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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즈 Jun 15. 2023

한탄강 협곡 따라 시간이 빚어낸 최북단 지질여행

-연천 백학마을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영웅 레클리스








지지난해던가 갔던 연천은 가을햇살이 바삭하고 고요했던 산하가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번에 찾아간 봄날의 연천은 조금 달라진 기분이다. 충분히 봄날인데도 바람이 차서 자꾸만 옷깃을 여몄다. 더구나 휴전선과 가까운 최북단이라는 이유로 사진 한 장 담아보지 못하고 느낌이 확연히 달랐던 봄바람을 맞으며 산을 내려왔다. 



마침 전방마을의 주민께서 안내해 주시는 바람에 고맙게도 최전방마을을 잠시 돌아볼 수 있었다. 백학면이라는 연천의 최전방 마을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인적이 드물다. 마을길 옆으로 자그마한 단층 지하에 백학역사박물관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은 게 보였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나 3.1 독립운동 시절에 몸과 마음을 바쳐 대항했던 이 지역 영웅들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그들만의 소중한 공간이었다. 알고 보면 우리들 모두의 소중한 이야기들이다.   

  

바로 맞은편 작은 광장에는 영웅정신계승마을이라는 탑이 우뚝하다. 그 옆으로 A  Frame Army라는 전장(戰場)에서 총을 잡는 대신 지게를 짊어진 민간인들의 활약을 새겨놓은 탑에 긴 설명이 있어서 꼼꼼히 읽어보았다.      


-호국보훈의 달, 최북단의 접경지역 연천을 가다

한국 전쟁 당시 접전지역이 산악지형이었기 때문에 전투 물품 운반의 어려움이 컸다. 이때 민간인들을 징발해서 보통 5시간씩 걸리는 험한 길을 걸어서 45kg 정도의 포탄을 지게로 짊어지고 날라다 준 주민들 덕분에 승리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마을이었다. 


이때 지게부대로 연인원 30만 명이 투입되었다 하니 주민들이라면 누구라도 지게를 짊어지고 날마다 나선 셈이다. 군번도 계급장도 없는 애국자들이었다. 지게 모양이 마치 영어의 A와 비슷하다 하여 미군들은 A부대라고 불렀다고 한다. 내 나라를 지켜내려는 마음으로 탄약을 져 나르는 이들을 보면서 유엔군들은 이들을 자신들의 생명줄이라며 전투의 절반은 이들의 공이라고 극찬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때 피복이나 총기가 지급되지도 않았고 가파른 절벽을 걸어 다니느라 희생되신 분들이 적지 않았다 하니 마음이 못내 안타깝다.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증표 레클리스(Reckless) 하사의 이야기

또 한 가지의 잊지 못할 이야기가 있었다. 지게부대 이야기 옆으로 숨은 영웅 레클리스 하사와 6,25 한국전쟁 이야기가 그림으로 보여준다. 레클리스(Reckless)는 전쟁당시의 군인이 아니라 군마(軍馬)다. 한국전쟁이 치열하던 중에 포탄운반용 말이 필요했다. 이때 미군들이 신설동의 경마장에서 구입한 퇴역 경주마의 이름이 바로 이 '아침 해'였다. 미군들은 아침 해의 별명을 레클리스라고 지었다. 


레클리스는 영리한 전투마로 미 해병들과 지내면서 우수한 전투병이 되어갔다.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통에도 엄청난 양의 포탄을 짊어지고 옮기는 용기와 헌신은 전쟁 영웅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사람이 없을 때는 혼자서도 고지를 왕복했다고 한다. 병사들과도 친구처럼 지냈던 전우 레클리스는 정전협정 후 미국 버지니아 본부로 데려갔다. 그리고 미 역사상 처음으로 군마인 레클리스를 하사관으로 진급시켰고 성대한 전역식으로 예우를 다했다고 전한다.       



레클리스는 해외 유명 언론의 특집기사로 다루어졌고 라이프매거진 특집에서는 '세계 100대 영웅'에 선정되었다. 한국에서도 2013년 우리의 전쟁영웅 레클리스의 실물크기 동상을 세워 우리 곁에서 영원히 살게 했다. 이른바 연천 백학마을의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증표, 6.25의 영웅 레클리스 활약상의 동상이 연천의 고랑포구 역사공원에 북녘을 향해 우뚝 서있다.   

