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주변이 연두에서 완연한 녹색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 푸르른 세상 속으로 쏘다니다가 돌아와 보니 봄과 여름 사이에 참 잘 보낸 여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초록이 먼저 떠오르는 보성. 그 녹음 속에서 보낸 하루 이틀이 내게 개운한 힐링을 제공했다.
민중의 실체가 지워진 역사의 진실을 밝혀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모두의 힘으로 지켜내는 일은 더욱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망각 연습에 길들여져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의식을 깨우고, 거짓을 진실로 맹신하고 있는 게으른 어리석음에서도 이제는 깨어날 때가 아닌가 싶다.
『태백산맥』 3부 조정래 작가의 말
작가 조정래 선생의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 되었던 <벌교>,
지금도 그대로 보존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든다.
일제 강점기에 벌교의 중심거리였던 곳에 <보성여관>이 있다.
일본식과 한옥이 접목된 독특한 구조로 지금도 여전히 그 세월이 머물러 있는 듯하다. 지금은 드라마나 영화의 시대극에서나 볼 수 있는 구조다.
툇마루의 하얀 고무신과 검정고무신, 삐걱거리는 좁은 나무 계단을 올라가 본 다다미 방, 몇 개의 점방...
시간이 멈춰버린 소품들이 역사의 가치를 보여준다. 그 외에도 다양한 문화체험이 준비되어 있다.
그 옆으로 <벌교 금융조합>이 있다.
그 시절의 은행 창구와 금고가 남아있다. 일제 강점기에 이곳은 상업이 번창하여 금융조합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좌우가 잘 균형 잡힌 건축물로 당대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내부는 전시관으로 또 한쪽은 소설 태백산맥을 필사하는 테이블이 있다. 방문자들이 각자 이어서 릴레이로 한 두 문장씩 써놓고 가는 방식이다.
<태백산맥 문학기행 길>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거리가 붐빈다. 특히 거리에 자동차와 사람들이 뒤섞이며 걷기에 불편하다. 차 없는 거리를 만들거나 자동차 제한제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대하소설의 배경지로 문체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중 제6 권역이기도 하다. 그리 거리가 길지 않아 천천히 걸으며 시간 여행하기 좋은 곳이다.
교통 Tip : 벌교를 가려면 Ktx로 광주로 가서 이어지거나 고속버스로 벌교 터미널행이 있다. 그러나 배차간격 아주 크거나 노선이 간단치 않다. 수도권에서 순천행 기차나 버스가 잦다. 그리고 순천에서 벌교는 아주 가깝고 벌교행 88번 버스가 수시로 있어서 이것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이곳은 광주 이 씨 집성촌으로 전통가옥이 보존되어 있고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마을 입구의 연못에는 세월을 느낄 수 있는 느티나무가 반긴다. <이용욱 가옥>의 큰 대문을 드니 따스한 한옥의 정취가 양반가옥의 기품이 전해진다. 사람이 살고 있어서 안마당엔 빨래가 마르고 있었고 담 아래엔 꽃들이 환하게 피어 있다.
이곳에 중요한 민속 재료가 또 한 가지 있다.
마을 뒤편으로 따라 올라가면 대나무 숲으로 둘러 쌓인 <열화정>이다. 그 옛날 후학 양성을 위해 지어진 건물인데 마당에서 높이 앉혀져 있어서 누마루에 올라서면 득량만과 오봉산을이 바라보이는 시원한 조망이다. 누마루에 앉아 여름을 보낸다면 더위 따윈 잊을 듯싶다. 열화정 앞편의 연못은 우선 집에 들기 전의 여유를 갖게 한다. 그리고 한국 전통가옥의 아름다운 정취를 전해준다.
강골마을을 나와 몇 분 더 걸어가면 <초암 정원>이 있다.
이곳은 전남 민간정원 3호다.
김재기 어르신의 개인 소유로 4만 7천㎡ 산림과 농경지를 활용해 다양한 난대수종을 심어 평생을 가꾸어온 정원이다. 생모와 어린 동생을 잃고 자신을 길러준 조부모에 대한 효의 마음으로 가꾸어졌다. 60년이 넘도록 수목과 꽃들이 가득한 정원으로 다듬어온 김재기 어른의 자부심이 큰 정원이었다.
청정 자연의 마을을 나오면서 눈 앞의 득량만과 마을 입구의 기찻길이 초여름 햇볕을 받아 유년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지나는 길에 근처의 '비봉 공룡공원'과 득량면 비봉리 선소 해안 일대에 <공룡알 화석 산지>를 들려보기로 한다. 그 앞바다에 백악기 퇴적층에 공룡알 화석이 많은 자국을 남겼다. 바닷가 데크에서 내려다보면서 1억 년 전의 신비를 상상해 볼만하다.
