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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Jul 12. 2022

걸어서 수목원 속으로, 푸른 수목원

-도심 속 자연이 주는 위로, 구로구 항동 푸른 수목원

     





멀리 가지 않아도~...

-얼핏 보아도 도심 공원에서 쉽게 보기 어려운 수생식물들이 가득한 푸른 수목원 중심의 저수지 전경. 말 그대로 푸름푸름...

 

수수한 자연 속에서 편안한 심신으로 하루를 보내고 싶다면, 유서 깊은 근대문화유산을 통한 역사적 의미도 함께 있다면, 내 발걸음에 맞는 속도로 다가가고 싶은데, 그 속에서 문득 울림이 스친다면 더 좋겠다 생각한다면 떠나 보자.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손가방에 생수 한 병과 읽을거리 하나쯤, 그리고 교통 카드 한 장 들고 나서면 된다.     


푸른 수목원은 서울의 끄트머리에 넉넉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공원이 위치한 구로구 항동은 서울이라는 대도시와는 달리 자연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지금은 지속적인 개발이란 미명 아래 그런 분위기는 조금씩 사라지고 있지만 군데군데 힐링 포인트가 반긴다.       


        

-붉은 벽돌의 서양식 근대건축물의 이국적인 외관을 둘러싼 담쟁이가 멋스럽다.

   

-구두인관(Goodwin House)

푸른 수목원 나들이를 계획했다면 구두인관과 더불어숲을 거치는 것은 당연하다. 요즈음의 구두인관은 온통 푸르름으로 둘러싸여 있다. 대학교로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 잡고 오가는 이들을 지긋이 바라보는 듯한 자세다. 유동인구도 제법 있는 위치인데도 더러는 무심히 지나치고 혹은 담쟁이가 뒤덮인 옛 건물의 운치를 즐겼을 터다.    

     

구두인관(Goodwin House)은 성공회대학교 부속 건물이다. 1936년 유한양행의 창업자인 故유일한 박사의 사저로 건축된 유서 깊은 근대건축물로 1973년 이래 유신정권 당시 청년들의 민주화운동의 장소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그 후 이곳으로 성공회대학이 이전한 이후 젊은이들의 연구 집회와 민청학련 사건의 산실이 되어 민주화의 성지로 발전했던 곳. 그리고 한국의 신학교육을 위해 헌신하고 한국 고아들을 돌본 구두인 신부를 기리기 위해 구두인 하우스로 명명하고 지금껏 보존되어오고 있는 중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지금은 지역 상생을 위한 청년들의 창업지원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특히 구두인관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도는 풍취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외부는 얼핏 서구식과 한옥의 미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벽돌 하나 창문틀까지도 옛 질감 그대로 간직되어 여전히 분위기가 남다르다. 건물 전체의 붉은 벽돌과 건물을 둘러싼 담쟁이가 어우러진 풍경은 어쩐지 깊은 이야기를 연상케 하는 매력을 지녔다. 온통 초록으로 감싼 여름날의 싱그러움 속에 품었을 이야기, 노랗고 붉게 물들인 가을의 멋은 또 얼마나 멋진지. 비 오는 날의 운치 또한 일부러 찾아볼만하다. 구두인관은 건물 뒤편의 더불어숲과 함께 할 때 더 의미가 있다.          



-숲길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글귀를 읽으며 사색에 잠길 수 있는 더불어숲. 


-성공회대 뒷산더불어숲

성공회대 앞을 지나 더불어숲을 향하는 길의 학교 건물 역시 담쟁이가 감쌌다. 얽히고 설켰다기 보다 계절을 반가이 맞아들인 아름다운 모습이다. 새천년관 뒤편으로 돌아가 보면 숨어 있었던 듯한 숲길이 나타난다. 이 숲길은 구로 올레길에도 포함되지만 더불어숲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제법 있는 듯했다. 더불어숲 방향을 물어보면 잠깐 머뭇하다가 '아, 저기 뒷산요?' 한다. 역시 그냥 뒷산, 성공회대 뒷산이란 말이 정감 있다. 




-신영복 선생의 추모공원과 자연스럽고 수수한 더불어숲의 기운을 얻는 시간이다.


1970년대 유신시절에 당시 체제의 누명을 쓰고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 출소한 신영복 선생님, 그 후 성공회대 교수를 지내다 세상 떠나신 신영복 선생을 기리는 추모의 공간이 더불어숲 안에 있다. 숲길에 붉은 접시꽃 옆으로 '처음처럼'이라는 팻말이 서 있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추운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글씨체, 신영복 선생의 서체가 바로 어깨동무체가 되었다. 소주의 '처음처럼'도, 이전 대통령의 '사람이 먼저다' 글씨체도 신영복 선생의 어깨동무체다. 이 글씨체로 더불어숲의 곳곳에서 선생의 사색과 성찰의 글을 읽을 수 있다. 가만히 숨을 쉴 수 있는 공간 더불어숲이다. 천천히 걷다가 멈추어 서서 읽고 가슴 뭉클한 걸음으로 또 걷고 하면서 신영복 선생의 더불어 숲은 푸른 수목원이 있는 항동 철길로 이어진다.       


