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다~.
바람에 날릴 듯 질감이 가벼운 옷차림이 시작될 무렵 유럽 몇 개 도시를 쏘다녔다. 서울처럼 그곳에도 여름이 시작되었고 푸릇푸릇한 나무와 유난히 푸른 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었다. 오래된 도시의 속 깊은 인간미를 느끼며 보냈던 차분한 휴식의 시간은 초여름의 햇살만큼이나 바스락거리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미리부터 가고 싶었던 곳을 떠올리며 퇴근 후 날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계획을 세우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어디든 그의 의견에 무조건 동의하기로 마음먹었다. 특히나 일 년에 한두 번 사용할 수 있는 휴가를 받아서 떠나는 사람의 여행은 소중하다. 날마다 일터에서 치이고 허우적거리다가 얻어낸 시간을 위한 값진 설렘은 그들만의 특권이다. 그렇게 치열했던 일상 후 이어지는 단 며칠간의 쉼표이기에 그들의 여행이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이 아닐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오래전 현대카드 CF에서 사이먼 & 카펑클의 노래 The Boxer가 흐르며 배우 정준호. 장진영이 훌훌 떠나던 여행, '가는 곳마다 즐거움'이란 화면의 글과 함께 자연의 바람 속으로 달리는 풍경. 바쁜 시간 속에서 숨 가쁘던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쾌감이 화면 가득하다. 빠듯한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해방감과 감동을 전해주던 CF였다. 그래서 지금껏 두고두고 회자되는 카피 아니던가.
남편의 휴가는 열흘이다. 보통 일주일이었지만 주말과 휴일과 국경일을 포함하는 안간힘을 다해 열흘을 만들었다. 다녀와서 하루쯤은 쉬고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8박 9일로 일정을 잡았다. 초반엔 요즘 핫하다는 코카서스 지역 여행 준비를 하며 관련 카페에도 가입하는 등 미리 공부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거길 다녀오기엔 휴가기간이 짧은 편이다. 동행자인 나 역시 인내심이 부족한 체력이어서 잠깐 고민하다가 미련 없이 집어치웠다.
이전의 여행길에서 군데군데 빠뜨린 도시 중에서 궁금함이 남아있는 몇 군데를 천천히 다녀보기로 했다. 그의 귀중한 휴가 덕분에 덩달아 만끽한 세상나들이. 내키는 대로 걷다가 트램에 오르고 프릭스 버스(Flix bus)나 비행기로 유럽의 국경을 넘나들었다.
초여름의 유럽은 걷기에 적당하게 햇볕을 뿌렸고 바람도 간간이 불어 주었다. 이리저리 떠돌다가 잠깐씩 노천카페에 앉아 마시던 기다란 잔에 한 잔 가득 넘치던 유럽의 맥주 거품이 눈에 선하다. 내 사는 곳도 아니면서 동네 공원에 산책 나온 듯 어슬렁거리던 축구장만큼 넓었던 공원 숲은 지금쯤 더 울창해졌겠다. 그 시간 속을 함께 걸었던 세상 사람들은 그 후 어떤 일상 속으로 복귀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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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6Qn7Afb7cqU?si=c3Ku6xAbalVyu6v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