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장벽처럼 허물리는 기분, 그 도시에 머물고자...
집을 떠나 일상처럼 편안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뭔지 모를 익숙함이나 편안함을 느낄 때면 그 여행 자체가 잘 진행되고 있다는 기분을 갖게 된다. 베를린에서 묵었던 숙소에서는 창 밖을 구경했던 시간이 많았다. 구경했다기보다는 숙소에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은 편안히 내다보기를 한참씩 즐겼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조금 밀어내면 어둠이 사라지는 걸 보는 순간이다.
창 밖으로 울창한 가로수가 도시를 가리고 있어서 마치 숲과 같았다. 그 숲 너머로 오래된 건물의 돔과 뾰족탑이 솟아올라 있다. 마치 깨어나는 하루의 시작 신호를 땅에서 하늘로 보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 사이로 아침해가 도시를 서서히 밝히기 시작한다. 하루 종일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밤에도 어둠 속의 숙소 창 밖을 내다보곤 했다. 어둠 속에 잠긴 베를린은 번쩍거리는 첨단의 불빛이 아닌 은은히 도시를 비추이는 정도였다. 편안했다. 그 사이 커피 머신에선 캡슐을 통해 커피가 만들어져 나오고 있었다.
짧은 며칠 동안 몇 군데 다니긴 했지만,
베를린은 이렇게 조금은 정지된 듯 평화로웠던 숙소에서의 그 시간들이 자주 떠오른다. 또한 누구나 다 가보는 베를린 장벽이나 브란덴부르크문 등을 다녀오면서 들렀던 공원이 오히려 더 기억에 오래 남아 있다. 공원 숲으로 쏟아지던 빛 내림이 지금도 눈부신 듯 기억난다.
베를린 장벽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살짝 헛웃음이 났다.
분단국가에 사는 사람답게 나 혼자서만 동질감이 있다고 착각했다. 무너진 장벽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기나 한 것처럼 두근거리며 다가갔다. 쓸데없이 긴장하고 지긋이 흥분을 누르며 기대했다. 결국 이데올로기적인 얘기는 할 것도 없이 이미 무너져 내린 장벽이었다. 물론 세계사적인 의미는 중요하다. 그들의 통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분단의 비극을 상징하는 화해의 교회 주변을 둘러보는 사람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 옛날 같은 베를린 안에서 금 긋고 경계선 이쪽저쪽이 다름의 장소임을 알렸던 사실을 이젠 세계인들이 와서 확인하고 구경하는 곳이 된 것이다. 멀쩡한 도시 한 복판의 공원이었다. 괜히 숙연할 뻔했다.
장벽의 그라피티는 거친 듯 역동적이고 거대하다.
화려한 색감 다양한 터치가 시선을 확 잡아끈다. 철근이 드러난 기다란 장벽이나 부서져 조각난 담벼락에도 빠짐없이 휘갈긴듯한 그라피티가 보는 이에게 자유분방함을 전한다. 통독의 예술가들에게 베를린 장벽이라는 넓은 무대를 제공하기나 한 듯 마음껏 표현한 작품들이다. 이념과 분단의 상처를 예술로 감싼 듯하다.
어느덧 자유의 상징이 된 공원 정도로 보면 될까. 굳이 나까지 1989년에 일어난 베를린 장벽 붕괴와 그다음 해의 독일 재통일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는 독일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지.
오가는 베를리너들은 대체로 밝았고 친절했다. 세련된 트램이 지나가는 베를린 장벽의 길가에서 우리는 다시 노란색 트램을 타고 그들의 일상 속에 섞였다.
다니다가 문득 출출해지면 길거리에 서서 독일의 로컬 푸드 카레부어스트 currywurst)를 먹었다.
2차 대전 후 사는 게 여의치 않던 서베를린의 한 여인이 영국군에게 얻은 케첩과 커리가루를 구운 소시지 위에 뿌려서 판 것이 커리부어스트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마치 6·25 전쟁 직후 미군부대에서 구한 햄과 소시지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부대찌개를 생각나게 하는 유래다.
베를린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커리36은 너무나 유명한 체인점이다.
흔히들 이것을 진정한 베를린의 맛이라고들 말하기도 한다. 우리의 떡볶이만큼 흔한 길거리 음식인데 간식은 물론이고 식사로도 충분하다. 우리나라에 햄버거나 각종 다국적 패스트푸드가 넘쳐나도 어째서 이 커리부어스트는 없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베를린은 분명 세계 역사의 흐름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눈만 돌리면 도처에서 역사의 흔적이 나타난다. 그걸 기억하고 그 속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는 모습을 본다.
힙한 듯 모던한 대도시지만 수수한 나를 어색하지 않게 하는 수수함과 잔잔함이 있다. 그래서 낯설지 않은 듯 마음 편히 다녔고 대체로 정겹게 바라다보게 된다. 곳곳엔 공사 중인 데가 많아서 불편한 것 같아도 우리 동네 공사장을 지나듯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히 돌아가곤 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저녁에는 내가 사는 우리 집으로 귀가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너무 빨리 베를린을 편애하기 시작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