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사진과 함께 하는 류시화 님의 글
끝없이 넓은 들판에서 일을 하다가 더위에 지치면 쉴 그늘로 심은 망고나무가 평화로운 풍경을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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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여인의 영혼! 고독하기 때문에 근접할 수 없고, 신비감과 허무감이 교차하는 한 영혼이 릴루에 대한 나의 오랜 기억이다. 그리고 세월이 흐를수록 그 기억은 더 뚜렷해져서 릴루가 더욱 고독하고 신비하게만 다가온다. 릴루는 잘 있을까? 그녀는 정말로 강고트리의 그 성자를 만나러 떠났을까?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자기 안에서 찾아냈을까?
- 「인생」 중에서
그들의 표정은 바라보는 이에게 위안을 준다. 뭐가 문제인데? 괜찮아... 하는 것 같다. 늘 No ploble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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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금액을 묻자 차루는 또 손을 흔들며 허풍을 떨었다.
“돈은 주고 싶은 대로 주세요. 전 아무 문제없습니다.”
내가 일부러 정색을 하면서, 그럼 1루피(30원)만 줘도 되겠느냐고 묻자 차루는 외쳤다.
“노 프라블럼!”
그러면서 차루는 당당하게 덧붙였다. 1루피만 줘서 내가 행복하다면 그렇게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자기의 친구이니까, 자기한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내 행복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만의 행복이 아니라 돈을 준 내 자신이 오래도록 행복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달라고 했다.
영리한 차루, 얄미운 차루, 못난 차루……. 첸나이를 떠난 뒤에도 오랫동안 차루의 인상이 지워지지 않았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생을 살면서도 “노 프라블럼!”을 외치며, 뿌웅뿌웅 고무나팔을 울리며 세상 속으로 달려가는 차루! 많은 걸 갖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집착과 소유를 벗어던지지 못하는 내게 그는 잊지 못할 훌륭한 스승이었다. - 「 빈자의 행복」중에서
순백의 대리석의 건축물은 하루종일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빛의 신비로움을 발한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시공을 초월한 사랑이 깃든 이슬람 예술의 걸작. 언제나 엄청난 인파로 넘쳐나는 세계 문화유산의 최고의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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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나는 누군가가 필요했었다. 별일 없이 잘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기에 아무도 내 마음의 구석진 다락방을 들여다보진 않았지만, 그 다락방 속에서 나는 무척 외롭고 사람이 그리웠었다. 그날 버스 지붕 위에서 만난 인도인들, 그들이 그 그리움을 구석구석 채워 주었다.
-「누구나 둥근 하늘 밑에 산다」중에서
강변에 위치해서 더욱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던 아그라성.
자연스럽게 산책해도 좋은 문화유산에 마실 가듯 가볼 수 있는 인도인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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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당신에게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고 마구 화를 내든지,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 해도 마음을 평화롭게 갖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당신이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니 왜 어리석게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쪽을 택하겠습니까?”
-「 영혼의 푸른 버스」중에서
날마다 무수한 세계인들을 받아들이는 웅장한 묘당 타지마할의 위대함은 영원한 사랑을 상징해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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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미 그대에게 일깨워 주었어. 그대가 못 알아들었을 뿐이지. 다시 한 번 날 잘 보게. 내 몸에 무엇이 감겨져 있나? 밧줄이 나를 묶고 있지. 내가 말해 줄 건 그것뿐이야. 그리고 이 밧줄은 내 스스로 감은 것이야. 그대를 구속하고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그대 자신임을 잊지 말게. 그대만이 그대를 구속할 수 있고 또 그대만이 그대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
-「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고 어디로 가는가」중에서
세상이나 사람을 의식할 일 없이 살아가는 일상이 당연히 평화로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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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여행자들이 다시는 오지 않겠다며 떠나지만 1년도 안 되어 다시 찾게 되는 나라! 자신과 다른 이들을
개선하고자 나라를 떠나는 자는 철학자이지만, 호기심이라 불리는 무목의 충동에 의해 이 나라 저 나라를 찾는
자는 방랑자에 불과하다고 로렌스 고울드는 말했다. 나는 그런 방랑자가 되고자 노력했다. 인더스 강가에서
탁발승들이 오네시크리토스에게 반문했듯이, ‘타인이 누구인가를 묻기 전에 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반문해 보는 장소가 나에게는 다름 아닌 인도였다.
- 「굿모닝 인디아」중에서
위대한 유적들 사이에 그들의 삶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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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 알프레드 디 수지
인도의 아름다움은 새벽이나 해질 무렵뿐 아니라 하루 스물네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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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서지기 직전인 나무 침대에 누워 천장에 뚫린 큼지막한 구멍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구멍으로 별들이 유성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우주 전체가 쿠리 마을과 바니안나무와 5루피를 떼어먹은 노인의 집 위로 흘러가고 있었다. 가진 게 없지만 결코 가난하지 않은 따뜻한 사람들의 토담집 위로 별똥별이 하나둘 빗금을 그으며 떨어져 내렸다. 지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역시 저 하늘 호수로부터 먼 여행을 떠나온 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들 때까지 별을 구경할 수 있는 구멍 뚫린 방이 나는 너무 좋았다.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중에서
먼지와 바람, 햇볕 아래 나무와 풀... 자연 속에 사람이 있고 동물이 함께 사는 삶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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뭄바이에 사는 깨달은 스승 U. G. 크리슈나무르티를 만나기 위해 릭샤를 타고 갈 때였다.
속도를 줄이라는 내 거듭된 충고에도 불구하고 운전사는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결국 릭샤가 전복되고 말았다.
