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었을 때 발견하는 것들... 프라하~
지난번 TV 여행 프로그램 <트래블러>에서 배우 류준렬이 이른 새벽에 일어나 숙소 테라스에 삼각대를 세우고 쿠바 비냘레스의 아침 풍경을 담는 화면을 본 적이 있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던 순간이다. 일상을 살다 보면 여행을 부추기는 순간이 불쑥불쑥 있기 마련이다. 더구나 여행 프로그램이었다. 문득 어느 시골마을 어드메쯤에 세워둔 삼각대 위에 얹힌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새벽을 상상해 본다. 생각만큼 그런 기회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내 여행의 기대감 중에 낯선 곳의 아침을 누리는 것이 있다.
여행지에서의 거리낌 없는 늦잠은 누구도 말릴 수 없는 권리다. 어제를 즐기고 꿈도 없는 잠 속으로 풍덩 빠졌다가 눈뜨고 싶을 때 눈을 뜬다. 아무렇게나 일어나 그 새벽 속에 잠겨 멍 때리며 세상 풍경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아침, 차 한잔이든 현지의 치즈가 얹힌 빵 한 장이든 원할 때나 먹기로 한다. 얼마나 소박한 아침인가. 겨우 이런 아침을 꿈꾸다니. 그런데도 평소엔 결코 간단치 않던 미션이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하루 시간표대로 살 의무 따윈 집어던지고 내 멋대로 삶을 살아도 될 며칠이다.
백 년도 넘는 오래된 건물의 숙소 창 밖으로 내다본 새벽의 프라하,
십여 년 전에 보았던 새벽과는 무엇이 다른가. 발길 닿는 대로 다니다 보니 결국 나만 달라졌다는 것, 집으로 돌아와 뒤적여본 10여 년 전 프라하 여행사진이 확실하게 증명한다. 한결 풋풋했던 표정에서 지금과는 달랐을 감성도 엿보인다.
카를교 교각에 팔꿈치를 얹은 채 기대어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제 오후의 블타바 강도, 구시가지 올드타운의 낯선 듯 익숙한 밤 풍경도, 펍의 필스너 맥주도 벨벳 맥주의 풍성한 거품도 새삼스럽지 않다. 쯔비벨무스터 찻잔을 샀던 골목길을 걷다가 쓰윽 그릇 구경만 한다. 성 뒷골목의 카프카 작업실도, 동화 같은 황금소로도 시간이 한참 지나고 와보니 감미로운 추억의 골목이 된다. 골목마다 숨겨진 예술가의 감성을 훔쳐본다. 천년 세월의 보헤미안 왕국은 날마다 시간이 쌓여가고 있다. 광장에 몰려있는 이들의 발걸음에서 그들의 삶의 모습을 본다. 그런 풍경들이 그저 담담히 보인다.
내키는 대로 쏘다녔던 프라하였다.
우리가 생각했던 몇 군데 도시를 가려면 일단 프라하행 비행기가 적당했다. 다음 도시로 이동하기 전 이틀 정도 머물면서 근처의 온천도시 까를로비 바리나 플젠을 다녀오면 누군가는 짜임새 있는 여행이라 하겠지만 바삐 갈 일 따윈 없다. 타박타박 터덜거리는 이틀을 택했다. 많이 걸어야 눈에 담을 것이 많다. 마음에 담길 느낌이 많아진다.
떠나와서 남들 다하는 여행에 집중하느라 달콤한 늦잠을 포기하는 것, 여유롭게 걸으며 무심히 두리번거리는 것도 못한다면 바쁘고 복잡한 서울에 있는 것과 다를게 무엇인지. 하기 싫은 일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벗어 나왔는데 또 다른 틀에 맞추느라 내 감성은 처박아두는 것, 그 모든 것에 연연하는 걸 이곳에서는 제발 다 버리라고 스스로 멱살 잡고 흔들어댔다.
그럼에도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다. 가뿐하다.
지난밤 아들에게 문자 하나씩 보내고 바로 일찌감치 잠든 덕분인가. 바츨라프 광장의 소시지는 여전히 주렁주렁이라고, 그해 여행에서 체코 굴뚝빵 뜨레들로를 맛보지 않았다고 했더니 뜻밖에도 그 후 아들아이가 거길 다녀오면서 사다 주었었다. 그 마음 고마웠다고. 지금은 업그레이드되어 굴뚝빵 속에 크림이나 샌드위치 재료를 넣어서 판다고 우린 이미 구식이 되었다고. 그러나 별로 당기지 않아서 사 먹진 않았노라고.
살그머니 나와서 잠이 덜 깬 숙소 주변을 돌며 새벽의 고요함을 맛보았다.
가끔 배낭을 멘 여행자가 어슴푸레한 길 위로 저벅저벅 걸어간다. 저쪽에서 천천히 아침을 몰고 달려오는 트램이 머리를 내민다. 타지도 않을 트램 정류장 의자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오늘은 어디를 가 볼까 정류장 안내문의 알 수 없는 글자를 들여다보기도 하면서.
나처럼 길을 잘 잃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낯선 곳에 떨어졌을 때의 두려움은 잠깐이라는 걸. 덕분에 또 다른 길을 발견했다는 것을, 죽을 때까지 알 수도 없었을 곳에 내가 있다는 것을, 그래서 생겨나는 감동과 재미가 있을 줄은 예상조차 못했다는 것을, 더구나 결정장애가 심한 내게 알아서 이런 곳에 데려다준 것처럼 다행이란 생각조차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지리적인 것이나 구글 지도를 훤히 꿰뚫는 남편이다. 이 날따라 공간지각 능력이 제로인 내게 휩쓸리느라 잠깐 전염되었는지 무심히 다니다가 엉뚱한 곳으로 들어섰다. 프라하의 어디쯤 마을일까. 트램 선로 주변에 피어난 자잘하게 피어난 꽃들이 서울 근교 인양 친근하다. 선로가 뒤엉킨 건너편 마을에서 각자 학교나 직장을 향해 가는 듯한 사람들이 지나간다.
건너편으로 오르니 독특한 마을과 드넓은 공원 숲이 나타났다.
등 뒤로 고성처럼 세월의 더께가 덕지덕지 묻은 담벼락이 공원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 뒤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처럼 보이는 건물이 보인다. 우리가 앉은 벤치 뒤로 가끔 조깅하는 사람들이 휙휙 지나간다. 드넓은 잔디밭엔 똑똑한 개와 노니는 듯한 딱 한 사람만 보인다. 이 무슨 횡재인가. 초여름 아침의 싱그러운 초록빛 잔디가 깔린 광활한 공원과 숲이 잠깐이지만 내 것인 듯하다. 거기 앉아있었던 프라하의 아침나절이 내내 황홀했다.
울창하게 우거진 그 숲 사이로 빼꼼히 뾰족탑이 저 멀리 보인다. 프라하 성이다. 방향을 달리해서 보니 비밀을 품은 성처럼 보인다. 우연히 마주한 풍경이 이렇게나 새롭다. 길을 잃었더니 또 다른 길로 이끈다. 예정에 없던 프라하 성으로 향하는 언덕길이 갑자기 즐거워진다. 방향이 다른 곳에서 바라보았던 중세의 성채 단지도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 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라는 시구(詩句)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