    


고랑포구는 1930년대 번창했던 최고의 무역항이었다. 6.25 전쟁 때는 최대 격전지이기도 했지만 통일 한국의 접경지역으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고랑포구 역사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전시실과 VR, AR 체험은 물론이고 저잣거리와 카페테리아 등이 마련되어 있다. 교역이 왕성했던 고랑포구는 옛 명성과는 달리 역사공원 앞으로는 임진강변의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백학면에서 들러볼 곳이 또 하나 있다. DMZ 백학문화활용소라는 갤러리는 연천만의 지역적 특색도 있지만 전시물들도 특별하다. 현재는 정전 70주년을 맞아 백학역사박물관이 소장 중인 사진작업 결과물을 DMZ 백학문화활용소에서 유물 다시 보기 전을 하고 있는 중이다. 주민들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간직된 전쟁의 기억과 치열했던 상흔을 더듬어볼 수 있는 기회다. 행사는 6.30일까지다.     


 

-한탄강 주상절리 천혜의 지질여행

연천은 한탄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주상절리를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을 중심으로 세계지질공원 투어도 있고 힐링을 겸한 트레킹 코스도 연결되어 있어서 많은 이들이 찾아드는 곳이다. 주상절리라는 특이한 지질구조는 화산지형인 제주도를 비롯해서 우리나라에도 여러 군데 분포하고 있다. 그중에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곳에 형성된 수직의 주상절리가 병풍처럼 독특해서 관심 있는 사람들이 찾아드는 지질명소다. 물결은 잔잔하고 봄볕은 화사한데 한두 명의 강태공이 낚싯줄을 던져놓고 하세월이다. 평화로운 풍경 속으로 바람은 여전히 차다.  

    



-숭의전

주상절리 바로 위쪽으로 숭의전을 한 번 올라보아도 좋다. 홍살문 입구에서 찬 우물을 한 바가지 시원하게 들이키고 숲길을 걸어올라 가면 조선시대에 고려의 태조, 현종, 문종, 원종과 공신들의 제사를 지냈던 고려의 종묘인 숭의전이다. 주변으로 수백 년 수령의 나무들이 에워싸고 담장이나 기와에서 자라는 잡풀과 푸른 이끼가 세월을 말해준다.      



-연천 전곡리 유적

한탄강 지질명소 중에 연천 전곡리 유적은 이 땅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적 중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다. 특히 이곳의 우연한 발견 사실도 흥미롭다. 기록에 따르면 1977년 주한미군 그렉 보웬이 데이트를 하던 중 한국인 연인이 주워온 ‘이상한 돌’을 보고 전문가에게 조사요청을 하면서 이곳이 중요한 유적지라는 것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그때의 돌이 30만 년 전의 돌로 추정되는 전기 구석기의 유물인 전곡리 주먹도끼라고 한다. 이곳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지질명소의 보전을 위한 노력이 꾸준히 이어지는 중이다. 전곡선사박물관에서는 그 옛날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도 만나볼 수 있다.     


박물관 주변으로는 유적공원이 형성되어 있는데 산책로를 따라 당시를 상상해 볼만하다. 넓은 잔디광장에서 다양한 조형물의 형상을 보면서 까마득한 옛 시간을 생각해 보는 일도 흥미로운 일이다. 볼거리도 많고 공기도 맑아서 산책길로도 더없이 좋다.          



돌아가는 길에 한탄강 인접 지류인 재인폭포(才人瀑布)를 들러보아야 하지 않을까. 몇 년 전만 해도 물 길 아래로 내려가서 시원한 물줄기를 구경하거나 길 옆 절벽 위에 서서 셔터를 눌렀었는데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주차장도 넓어졌고 넓은 캠핑장도 생겨났다. 또한 전망대와 출렁다리가 이어졌으며 데크를 따라 양 옆으로 편리하게 내려가 볼 수도 있다.     


비가 많이 오면 엄청난 수량으로 물소리가 귀를 때린다. 그렇지 않을 때도 직선의 길쭉한 물기둥이 소리를 내며 수직으로 떨어져 내린다. 폭포 이름이 재인인 것은 옛날에 줄타기를 잘하던 才人의 이름으로 그에게는 예쁜 부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고을 수령이 부인을 탐하여 재인을 폭포에서 줄타기를 하게 한 후 줄을 끊어 죽게 한 것이다. 그래서 부인은 수령의 코를 물고 폭포에서 자결하였다는 슬픈 전설의 폭포다. 



연천은 경기도 최북단의 접경지역이다. 길을 가다 보면 군부대가 심심찮게 보이기도 하지만 인구밀도가 낮은 고장이어서 사방으로 한적하고 여유롭다. 울창한 산림자원도 풍부하고 호로고루성이나 당포성과 은대리성 등의 옛 성곽이 보여주는 오랜 세월의 이야기도 품고 있는 고장이다. 꾸밈없는 자연이 지금껏 보존되고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은 연천이어서 가능한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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