나 웃으며 대하는 모습이 기분 좋게 했단다. 푸른 섬 청도(靑島), 이곳에 친구가 살고 있어서 엄마는 참 좋다.
해주고 싶은 말은 끝없지만 밤이 늦었으니 컴을 닫아야겠다. 아직 남아있는 중간고사 준비 후회 없이 하고 만족한 결과 얻길 바란다. 그리고 엄마 없는 집안도 좀 둘러보는 우리의 장남 모습도 느끼게 해 주길. 잘 알아서 하겠지만 아빠도 도와주고(부려먹어서 미안^^*)
생각정리도 없이 한 번에 다다닥 두드리느라 좀 길어졌고 두서가 없겠지만 이해하리라 믿고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