그리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어촌 마을의 풍경을 구경하는 재미는 덤.
보성이라 하면 누구나 <녹차밭>을 먼저 떠올린다.
지금 녹색이 한창인 녹차밭은 싱그럽기 그지없다.
거기 서 있으면 사람도 온몸으로 녹색을 받아내어 물들듯 하다.
하늘로 쭉쭉 뻗어있는 <삼나무 오솔길>을 걷는 통과의례는 힐링을 먼저 선물 받는 느낌이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지는 녹차밭은 눈을 시원하게 해 준다. 어딜 보아도 출렁이는 초록의 물결이다. 이럴 때 안구정화라는 표현이 적합하다. 그야말로 초록초록이다.
1957년에 조성된 <대한다원>의 녹차밭은 오랜 기간에 걸쳐 가장 아름다운 차 재배지로 이름을 알려왔다. 전국 차 생산량의 40%를 차지할 만큼 이곳의 규모는 대단하다. 이제는 주변의 볼거리 먹거리와 함께 사계절 여행객이 끊이지 않는 곳이 되었다.
바로 근처의 <차 박물관>에 들러
차에 대한 이해와 재배, 그리고 생산의 전 과정을 둘러보는 것도 필수다.
초록의 차밭에서 건강한 기운을 듬뿍 받았으니 이젠 차를 덖고 마셔보는 시간도 있다.
보성 영천리 쪽으로 달리면 친환경 차밭을 일구는 < 다도락 > 차밭이 있다. 이곳은 영천마을 주민과 공동으로 유기녹차 작목반을 구성하여 고품질, 기능성 녹차를 개발, 생산하여 녹차산업의 새로운 활로 개척으로 공동 소득창출을 하고 있는 곳이다.
창 밖으로 영천 저수지가 보이고 뜰에는 꽃들이 피어 벌들이 날아다니는 평화로운 풍경이다.
이곳에서는 체험활동을 할 수 있다. 단체 방문이나 예약을 통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먼저 바구니를 들고나가 녹차 잎 따기, 덖고 비비고, 제다 하는 과정, 체험 녹차 만들기, 차 시음, 다도교실, 녹차 떡 만들기, 구입하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한다.
250~300도 고열 가마에서 7분 정도 덖는다. 비빔대에서 비비다가 다시 온도를 낮추어 덖는다. 이렇게 4~5번 반복하면 녹차의 완성이 다가온다. 이렇게 체험하고 마시는 녹차의 맛은 더할 나위 없다.
율포 해변. 톰 행크스의 영화 캐스트 어웨이(Cast Away)가 퍼뜩 떠올랐던 풍경. 윌슨...
이제 '보성군 회천면의 율포 바닷가'로 달려보자.
해안가의 풍치 가득한 솔밭을 따라 걷기 좋은 해안가 마을이다.
솔밭에 몇 대의 캠핑카가 보인다.
잔잔한 수면에 모래가 곱고 수심이 깊지 않아 가족끼리 해수욕하기에 좋다. 오래전 어느 해 여름날 아이들과 피서 와서 해수풀장에서 놀았던 기억이 내게도 있다.
특히 바닷물을 끌어들여 만든 해수녹차탕은 피부미용을 물론이고 관절염이나 신경통에도 좋다고 한다.
하루 종일 여행 다니는 것도 때로 쉬어줌이 필요하다.
물론 함께 복작복작 어울리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게 시종일관 그래야 한다면 더러 피곤한 여행이 될수가 있다. 간간히 때때로 혼자 내버려 두는 시간을 가져볼 일이다. 이곳에서 혼자 바닷가를 걸으며 사진도 찍고 멍하니 바다 저 멀리를 바라보며 마음껏 쉬었더니 가뿐한 기분이 되었다. 좋았던 시간.
솔밭 해수욕장과 해수풀장, 녹차해수탕만으로도 율포는 충분하다.
하나 더 덧붙인다면 녹차 한정식과 싱싱한 낙지와 주꾸미가 유명해서 꼭 맛봐야 할 음식이다.
그리고 득량만의 청정 바다 율포해수욕장에서는 5.4~9.7일 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율포해변 활어잡기 축제가 있어서 참여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사철 청정한 자연 속에서 정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는 보성의 산하를 찾아 언제라도 훌쩍 떠나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