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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Sep 18. 2022

김제 지평선 일몰과 종교성지 몇 군데...

소설 아리랑.망해사.수류성당.금산교회.금산사.죽산 메타셰쿼이어.지평선축제











전부터 그냥 망해사를 가보고 싶었었다. 조금 아는 이의 글에서 읽었던 망해사였는데 그분의 마음을 털어놓고 울었다는 망해사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있었다. 해질 무렵이었다. 바다를 앞에 두고 소박한 사찰은 적요했다. 망해사(望海寺). 말 그대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백제 의자왕 때 세워진 사찰로 망해사는 거의 1400년의 역사를 지녔다. 그 엄청난 세월 동안 바다에 잠긴 적도 있었다니 바다를 앞에 둔 망해사에서나 생겨날 일이 아닌가 싶다. 김제 금산사의 말사로 일몰이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진 사찰, 이곳에 바다 가까이 수호신처럼 서있는 노거수 팽나무가 사찰과 잘 어우러진다.



만경강 하류이면서 서해의 섬들을 바라보는 위치로 서해의 일몰을 조망할 수 있어서 망해사란 이름이 딱 맞는다. 절 가까이 다가가니 어쩐지 쓸쓸한 느낌이다. 


절 마당에 주저앉아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다가 전망대로 옮겼다. 좀 더 높은 위치에서 넓게 노을을 볼 생각으로..이 지역에서만 가능한 지평선 관측이 가능한 곳이다. 오르는 언덕길에 새만금 바람길 안내도가 있고 두곡 서원이 보인다. 


전망대에 올라 눈앞에 펼쳐진 바다 덕분에 가슴이 뻥 뚫리는 듯 하다. 머리카락을 거세게 날리는 바닷바람이 더 시원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천지를 감싸는 노을의 따스함을 가슴에 품는다. 저무는 바다 위로 붉은 기운이 퍼지는 걸 바라보는 시간은 짜릿하다. 한참을 그렇게 서서 바라보다가 내려왔다. 여운이 길다...




  


-수류성당

아침에 찾았던 성당 주변의 풀숲은 이슬로 온통 반짝인다. 김제 금산면에는 우리나라의 종교 성지가 많다. 수류성당(水流聖堂)이 있고 금산교회, 금산사도 있다. 


기록에 따르면 수류성당은 1889년 봄 배재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1895년 10월 성당을 이전하고 수류 본당으로 개칭되었다. 1894년 갑오 농민 전쟁으로 2대 주임 조조 신부가 살해되고 3대 라크루 주임신부가 부임하면서 면 소재지가 있는 수류로 성당을 이전되고 수류 본당으로 개명되었다고 한다. 



성당 앞의 녹슨 종탑이 시간을 거슬러 가게 한다. 신자들이 대형 포탄을 이용해서 만들었는데 종소리가 반경 1㎞ 가까이 들린다고 한다. 지금도 미사 30분 전이면 종을 쳐서 미사 시간을 알린다. 그래서 누구나 이곳의 종을 함부로 치지 못하는 이유가 종소리가 나면 30분쯤 지나 사람들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수류 공동체 사람들에게 들리는 천상의 소리일지니... 성당을 둘러싼 자잘한 들꽃들이 예뻤던 성당 비탈길이 지금도 생각난다.




-금산교회

수류성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금산교회가 조용히 앉혀져 있다.  이곳에서 올리는 기도는 진심일듯한 기분이 드는 건 무슨 이유일까. 


금산교회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ㄱ자형 교회다. 1908년에 세워진 한옥형 성당으로 “ㄱ” 구조의 이유는 남녀 구별이 유별하던 당시의 관습으로 남녀 각각 떨어져 예배를 보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유교문화를 수용하면서 교회의 본성을 유지한 모습이다. 칸막이 커튼이나 남녀 공간을 구분한 천정의 글씨가 남녀유별을 보여준다.   