     

-소박하고 예스러운 항동 철길 저 끄트머리의 아련함이 문득 그리움을 소환한다.

   

-항동 철길과 푸른 수목원

푸른 수목원 들기 전에 철길을 건너야 한다. 자동차 주차장도 철길 건너에 위치했다. 요즘의 기찻길은 추억을 소환하는 용도로 주로 이용되곤 한다. 이곳 항동 철길은 서울 구로구 오류동과 부천 옥길동을 잇는 길이다. 비료를 나르던 산업용 단선 철도로 한때는 화물열차가 운행되기도 했으나 현재는 필요할 때 어쩌다 한 번씩 운행한다는 것이다. 정확히 폐철은 아닌 듯하다.    

 

지금도 예스러움이 풍기는 항동 철길은 양옆으로 수풀을 이룬 모습이 자연스럽다. 젊은 커플들이 손잡고 걷거나 괜히 철로 위에 한 발로 올라 균형 잡기 놀이도 하는 걸 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옛 철길을 따라 걷는 '치유의 길'이라 일컫기도 한다.            


    

        

차츰 기온이 올라가면서 수목원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인가. 입구부터 오가는 이들이 제법 눈에 들어온다. 노랑 병아리처럼 유치원 아가들이 선생님을 졸졸졸 따라다닌다. 또 한쪽에선 고등학생들이 졸업앨범에 넣을 사진을 위해서 갖가지 독특한 의상을 입은 모습으로 신나게 왔다 갔다 하느라 분주하다. MZ 세대들을 위한 인증숏 포인트를 잘도 찾아낸다. 동네 주민들은 늘 하던 습관 인양 모자 눌러쓰고 걷기 운동에 열중이고 벤치에 앉아 계절을 즐기는 이들의 여유로움도 수목원의 풍경이 된다.  


        


푸른수목원에서는 2022년 3월부터 11월까지 숲해설 프로그램 ‘걸어서 수목원 속으로’가 운영되고 있다. 아침이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사람들이 수목원 입구의 북카페에 모인다. 아이 손 잡고, 또는 유모차를 밀고 온 젊은 엄마도 있고 남녀노소 상관없이 1회 15명이 정원이다. 프로그램 진행 시간은 약 한 시간 반 정도다. 숲 해설가와 함께 수목원을 탐방하며 푸른수목원 역사와 주변의 다양한 생태를 체험하고 계절 변화에 따른 식물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때론 이런 프로그램을 이용하면서 재미있게 수목원의 면면을 알아두는 것도 퍽 유익하다.  


                


-숲 그늘을 따라 걷거나 사색을 위한 시간을 누리는 모습들이 평화롭다. 

    

서울시 최초의 시립수목원인 푸른수목원이다. 인적 없는 공터를 친환경 수목원으로 개장했고 몇 년 전 서울시 1호 공립수목원으로 지정되었다. 입장료는 무려 무료다. 전체적으로 평지여서 유모차나 휠체어의 불편함이 없다. 요즘 트렌드에 맞는 시설도 자주 눈에 들어온다. 

     

수목원은 식물 유전자원을 수집하여 증식, 보존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선 다양한 희귀 수생식물과 물고기, 새 등을 볼 수 있다. 수목원의 중심에는 이전의 저수지를 정돈해서 그대로 들였다. 주변으로 논과 밭이었던 곳이 이제는 각종 수생물들이 살아 숨 쉬는 생태공간으로 변신한 것이다. 저수지 위로 설치된 데크를 따라 걸으면 생물들이 서식하는 생생한 광경을 볼 수가 있는, 말 그대로 생태학습장이다. 무엇보다도 전시온실인 KB숲교육센터, 오색정원, 야생화원, 수국원, 습지원, 장미원 등 20개의 주제정원으로 조성되어 있어서 관심사별 테마정원을 찾아보는 즐거움이 크다.       

  


-어딜 돌아보아도 꽃과 나무와 숲이다. 온갖 다양한 생태환경이 편안함을 주는 푸른수목원이다. 

     

이제는 숲캉스란 말도 생겨났다. 거창하게 먼 길 떠나 깊은 산속으로 찾아가는 것이 수고롭다면 가까운 데서 찾으면 된다. 더불어숲에서 누군가를 통해 세상을 향한 통찰과 공존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시간, 옛 철길에서 유년의 따스했던 기억도 불러오고, 생명문화유산인 수목원의 한나절이 얼마나 뜻깊던지.      




     

♤푸른수목원:서울특별시 구로구 서해안로 2117 푸른수목원



♤숲해설프로그램 ‘걸어서 수목원 속으로’  

대상: 초등학생 이상

내용: 숲해설가의 안내에 따라 수목원 생태탐방 투어   

신청방법:- 서울시공공서비스예약(www.yeyak.seoul.go.kr)

※ 프로그램이 운영 중일 때에만 검색이 가능합니다.

- 운영기간: 3월~11월(8월 제외)

- 운영일시: 매주 수·금요일, 매월 2·4주 토요일 / 오전 10시

- 소요시간: 1시간 30분

- 문의사항: 푸른수목원운영과/☎02-2686-6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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