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 역사적으로 신선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인간이 일을 함으로 생산품을 얻고 그 생산품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어 왔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또, 원초적으로 노동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산물이기도 하다. 인간은 노동을 하면서 삶의 의미를 찾기도, 잃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동이 사회 변화에 맞춰 양상이 변하는 것도 사실이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대량 생산이 이뤄지면서 단순 반복 노동이 강조되었고, 장인적 노동보다 반숙련 노동이 더 떠오르기 시작했다. 현대에 와서는 인공지능 발달과 컴퓨터화로 인한 자동화가 노동 양상에 영향을 미쳤다. 과거처럼 단순 반복 노동은 강력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컴퓨터를 제어하거나 산업현장을 통제하는 노동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많은 기술이 인간의 전통적인 노동을 대체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노동이 변화해 오면서 우리는 ‘노동’에 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노동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며, 어떻게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노동은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노동 자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은 경계해야 한다. 결국 노동은 지금보다 고도화된 방식으로 존재할 것이다. 그런 방식을 유지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도 ‘기본소득 제도’는 의미 있다.
기본소득 제도에 대한 논의 이전에 ‘기본소득 제도’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기본소득은 일반적으로 6가지 조건을 갖는다.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 정기성, 현금성, 충분성이 기본소득의 일반적인 요건에 해당한다. 기본소득 제도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유토피아에 등장한다고 하면 무엇인가 신비롭고, 비현실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 수 있다. 하지만 기본소득 제도는 실제로 많은 국가에서 논의해왔고, 논의되고 있는 제도라는 점에서 논의가 의미 있다.
필자는 기본소득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본소득 제도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다만 기본소득 제도를 공약했다고 해서 무조건 포퓰리즘으로 볼 사항은 아니다. 기본소득 제도에 대한 사회의 진지한 논의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 제도의 가장 큰 장점은 ‘보편성’이라는 측면이다. 우리 사회가 복지제도를 촘촘하게 관리하려 했지만, 복지의 사각지대는 언제나 존재했다. 모두에게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함으로 더 나은 삶을 꾸려나가는 데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국민은 국가의 보호 대상이기에 최소한의 인간다움 삶을 보장받을 권리를 갖는다.
그렇다면 그 방식이 왜 기본소득 제도일까?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이 기본소득 제도를 실현하기에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한국의 복지시스템이 사회민주주의 국가 수준보다는 낮고, 자유주의 국가 수준보다는 높은 상황이다. 다만 자유주의 국가와 사회민주주의 국가의 복지 수준과 비교한다면 자유주의 국가와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한국은 조금 더 높은 수준의 복지를 끌어들이면서도 복지 사각지대를 없앨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많은 이가 ‘기본소득’에 반감을 가질까. 정서적인 측면과 현실적인 측면을 나눠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정서적인 측면은 ‘불로소득’에 대한 거부감이다. 서두에서도 밝혔다시피 노동은 신선하고 노동을 통해서 얻는 임금이 정당하고 가치 있고, 그렇지 않은 소득은 그 가치를 의심받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노동은 ‘임금노동’이다. 그와 관련해서 부동산 투기와 관련한 불로소득에 국민들이 분노하는 주요한 이유이다. 토지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건물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엄청난 소득을 가져가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이다. 어쩌면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에까지 이른 것이다.
현실적인 측면에서는 재원 마련의 어려움이다. 보편적으로 모든 국민에게 정기적으로 일정 소득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 기본소득을 할 수 있는 재원이라면 저소득층을 선별하여 집중적으로 지원하자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다만 기본소득 제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재원을 추가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추가적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고소득자의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고소득자의 세금을 추가적으로 걷어 저소득층에게만 집중적으로 분배한다면 소득의 재분배 효과는 클 수 있지만, 그것이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쩌면 조세 저항이 일어날 수도 있다. 또, 선별 지원에 있어서 선별하는 데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완전한 선별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있다. 예를 들어 소득 수준 하위 70%에게 지원을 한다고 가정할 때 하위 소득 70%와 70.01%를 구분함으로 실질적인 불평등이 발생할 수 있다. 실제적인 경제 여건과 관계없이 기계적인 구분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일례로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선별적으로 한 적이 있다. 그 당시 “나보다 더 많이 버는 사람은 지원금을 받고 나는 재산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지원금을 못 받았다.”라는 이야기처럼 기계적인 선별이 실질적인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렇다면 기본소득 제도를 주장하는 입장에서 재원 마련을 어떻게 할까.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기본소득’을 주장했던 후보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후보’, 기본소득당 ‘오준호 후보’이다. 물론 국가혁명당의 ‘허경영 후보’도 기본소득 개념의 ‘국민 배당금 제도’를 주장했다. 이재명 후보와 기본소득당을 중심으로 재원 마련 방법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자. 우선 기본소득당과 이재명 당시 후보의 공통적인 재원 마련 방식은 ‘국토보유세’와 ‘탄소세’이다. 토지와 탄소에 대한 공공성을 인지하고 세금을 걷고 다시 기본소득의 형태로 국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추가적으로 기본소득당은 ‘데이터’, ‘임금•사업•양도소득’등에도 세금을 걷어 재원을 마련하자는 주장을 했다.
이렇듯 재원 마련에는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 재원 마련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공공이 소유 또는 부에 기여한다고 하는 공동자원에 대한 소유나 이용에 있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플랫폼 기업이 무상으로 대중의 데이터를 이용해 광고와 같은 수익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데이터’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 토지에 대한 공개념을 적용할 수도 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탄소배출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탄소세를 논의할 수도 있다. 기본소득 제도는 사회적으로 부의 재분배를 과감하게 실현하고 국민의 소비여력을 충족시킴으로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다는 측면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소득 제도’가 단순히 복지 차원의 정책을 넘어 경제 차원의 정책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기본소득은 좌파와 우파의 개념을 넘어 사회•정치•경제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
기본소득 제도에 대한 정당한 비판과 보완이 있을 수 있다. 다만 단순히 비현실적인 제도라는 이유로 논의 자체를 거부해서는 안된다. 또, 기본소득 제도를 주장하는 정치인을 무조건 포퓰리스트라고 비판해서는 안된다. 물론 포퓰리즘적 성향이 강한 ‘기본소득’을 주장할 수 있지만, 기본소득 제도=포퓰리즘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어서는 안 된다. 최소한 기본소득 제도에 대한 건강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그것은 기본소득 제도에 대한 진지한 논의의 시작으로 국가 부에 대해 모든 국민이 기여하고 있는 것이 있다는 점에서 ‘공유부’ 개념에 대한 긍정적 검토일 것이다.
분명 사회는 변화하고 있고, 임금노동도 다른 차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노동 양상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금노동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지고 4차 산업혁명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4차 산업혁명이 국가의 발전을 넘어 국민의 기본적 생활 보장이라는 공동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