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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Sep 14. 2020

그 돌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인천 홍예문

멀리 가지 않아도...

 








가을은 하늘에서 온다더니 며칠 전부터 부쩍 높고 푸르다. 바람도 제법 서늘해지고 창 밖 숲에 내리는 볕도 달라졌다. 따사롭게 쏟아지는 가을볕 속으로 어디든 내달리고 싶은 날씨다. 그렇다고 해서 어디든 무턱대고 나설 시기가 아니기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럴 때 한나절쯤 의미있는 나들이로 인천이 있다.


서울에서 냅다 달리면 출발지에 따라 자동차로 한 시간 안팎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 그곳엔 바다가 있고 아주 오래된 가게들이 있고 한때 번창했던 원도심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잊지못할 역사적 사실들이 긴 시간 속에 자리잡고 간간이 우리를 일깨운다.  기분 내킬 때 이웃동네 마실 가듯 훌쩍 다녀올 수 있는 편안한 인천이 서울 가까이에 있다는 건 참 다행이다.   

내가 그곳에 살았던 때만 해도 한창 젊었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늘 '빨빨거리며' 엄청 나다니던 때였다. 그렇게 인천의 구석구석에 내 발자국을 남겼다. 그러다 보니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절의 한때를 보냈던 내 아이들도 인천이 마치 고향인 듯 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모양이다. 다시 서울로 떠나와서도 틈날 때면 잠깐 다녀올까 하면서 인천을 향해 핸들을 돌리곤 했다.  


인천 중구의 중심지는 신포동을 중심으로 인천의 정체성을 가장 많이 보여주던 곳이었다. 특히 '신포동'은 대표적인 중심가였는데 ‘시내 나갈까’ 하면 신포동으로 가자는 말이었다. 오래전 내가 인천에 살던 시절엔 로데오 거리라 불리며 번쩍거리던 거리와 첨단의 가게들로 번화하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많이 달라져 있다. 하지만 여전히 유서 깊은 가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옛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뿐 아니라 발걸음 옮길 때마다 우리의 역사적 흔적들이 군데군데 눈에 들어오는 인천이다.


신포동 쪽에서 인성여고를 지나 전동으로 넘어가는 경계에 위치한 홍예문. 그 터널을 지나 제물포 고등학교 쪽으로 자동차가 빠져나갈 때마다 어린 두 아들은 굴 속을 지나가는 기분인 듯 '와, 터널이다' 하며 좋아했었다. 아주 짧아서 눈 깜짝할 사이인데도 아이들은 함성을 질러댔다. 


▲과거와 현재 비교 사진-(왼쪽은 과거 자료사진 퍼옴)

을사늑약으로 일본에게 외교권을 빼앗긴 시절에 만들어진 홍예문은 윗부분이 무지개 모양으로 둥글다. 그래서 한자의 무지개 '홍'과 무지개 '예'자를 써서 홍예문, 또는 무지개 문이라고 불린다.


사실 일본인들은 구멍 혈에 문 문자로 '혈문(穴門)'이라 불렀다.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산허리를 잘라 구멍을 뚫은 자들의 감성과는 달리 인천 시민들은 자연스럽게 보이는 모습대로 무지개 문이라고 칭했고 지금껏 홍예문은 무지개문으로도 불린다.      


▲과거와 현재 비교 사진-(왼쪽은 과거 자료사진 퍼옴)   

1900년대 초 일본인들은 그들이 많이 거주하던 이 곳에 지름길을 만들기 위해 응봉산 마루턱을 무지막지하게 폭파했다. 1905년 일본 공병대가 착공, 중국의 석수장이를 불렀고 부족한 시공비용과 힘든 노동은 조선인들의 몫이었다.


결국 우리 국민들의 피땀으로 3년 만에 홍예문이 만들어졌다. 화강암 석축의 높이 약 13m에 7m 정도의 폭으로 만들어낸 석문(石門)이다. 112년 전에  일본인들의 편리한 물자 소송과 일상의 이득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문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광복 후엔 시민들에게 유용한 공간이 되었다. 양 옆으로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젊은 연인들의 멋진 데이트 코스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또한 석문 위로는 영화 광고판이나 추세에 따른 표어나 포스터가 붙어있었고 학생들의 졸업 앨범 사진을 찍던 포인트이기도 했다.


지금은 많이 낡은 분위기다. 오랜 시간의 흔적이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활용되기도 하고 외부인들이 찾아드는 명물이 되었다.     

     



터널은 자동차 한 대가 지날 정도의 폭이어서 돌문 앞에 다가가면 서행하면서 건너편의 자동차에게 양보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석축 아래 바짝 붙어 서서 상대의 통행에 배려를 하는 걸 본다. 사람이든 자동차든 먼저 배려가 있어야만 통과할 수 있는 조붓한 터널이다.       


홍예문 양 옆으로 난 오른편 돌계단을 천천히 올라본다. 담쟁이덩굴이 늘어진 화강암 석축에서 세월의 더께가 묻어있다. 돌틈으로 풀이 솟은 돌계단 언덕길을 걸어서 석문 위로 올라서면 탁 트인 풍광에 멀리 인천항이 내려다 보인다. 반대편으로 돌아서서 내려다보면 멀찍이 제물포 고등학교, 바로 앞에 알록달록한 스페인 식당, 철학관이나 신당, 그리고 중화요리집이 보인다. 옆으로는 자유공원과 송월동 벽화마을로도 이어진다. 마음 내키는대로 찾아가 볼 곳들이 주변에 있다.


맞은편 계단을 이용해서 돌아내려 오면서 몇 군데 예쁜 카페가 눈에 들어온다.
구조가 독특한 적산 가옥의 공정무역 찻집과 브런치 카페, 담쟁이로 담을 뒤덮힌 'HISTORY'라는 간판이 반쯤 보인다. 고대사를 전공한 쥔장이 역사적 의미가 있는 동네에서 소통의 공간을 마련했다고 전한다. 영화 '남자사용설명서' '부탁해요, 캡틴'... 등을 촬영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가만히 한 발 내밀어 보니 조용하다. 좁은 마당의 초록 식물들과 오밀조밀 피어난 꽃들이 가을볕에 반짝인다.


커피내음을 뒤로하고 나오니 역시 담쟁이로 온통 담을 감싼 전통 찻집 두 곳이 연달아 이어진다. 비탈길 따라 비밀의 정원처럼 겹겹의 식물에 가려진 독특한 찻집 외관이 멋스럽다. 이 부근을 홍예문 카페길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담쟁이로 뒤덮인 담장 따라 계절마다 분위기 넘치는 운치 덕분에 제법 핫한 곳이다.  

       

도심에서 이렇게 시대적인 옛 맛을 간직한 채 수수한 멋스러움을 풍기는 곳이 있다는 게 어쩐지 고맙다. 그 고갯마루의 아픈 역사와 각자의 추억이 깃든 인천의 홍예문을 잊지 않고 찾는 고즈넉한 발걸음이 편안하다.


이제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인지 온 동네가 숨죽인 듯 고요하다. 이렇듯 예측할 수 없이 변해가는 세상에 그 돌문만은 그 자리에서 여전하다. 이럴 때 부쩍 조용해진 옛길을 호젓하게 돌아보는 시간을 누려보는 한나절, 의미 있다. 멀리 가지 않아도...   




       

◇홍예문(虹例門) :인천광역시 중구 송학동 20번지 외 4필지 / 인천 유형문화재 제49호 











http://bravo.etoday.co.kr/view/atc_view.php?varAtcId=1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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