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오력만이 살길이라고 말하는 사회에게
우리는 참 노력을 많이 한다. 노력을 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고, 패배할 것만 같다. 불안하기 때문에 그렇다. 좋다고 알려진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할까 봐 두렵고, 취직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 이런 만성적인 불안과 두려움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계발하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는 자기 계발을 부추기고 그 계발의 논리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도태되게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능력’이라 포장한다.
한국에서 능력주의는 만능이다. 능력주의로 인한 차별이 정당화된다. 단순히 개인이 능력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이고, 노오력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언제까지나 노오력한다. 사회에서 많은 것이 개인의 능력으로만 해결되지는 않는다. 물론 이런 방식의 주장은 인기를 끌지 못한다.
서점에 나와있는 자기계발서만 보더라도 그렇다. 거의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는 독자에게 노오력하라고 강요한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그리고 그 책이 큰 인기를 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각 개인의 '능력'을 온전히 '판단'할 수 있을까? 학창 시절 풀었던 문제들을 생각해 보자.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보는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해 열심히 문제 푸는 '훈련'을 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실제적으로 도움이 된 지식보다는 빠르고 정확한 '정답'을 찾기 위한 훈련을 했을 것이다. 때론 빠르게 문제 의도를 파악하는 훈련을 했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암기했을 수 있다.
굳이 학창 시절 시험문제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 능력을 판단하는 여러 ‘지표’는 온전하지 않다. 결국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는 과정이기에 완전히 능력을 수치로 나타낼 수 없는 것이다. 인간 사회이기에, 우린 능력주의가 불가능하고 지금의 상태에 놓여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능력주의 말곤 아무런 대안이 없다는 사람도 있고, 아직 능력주의는 그 ‘객관성’을 잃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한 생각들이 모여 지금 이 ‘불안사회’를 만든 것이다. 불안사회는 끊임없이 다른 이와 비교하며 스스로를 얽매이게 한다.
그렇게 불안사회는 개인의 다양성을 무시한 채 만능인이 되지 못한 개인을 억누르게 된다. 불안사회는 누구나 완벽해지고 싶어 하지만 누구도 완벽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듯 보인다. 모든 것에서 내가 뒤쳐질까 봐 ‘불안’ 하기 때문이다.
자기계발만이 답이라 말하는 능력주의 사회는 사회 많은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킨다. 개인도 이 상황을 납득하고, 사회 구조•제도의 문제를 보지 못한다. 이러한 시각은 각 개인이 항구적이고 파멸적인 경쟁 상태에 놓이도록 만든다. 현재 한국 사회가 파멸적인 경쟁이 극단적으로 지속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