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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리즈 Jan 23. 2019

남편의 운동화

모두들 제 갈 곳으로 나간 후의 현관에 서서 이리저리 흩어진 신발들을 정리한다. 이 집에 사는 사람은 네 명이건만 좁은 현관에 신발들이 가득 차 있으니 볼 때마다 정리하지 않으면 가히 잔칫집 현관이다.

특히 작은 아들은 매일 입는 옷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신발 때문에 갖가지 구두와 운동화들이 현관과 신발장으로 들락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현관의 신발정리를 자주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를 만들기 때문에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다행히 큰 아이는 한두 켤레로 모든 게 해결되기에 별 문제는 없는 편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남편의 신발이 하나 더 늘었다.

출근할 때 신는 구두 두 어 켤레와, 운동이나 산책 나갈 때 신는 운동화가 전부였는데 그 운동화가 낡아서 미루고 미루다 새로 산 운동화가 한 켤레 더 늘었다. 그래서 헌 운동화를 버리자고 했더니 비가 오거나 할 때 질척한 산길을 걸을 때는 헌 운동화가 좋겠다고 그냥 두라고 한다.

진작부터 운동화를 구입하려 했지만 괜찮다고 또 괜찮다고 극구 사양하다가 같이 외출한 김에 새 운동화를 사게 되었다. 이제 겨우 한 켤레 장만한 운동화가 현관에 얌전히 놓여있다.

새 운동화가 그렇게도 흐뭇한지 남편은 운동 나갈 때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신고 다닌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어쩐지 애틋하다. 도무지 물욕이 없어서 무언가 절실히 필요할 때가 되어야 구입하려 한다. 본인을 위한 지출은 여간해서 하질 않는다. 그래서 가끔씩 답답할 때가 있는데 그 모습에서 가장의 무게도 느껴지고 그럴 때마다 내가 알아서 그의 마음을 헤아려야 하곤 했다.

아들아이는 패션에 따라 갈아 신는 여러 가지 고가의 운동화와 구두가 신발장에 넘친다. 그런데 아들 운동화의 반값도 안 되는 운동화 하나 겨우 챙겨 신고 좋아하는 모습이다. 바라보는 마음이 괜히 애잔하다.

언젠가 신문에서 남편의 양복에 대해서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경기가 좋으면 아이들 옷, 부인 옷, 애견용품 그다음으로 남편 옷을 산다는 것이었다. 그저 가장이라는 존재는 가족들을 뒷받침해주는 넉넉함이 DNA로 자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염치없이 해본다.

한 가정 살림살이의 우선순위에서 스스로 밀려난 이 땅의 남편들이다. 내 가족들이 우선이고 내 주변에 신경 써야 하고 또한 사회생활의 역할이 우선이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 가장들의 모습을 이 아침 남편의 운동화에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