마침 길가 진흙밭으로 떨어져서 목숨을 건졌지만 나는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운전사에게 다가가 죽을 뻔했지 않느냐고 소리를 지르자 운전사는 오히려 화내는 나를 나무랐다.
“죽을 뻔했을 뿐이지, 죽지 않았는데 왜 화를 내는 거요? 일어나지 않은 일을 갖고 분노의 감정으로
쓸데없이 자신을 괴롭히지 마시오.”
-「안 죽었지 않은가」중에서
자연에 감사하고 감사를 바치는 기도를 위해 틈만 나면 신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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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방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난 당신이 그것들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기 바란다.
자신의 소유물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어떻게 종교적인 나라를 여행한다고 할 수 있는가?”
소매치기가 분명한, 눈이 희번뜩한 중년 남자는 내가 경계의 시선을 늦추지 않고 배낭을 꼭 부둥켜안고 있자
사뭇 훈계조로 말했다. 알라하바드로 가는 복잡한 삼등칸 열차 안에서의 일이다.
그래도 내가 긴장을 풀지 않자 그는 궁금해 죽겠다는 듯이 물었다.
“도대체 그 배낭 속엔 무엇이 들었지?”
-「 소매치기의 설법」중에서
자연과 신이 주시는 감사를 누리고 나누는 시간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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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일주일을 바라나시에 있는 동안, 나는 매일 저녁 그 이상한 여인숙 주인에게서 그 질문을 들어야만 했다.
“그래, 오늘은 뭘 배웠소?”
그러다 보니 차츰 나도 세뇌가 되었다. 그래서 일주일쯤 지났을 때는 여인숙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도 모르게 스스로 자신에게 묻게 되었다.
“오늘은 내가 뭘 배웠지?”
그것은 바라나시를 떠나 인도의 다른 도시들로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딜 가든지 저녁에 숙소로 돌아올 때면 그것을 내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알고 보니 그 여인숙 주인은 좋은 스승이었다.
-「 오늘은 뭘 배웠지?」중에서
사원과 흐르는 강물과 사람이 일체가 되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곳이 인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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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나는 오후가 지나서야 무사히 타고르 하우스에 도착했다. 더 많은 인도인들의 더 많은 질문에 답하고 나서야 제대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타고르가 『기탄잘리』에 쓴 시의 주인공이 곧 나 자신이었다.
“내 여행의 시간은 길고 또 그 길은 멉니다. 나는 태양의 첫 햇살을 수레로 타고 출발하여 수많은 별들에 자취를 남기며 세계의 황야로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당신에게 가장 가까이 가는 것이 가장 먼 길이며, 그 시련은 가장 단순한 곡조를 따라가는 가장 복잡한 것입니다. 여행자는 자신의 문에 이르기 위해 모든 낯선 문마다 두드려야 하고, 마지막 가장 깊은 성소에 다다르기 위해 온갖 바깥 세계를 방황해야 합니다.
-「 타고르 하우스 가는 길」중에서
인도의 영원한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를 추모할 수 있는 인도인들은 자부심을 갖는다. 부러운 모습이다. 신발을 벗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라즈가트의 간디 화장터. 그들은 기꺼이 신발을 벗고 맨발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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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세 가지 만트라를 전수시켜 주기 위해서 왔다. 이 세 가지 만트라를 기억한다면 그대는 다른 누구도 스승으로 섬길 필요가 없다. 그대의 가장 완벽한 스승은 그대 자신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요기는 차창 너머로 손을 뻗어 내 머리에 손을 얹고 세 개의 만트라를 전했다.
“첫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너 자신에게 정직하라. 세상 모든 사람과 타협할지라도 너 자신과 타협하지는 말라. 그러면 누구도 그대를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둘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찾아오면, 그것들 또한 머지않아 사라질 것임을 명심하라.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음을 기억하라.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해도 넌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을 것이다.
셋째 만트라는 이것이다. 누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거든 신이 도와줄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마치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네가 나서서 도우라.” -「 세 가지 만트라」중에서
인도, 그곳은 신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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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았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 속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
한때는 불꽃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원했으니
새벽의 문 열고
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
아직 잠들지 않은 별 하나가
그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그대는 잠이 덜 깬 나무들 밑을 지나
지금 막 눈을 뜬 어린 뱀처럼 홀로 미명 속을 헤쳐가야 하리
이제 삶의 몽상을 끝낼 시간
순간 속에 자신을 유폐시키는 일도 이제 그만
종이꽃처럼 부서지는 환영에 자신을 묶는 일도 이제는 그만
날이 밝았으니 불면의 베개를 머리맡에서 빼내야 하리
오, 아침이여, 거짓에 잠든 세상 등 뒤로 하고
깃발 펄럭이는 영원의 땅으로 홀로 길 떠나는 아침이여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자
혹은 충분히 사랑하기 위해 길 떠나는 자 행복하여라
그대의 영혼은 아직 투명하고
사랑함으로써 그것 때문에 상처 입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리
그대가 살아온 삶은
그대가 살지 않은 삶이니
이제 자기의 문에 이르기 위해 그대는
수많은 열리지 않는 문들을 두드려야 하리
자기 자신과 만나기 위해
모든 이정표에게 길을 물어야 하리
길은 또 다른 길을 가리키고
세상의 나무 밑이 그대의 여인숙이 되리라
별들이 구멍 뚫린 담요 속으로 그대를 들여다보리라
그대는 잠들고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꿈을 꾸리라
-류시화, 여행자를 위한 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