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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슉 Aug 09. 2021

사라지다

2021년 8월 9일 오늘의  나

2021년 8월 9일 오늘의 나


사라지다


음..... 오늘 내가 뭐 했더라.....


분명히 아침에 일어났으니 회사에 갔겠지.

어제가 일요일이었으니 오늘은 월요일이 맞겠지.

무언가를 하며 시간을 보냈으니 퇴근시간이 되었겠지.


..... 그런데 오늘 하루  내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 속에 없다. 뭔가 내가 생각하기에 일을 하긴 하지만 생산적이지 않아 중요치 않기에 무의식적으로 기억에서 지웠거나, 혹은 너무 정신없어서 일일이 다 머릿속에 저장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어떤 이유로든 나의 오늘은 그리 인상 깊지 못했나 보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한데 이렇게 시간이 사라진 기분이 들면 불안함과 허무함이 몰려오곤 한다.


존 버거는 "몇 시인가요?"에서 "시간의 흐름은 순탄하지 않다. 흐르는 시간의 격류가 수명을 줄인다. 실제로도 그렇고 주관적으로 봐도 그렇다. 지속기간은 짧다. 아무것도 계속되지 않는다. 이것은 애가인 동시에 기도다."라고 썼다.


시간의 흐름에 대한 슬픔을 무덤덤한 어조로 표현했다. 이 글을 쓰며 다시 글귀를 찾아보게 되었는데, 이제보니 존 버의 말대로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이 오늘의 시간이 사라진 것에 대한 슬픔의 노래이면서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기도처럼 느껴진다.


이 글과 함께 있는 그림(셀축 데미렐 그림)을 보면 더욱 착잡해진다. 얼굴이 시계인 사람이 한 손에 시곗바늘을 들고, 그것으로 앞에 앉아있는 노신사의 얼굴에 주름을 그리고 있다. 노신사의 얼굴에는 이미 주름이 가득인데 거기에 시계는 잔인하게 주름을 또 만들어 넣는다. 그리고 주름이 그려지는 노신사의 눈빛은 초이 없다. 이미 체념했거나 아니면 영혼이 진즉에 나가버렸거나...


[존 버거 글. 셀축 데미렐 그림 "몇 시인가요?"(열화당), pp.58-59]


글과 그림으로 시간의 잔인함을 나타낸 것을 보며 오늘의 시간들을 다시 곱씹어 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간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줄어든다. 그렇기에 오늘처럼 허무하게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면 불안해지는 것이다.


오늘이 있었기에... 내일이 있다는 생각으로 오늘의 의미를 부여해본다. 내일은 오늘보다 좀 더 의미 있는, 기억에 남는 하루가 될 수 있기를...


이렇게 나의 다시 오지 않을 2021년 8월 9일은 사라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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