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학교 교육은 어디에 있나?
창의적 인재와 도전하는 사회를 꿈꾸며.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읽을만한 책을 찾던 도중 『대한민국에 교육은 없다』라는 책이 눈길을 끌었다. 그 책의 첫마디는 명확했다. “단언컨대, 대한민국에 교육은 없다.” 조금 충격적인 한 문장이었다. 꽤 오래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그 당시 문제의식을 지금 교실에 적용해 보더라도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인다. 과연 이 책뿐이랴. 지금껏 출간된 교육과 관련된 책을 보더라도 부정적인 내용이 태반이다. 그래서 다른 국가의 교육을 살펴보는 책이 나오기도 하고, 혁신이라는 이름의 색다른 교육 방법론이 나오기도 한다.
왜 대한민국 교육은 이 지경이 되었을까. 흔히 학교 교육을 문제만 풀어 재끼는 훈련소가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주어진 내용을 머릿속에 집어넣기만 하면, 주어진 과업을 잘 수행하기만 하면 훌륭한 인재라는 생각만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런 시절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라는 일만 잘해서 성공하는 시대, 그 시대 추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한국은 엄청난 고성장 시대 속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면서 다른 나라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다. 어른들의 말을 빌리자면 그 시대 사람들은 “엄청 고생하며 살았다.” 그 시대 고생을 폄하하고자 하는 생각은 전혀 없다. 사람들은 그때도 고생하고 지금도 고생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달라진 건 시대와 상황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는 달라졌고, 여러 정치·사회·문화·경제·교육 등 ‘상황’이 달라졌다. 더 이상 지금의 시대와 상황은 ‘주어진 내용을 머릿속에 집어넣기’만을 원하지 않는다. 좀 더 ‘자기 생각’을 하길 원하고, 주어진 현실을 좀 더 좋게 ‘변화시키길’ 원한다. 좀 더 주체적이길 원하고, 능동적으로 행동하길 원한다. 국가가 이야기하는 ‘창의적 인재’, ‘도전하는 인재’는 그 능동성과 주체성을 필요로 한다.
지금의 한국은 ‘창업’과 같은 도전적 행위를 권하는 사회이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실패하면 끝나는 사회이다. 실패를 권하지 않는 사회이지만 모순적으로 도전을 권하는 사회가 되었다. 이 사회에서는 도전이 활발할 수 없고, 많은 사람이 실패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실패해도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 시작이 학교가 되어야 한다. 특히 초·중등 교육처럼 보편적인 교육 환경에서는 사회가 국민에게 제대로 된 메시지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한국 학교 교육은 반대다. 실패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주고 있다.
학교 안에서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교육이 많다. 자신이 푼 문제가 틀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학교 안에 만연하다. 이는 쉽게 답을 도출하지 않으려는 습성으로 이어진다. 답을 틀릴 바에는 답을 아예 말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답을 틀리는 것이 창피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배적인 생각은 답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말하라는 ‘표현 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많은 한국 학생은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 노래 부르는 것, 춤추는 것 등 많은 표현을 두려워한다. 잘하지 못할까 두렵고, 긴장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생각은 ‘잘해야 한다.’, ‘실패는 없다.’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 한국 사회는 실패를 용인하는, 더 나아가 권면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그 시작이 학교여야 한다. 학교는 사회로 나가기 전 단계에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실패의 폭이 넓어도 된다. 엉뚱한 실패가 계속 나와야 한다. 그만큼 ‘도전’을 열어두어야 한다. 실패가 기회가 되어야 한다. 실패도 희망인 학교여야 더 창의적인 생각이 나올 수 있다. 결국 학교에서 자주 질문하는 문화가 정립되어야 한다. 질문은 호기심에서 나오기 때문에, 도전과도 연관이 깊다. 그러나 현재 학교는 그 호기심을 꺾으려는 풍토가 심하다. 답은 정해져 있고, 답을 푸는 방식도 효율성을 따지며, 그 틀에서 벗어난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러한 학교 교육의 틀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만 지금까지의 학교 문화 풍토를 변화시키려면 ‘무한 경쟁’의 쳇바퀴를 끊어내야 한다. 지금 학교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합리적으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승자 없는 승리를 위해 경쟁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등 교육은 진학을 위한 교육 경쟁이 과열되어 ‘더 좋다고 생각하는 곳으로의 진학’이 승리이지만 막상 진학을 한 뒤는 남는 게 없는 패자가 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야말로 승자 없는 승리 게임이다. 따라서 승자 없는 승리를 위한 게임을 중단해야 앞서 이야기한 ‘도전하는 사회’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정말로 돌아보자. 대학 수학능력시험을 보는 수험생에게 이입을 해보자. 각종 불안과 허덕임 속에서 나중에 활용할지도 모르는 지식을 ‘학생이니까’ 머릿속에 집어넣는 상황을 말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하라니까 하는 공부를 생각해보자. 얼마나 답답한 환경인가. 이 속에서 “도전하라.”, “창의적으로 생각하라.”라고만 말하는 건 누가 뭐래도 폭력이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젊으니까, 어리니까 ‘상황 탓’만 한다는 압박을 받는 현실이다. 상황이 바뀌었고, 시대가 달라졌다. 학교는 달라져야 한다. 학교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져야 한다. 학교의 현실을 직시하고 필요한 부분을 변화시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