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변을 따라 흐르는 도심과 농촌의 그 어디쯤, 김포
그토록 노래하던 벚꽃도 진달래도 바람에 날려갔다. 푸릇푸릇하게 숲을 이루기 시작한 초여름을 걷는다. 그 길을 따라 높은 산 전망대 망원경을 통해 바라보는 애타는 그리움을 보았다. 산과 강과 철책이 어우러진 이 땅의 아름다운 길 위엔 평화를 염원하는 발걸음들이 이어진다. 분단의 현장을 고스란히 밟으며 가슴 시린 역사를 살피는 유월의 사뭇 다른 마음을 기억하려 한다.
-자연 그대로의 애기봉평화생태공원
구불구불 비탈진 산길을 거쳐 당도한 애기봉평화생태공원은 최북단인데도 말 그대로 평화롭다. 한반도 유일의 남북 공동이용수역에 위치한 평화와 화합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남북접경지역의 154m 쑥갓머리산이라 불리던 애기봉은 건축가 승효상 씨가 설계한 건축물과 자연생태가 잘 어우러진다.
얼핏 갓난아기를 떠올릴 수 있는 애기봉이라는 이름은 평안감사와 기녀 애기의 애틋한 설화에서 온 말이다. 피난길에 오랑캐에게 붙잡혀간 감사를 그리워하던 애기가 '님이 잘 보이는 곳에 묻어 달라'며 세상을 떠났다.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는 애기의 한이 마치 실향민의 한과 같다 하여 이곳에 애기봉(愛妓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한다.
전망대에 오르기 전에 먼저 평화생태전시관을 둘러보자. 전시관을 둘러싼 생태조성과 조각 전시는 작품마다 평화가 가진 다양한 의미를 보여준다. 실내 전시공간의 조강 생태 디오라마와 조형물들 역시 볼만하다. 기왕이면 상주하고 있는 해설사의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으로 사전 지식을 얻고 오른다면 강 건너 북녘을 바라보는 마음이 한결 다르다.
평화, 생태, 미래를 주제로 한 3개의 평화생태전시관의 통유리 너머로 보이는 전망도 시원하다. 물길 저편의 남쪽과 북쪽의 경계가 모호하다. 이곳에선 38선을 중심으로 한 DMZ는 분단 70년이 지나면서 정확한 구분이 없어졌다고 한다. 창밖으로 흐르는 조강과 전시관의 바닥과 벽에 그려진 위치도를 가리키며 전하는 해설이 생생하다. 한강 하류 끝의 물줄기와 김포와 강화, 북쪽의 개풍군이 뒤엉킨 모습을 눈앞에서 본다. 전시 미디어아트와 VR체험으로 개성으로 떠나는 가상현실도 이곳에서는 유난히 실감이 날수밖에 없다.
평화생태공원의 두 번째 건물인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서 흔들 다리를 건넌다. 산골짜기에 길게 이어져서 고개를 돌리면 온통 울창한 숲이다. 흔들 다리 끄트머리쯤부터 지그재그형 탐방로가 완만하게 이어진다. 빙글빙글 돌아 걸으면서 초여름의 풍성한 푸르름을 만끽할 수 있다. 1953년 휴전 이후 아무도 오갈 수 없는 고립 지역이 자연스럽게 생태의 보고가 되었으니 천혜의 생태공원인 셈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북한은 그저 건넛마을이다. 미세먼지로 시야가 흐린 날이었는데도 고배율 망원경을 통해 북녘 땅이 선명히 보인다. 수도권에서 북한의 최전방을 볼 수 있다니. 1.4km 거리에 그들이 살고 있었다. 빌라와 같은 공동주택이 새것 느낌으로 마을을 이룬 북한 땅이 거기 있다. 주민들의 사는 모습이 마냥 친근하다. 돛배를 젓거나 수영을 해서라도 단숨에 건너가 볼 수 있는 코앞인데도 구경꾼처럼 바라볼 수밖에 없다. 물길을 가운데 두고 김포와 강화도, 파주시가 개풍군을 마주한 채로 우리는 사는 중이다.
남북의 가운데로 흐르는 조강은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서 서해로 흐른다. 그 물줄기를 조강이라고 하는데 큰 강, 할아버지 강이라는 뜻이 담겼다. 물길 사이로 마주 보는 북쪽 건넛마을과 우리의 분단 현실을 청정의 생태공원에서 평화롭게 둘러볼 수 있으니 최고의 안보여행지 아닌가 싶다. (방문 시 신분증 지참과 인터넷 예약 필수)
-숲 속 문화예술여행, 김포 국제조각공원을 걷다
애기봉평화생태공원을 내려오면서 들를 수 있는 김포 국제조각공원은 문수산 숲 속이 작품전시장이다. 통일을 테마로 만들어진 세계 유일의 자연 속 전시장에 평화의 메시지 전달을 위한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 3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산속에 풍덩 빠져 자연 지형에 어울리게 전시된 예술작품 한 점씩 찾아보는 숲 속 문화예술여행을 한다. 미로와 같은 숲길을 걸으면서 전시 작품을 관람할 수 있어서 산책과 힐링을 동시에 맛본다. 솔향기 번지는 군하숲길 주변 둘레길을 걸으며 여유롭게 작품들을 둘러본다면 온전히 한나절을 보낼 수도 있다. 전시는 연중무휴다.