금산교회는 김제 부자 조덕삼과 부모 잃은 머슴 이자익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굶주린 이자익을 거두어준 조덕삼은 선교사를 만나 세례를 받고 점점 늘어난 고인들과 장로 선출 투표를 한 결과 이자익이 선출되었다. 예상 못한 이자익의 선출이었지만 조덕삼은 여전히 주인과 고용인으로서 역할을 잘 유지하면서 이자익을 적극 지원한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민족의식을 지키기 위해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교회를 지킨다. 유교적 사회에 살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조덕삼과 진정한 신앙을 보여준 이자익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긴 금산교회의 낮은 종탑 위로 가을볕이 쏟아진다.





-백제의 천년고찰 김제 금산사, 

모악산 기슭에 자리 잡았다. 140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으며 이 일대에 보물과 국보 지정 유적이 가득해서 신비로움이 더한다.  역사와 문화, 사상적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사찰이다. 후삼국 견훤이 유배되었던 역사적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경내에 아직도 배롱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다. 



정면의 대적광전 앞으로 아직도 배롱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다. 오른쪽에 위치한 미륵전 안을 들여다보면 미륵불상의 크기에 놀란다. 미륵전은 미래에서 오실 부처님이란 뜻이다.  둘러보는 건물마다 창살에 새겨진 단청문양이 이리도 예쁘구나... 미륵전을 지나 나오는 계단 주변의 담장 아래에 붉은 꽃무릇이 한창이다.  

 



계단을 오르면 나오는 적멸보궁,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예배하는 법당이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셨으므로 불단은 있지만 불상은 모시지 않는 게 특징이다.  법당 앞으로 오래된 수령의 배롱나무의 꽃이 탐스럽다. 금산사 오층 석탑, 불사리를 모신 금강계단, 부도가 세워져 있는 단 위에 서서 내려다보는 경내 마당이 고요하다. 





-아리랑 문학마을 

전북 김제의 넓은 평야와 함께 떠오르는 소설 <아리랑>. 곡창지대였던 곳에 일제 강점기의 수탈의 현장이기도 했던 곳,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에서 당시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는데 김제의 문화제와 소설 아리랑을 만날 수 있는 아리랑 문학마을이 있다. 


소설 아리랑의 스토리를 이미지와 당시의 현장을 조성한 홍보관과 각 기관들, 소설의 발원지인 내촌마을과 등장인물의 가옥, 수탈관, 그리고 하얼빈역까지 이어진다.



근대 수탈 기관으로 면사무소, 우체국, 주재소, 정미소가 재현되어 있고 실내외 모두 실감 난다. 특히 일제의 공포스러운 악행은 지금 보아도 치가 떨린다. 아리랑 문학관은 볼거리 많은 관광지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아픔과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안 쪽으로 들면 나오는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있던 하얼빈역도 명소다. 당시 하얼빈 역의 60% 축소해서 복원한 역사의 시설들이 은근히 실감 난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다. 바로 그 시간 의거 직전  창 밖을 살피는 안중근 의사의 의연한 모습도 볼 수 있다.   





-김제의 맛을 담다

김제의 해산물을 총망라한, 음식의 인심이 푸짐했던 바다횟집의 저녁

새우장과 슴슴했던 버섯찌개 김제 전통시장 주변의 한정식 옥금정, 

그리고 챙겨 온 우리 햅쌀 100%라는 고소한 지평선 누룽지 





-메타셰쿼이어

돌아오는 길에는 죽산면의 메타셰쿼이어길을 빠뜨릴 수 없다. 메타셰쿼이어로 알려진 곳이 국내에 몇 군데 있는데 이곳처럼 들판에 길게 이어진 곳은 흔치 않을 것이다. 3km 길이의 무르익은 가을 들판, 울림을 준다.   





저무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김제역으로 들어온 Ktx는 두 시간 반쯤 쏜살같이 달려서 서울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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