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것과 못난 것
오늘도 뉴스 기사로 이렇게 준비되지 않은 황망한 이별을 보면서 타인의 고민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뭘 했던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저 내 코가 석자여서 이것저것 겹치는 포지션이 대단한 핑계나 되는 것처럼 스스로 만들어낸 면제부로 합리화하기 바빴을 뿐이다. 아까운 사람 하나 떠나보내고 다들 때늦은 뒷말이나 분분히 떠들어대고 있다.
그냥 내 불편함에 대해서 조금만 침묵하고 상대의 고통에 조금 더 다가가 공감을 하는 것이 뭐 그리 힘들었을까. 그럭저럭 적당한 겸손에 익숙해서 적극적인 공감과 이해를 못하고 사는 것 같다. 그런데도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이 열악해서 내 마음 전달이 안된다는 불평을 품는다. 잃고 나서 안타깝다 말하는 것도 부끄럽다.
지역에서 함께 하는 이들의 사진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발걸음 뜸하시던 분의 일상 사진이 올라왔다. 이럴 때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분을 챙기는 댓글로 말을 거는 이들이 있다. 그분이 팔순의 고령이어도 조금 더 어린(?) 회원들이 똑같은 회원으로 편하게 함께 노는 모습이려 마음 쓴다.
중요한 건 그분이 배려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애쓰면서 그분을 존중하고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대표임원이던 분은 아무리 바빠도 그분 사진에 친구처럼 늘 예의바른 다정한 댓글을 잊지 않는다. 특히 행사나 모임이 있을 땐 혹시나 다른 회원들이 불편해할까 봐 뒷걸음질 치며 빠지려 하는 그분을 슬쩍 등 떠밀어 가능한 참여시키며 무심한 척 그분을 먼저 챙긴다. 팀을 이끄는 분으로서 보여주는 따뜻함을 회원들은 잘 알고 있다.
사람 사는 모습이 다 이런 줄 알았다.
길 가다가 약한 사람 밀치고 앞서가려 하지 않고, 좋은 자리엔 불러서 같이 데리고 가서 함께 즐거우면 더 좋은 게 일반적인 줄 알았다. 같이 가던 사람보다 더 돋보이고 싶어서 옆 사람을 질투하고 슬쩍 뭉개버리고 혼자서 어설프게 묘기 부리는 짓을 구경하기도 한다.
팔순의 회원과 격의 없이 잘 지내려 애쓰는 임원과 회원들이 내 주변에 있다는 게 훈훈하고 비로소 고맙다. 당연한 듯 그렇게 지내왔는데 그게 흔한 일이 아니어서 씁쓸하지만 세상사 그렇듯 모두 자신이 옳고 나 하나 잘 되면 그만이지 하는데 뭐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디선가는 자격 운운하는 별스럽지 않은 권력을 가진 입장의 사람이 '나이가 많아서 나는 반댈세' 한다. 연령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자신의 미래를 장담하지 못하고 그렇게 입찬 대꾸를 하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게 이유라면 당신 참 못되었군' 누가 말했다. 그랬더니 누군가가 그건 '못된 것'이 아니라 '못난 것'이다 라고 정정해 주었다.
얼마 전 TV 예능프로에 배우 박중훈이 나와서 하는 말을 지나가다 잠깐 보았다. 연로하신 어머님이 정신이 맑으실 때 이런 말씀을 하신다고 한다.
어린 사람 나무라지 마라. 내(네)가 지나온 길이다.
나이 먹은 사람 흉보지 마라. 내(네)가 갈 길이다.
긴 인생을 살아오시면서 저절로 터득된 말씀이 이토록 지당하다.
이젠 나이가 적으면 적은 것으로 또는 많으면 많은 대로 완장을 찼으면 완장으로 오로지 자기만의 입장으로 그것이 마치 벼슬이나 훈장인양 휘두르는 모양새를 보고 있는 중이다. 그 모습들을 바라보며 '역시 제대로 나이 먹은 분은 다르구나...' 또는 반대로 '그래서 이제껏 미생이구나' 싶기도 한 사람들을 본다.
한 치 앞만 주시하는 편협한 삶을 경계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하면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먼저 터득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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