-덕포진의 손돌목 산책길과 짭조름한 대명포구
사적 292호 덕포진은 강화해협을 마주하고 있는 김포의 끝자락에 자리를 잡고 있다. 조선시대 서해에서 강화만을 거쳐 한양으로 진입하는 길목의 바닷길로 군사적 요충지였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미국과 프랑스 함대와 맞서 싸웠던 격전지의 흔적이 남아있다. 여기서 발굴 출토된 포와 포탄, 조선시대의 상평통보와 주춧돌 등은 오르기 전 덕포진 전시관에서 볼 수 있다.
현재의 덕포진은 3개의 포대와 그 끄트머리에 파수청 터가 발굴되었다. 이어서 강화해협이 건너다 보이는 마지막 지점에 손돌묘가 보인다. 강화해협 중에서 가장 폭이 좁고 물살이 거센 지형을 이용한 천혜의 요새 손돌목이다. 바다가 보이는 수려한 풍광 사이로 수백 년의 역사를 돌아보게 된다. 당시 포격전이 펼쳐졌던 포대 중 첫 번째 포대가 가장 길고 언덕의 곡선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방풍림 소나무 아래에서는 수백 년 역사를 더듬듯 바다를 내다보며 걷다가 쉬고 있는 사람들을 본다. 덕포진은 평화둘레길 1코스와 염하강 철책길 순환 코스로 연결된다.
이윽고 포대를 지나고 손돌묘에 이르면 눈앞에 멋진 풍광이 펼쳐진다. 뱃사공 손돌은 고려시대 몽골군의 침입으로 왕이 강화도로 피난을 갈 때 물길을 안내하던 중 세찬 물살에 겁이 난 왕의 오해로 죽임을 당한 뱃사공이다. 죽기 전 손돌은 바가지를 물에 띄우며 '이 바가지를 따라가면 무사히 건널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전하고 죽었다.
바다를 무사히 건넌 임금은 자신의 성급한 오해로 죽은 손돌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성대히 장사를 지내주었다고 한다. 후에 손돌이 죽은 음력 10월 20일쯤이면 찬바람이 거세게 불어 사람들은 손돌바람이라고 했고 이 무렵 추위를 손돌 추위라고 부른다. 지금은 손돌의 배가 지나던 물길에 고깃배가 유유히 흘러간다. 바다 건너편으로는 강화의 광성보와 용두돈대가 보인다.
손돌묘 옆으로는 덕포진 둘레길을 만난다. 평화누리길 1코스를 알리는 대명포구의 조형물을 지나서 시작되는 염하강 철책길 순환 코스가 덕포진과 손돌묘까지 와서 부래도, 덕포마을, 덕포진, 대명항 코스의 6.5km를 걸으면 약 두 시간 정도 걷게 된다. 평화누리길 1코스 염하강 철책길과 절반 이상 겹치는 순환길을 따라 쉬엄쉬엄 걸으며 보이는 철책 너머 김포 들녘과 바다 풍광이 가슴을 탁 틔워준다. 우리의 역사가 담긴 문화유산이 휴식을 주고 둘레길 코스가 되어 사람들이 오간다. 더불어 마음 가득 평화를 염원하게 된다.
-오래된 숲의 위로, 장릉
벚꽃과 진달래꽃의 반영이 예쁘던 김포 장릉 연못에 이제는 오래된 나무들이 연둣빛으로 연지에 비친다. 김포 장릉은 조선 제16대 인조의 부모인 추존 원종과 왕비 인헌왕후 구 씨의 능이다. 이곳은 특이하게도 입장 시간이 아침 7시부터여서 이른 시간부터 관람이 가능하다. 역사 속의 장소라 하지만 우리 일상에서 찾아가 차분히 힐링을 얻는 공간으로도 더할 나위 없다. 봄이면 목련과 벚꽃이 눈부시다. 초록으로 울창한 여름을 지나 가을엔 오래된 숲의 위로가 마음을 토닥인다. 긴 세월을 담은 수목들 사이를 아무리 걸어도 지루하지 않다.
단청 없이 소박한 재실 앞의 연지는 묘역과 함께 이루어진 긴 세월을 담고 있다. 새롭게 단장된 장릉 역사문화관에서는 정조 임금이 직접 지은 시도 감상할 수 있어서 뜻깊다. 복잡하고 소란한 세상에서 하루쯤 깊이 잠겨보아도 좋은 곳. 무해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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