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확신은, 강한 결핍의 전조 증상

여행하는 선생님들 에세이_장영욱 1. 내가 했던 수업을 돌아보았다.

by 장영욱

[본 게시글은 교육 봉사 연합 동아리 "여행하는 선생님들" 에세이 프로젝트를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편의를 위해 반말을 사용합니다.]


나는 지난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대학생의 학기로 따지면 총 5학기의 시간을 교육 봉사 동아리 여행하는 선생님들(이하 "여쌤") 구성원으로 활동했다. 이름에 걸맞게 여쌤에 속한 우리들은 매 방학마다 전국의 여러 작은 지역에 위치한 고등학교를 찾아가 교육 봉사를 진행한다.


다만 여기에서 특별한 점은 교과 과목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그렇게 하게 된 이유는 다른 글에서 자세히 밝힐 기회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대학생으로서의 우리가, 고등학교와 대학교 생활을 하며 얻게 된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고등학생들과 함께 나누어 보고 싶은 얘기를 준비한다.


여기까지 들어보았을 때, 이 "수업"(≒ 대화)이라는 것을 준비하여 실행하는 것이 상당히 추상적이고 어려운 과정으로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다. 나의 경우에도 수업 주제를 구상하는 것부터가 굉장한 난관이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한다는 말인가? 나누라고 하면 어떤 대화든 나눌 수 있다. 하지만 모든 대화가 충분히 나눌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만나게 될 고등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더 의미 있는 시간을 제공하기 위한 고뇌는 완벽주의를 저기 멀찍이 두고 다니는 사람들에게도 너무 당연히 일어난다.


수업을 구상하는 기간에는 구상을 위한 시간을 따로 두는 것과 별개로, 먹을 때, 걸을 때, 씻을 때와 같이 특별히 집중을 필요로 하지 않는 순간에 계속해서 수업 주제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 다행히도,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여태까지 여쌤을 통해 할 수 있었던 세 번의 수업에서 주제를 정하지 못해 위기였던 수업은 없었다.


내가 가장 처음으로 했던 수업의 주제는 "남의 시선 의식하지 않기"였다. 당시 새내기였기 때문에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곱씹어보기에 충분히 가까웠고, 결국 고등학교 시절의 나와 새내기 당시의 나 사이의 차이점을 생각해 볼 수 있었고, 흐릿하던 생각이 조금 분명해졌다.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하다. 트레드밀을 뛰며 고민하던 중에 무언가가 번뜩했던 그 순간. 생각은 조금 소박했다. 주말 등교를 할 때 어떤 옷을 입을지 아주 고심했으며 혹시나 같은 옷을 자주 입는다고 느끼는 날이면 그날 마주치는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것처럼 느꼈던 고등학생 장영욱, 그리고 여러 벌의 흰색 반팔 티셔츠만을 매일 돌려 입으면서도 아무 생각 없던 새내기 장영욱. 이 차이에서 "의미"의 냄새를 맡았다.


결국 나는 학생들과 우리 자신들은 남의 시선을 얼마나 의식하고 살아가는지에 대해 얘기 나누고 싶었다. 새내기가 되고, 어른이 되었다고 착각하고, 결국 무언가 대단한 개선이 있었던 것처럼 느끼고 있던 나는 고등학생들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접어버리지 않기를 바랐다.


같은 해 겨울, 두 번째로 준비한 수업 주제는 "생각하기"였다. 그해 겨울도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고심하던 중, 생각보다 우리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자신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무의식을 바탕으로 선택하고, 결국 그 판단에 대해 이유를 물으면 "그냥"이라고 대답한다. 나는 이 "그냥"이라는 말에서 또 한 번 의미의 냄새를 맡았다. “그냥은 없다.” 그거 하나에 꽂혀서 엄청난 진리를 마주한 것처럼 느꼈다. 뭐, 누구든 이런 착각은 자주 하는 것 같다.


그 겨울, 구례고등학교에서 나는 '그냥'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는 주장을 전제로 일상 속에서 우리가 충분히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경우들에 대해서 학생들과 함께 고민하고 대화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학생이 큰 고민 없이 내린 선택으로 인해 후회하지 않기를, 곱씹어 생각하며 그 단맛을 충분히 느껴보기를 바랐다.


그리고 입대 직전 하게 된 회심의 마지막 수업.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기지만, 그때 나는 스스로를 되게 성숙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3학년 밖에 안 됐는데, 주변에 나보다 나이가 많은 이가 거의 없었다. 학교 생활을 하며 아는 선배를 많이 만들어 두지 못한 탓도 컸고, 한창 떠들썩하던 그 역병으로 인해 비대면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 탓도 컸다. 2021년의 19학번 장영욱은 자타가 공인하는 선배이자 형, 혹은 오빠이자 주변 사람들의 근심거리를 잘 풀어주는 주는 해결사였다. 아무래도 이렇게 생각하던 당시였으니, 수업 주제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어른 장영욱이 아기 같은 고등학생들을 보며 전하고 싶은 것들을 떠올리려 했다. 그렇게 고른 주제는 인간관계였다. 학생들이 자신 주변의 사람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는지 고민해 보고, 문제를 느끼고 있는 관계는 없는지 혹은 내가 남들을 따스히 대해 주고 있는지에 대해 얘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시간이 훌쩍 지나 이렇게 글을 쓰기 위해 고등학생들과 이 독특한 '수업'들, 즉 대화를 진행하는 여정을 되돌아보았다. 처음 나의 수업들을 마주한 순간 나는 추억을 떠올리는 재미를 느낌과 동시에 당혹감을 느꼈다. "저 당시의 나는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그런데, 지금은?" 내가 무언가 깨달았다고 생각해서 만들었던 수업들이었는데, 분명 마음에 옹골차게 자리 잡은 어떤 주제를 꺼내어 학생들과 함께 대화했는데, 왜 지금의 나는 되려 그 '진리'들을 더 모른다고 느끼고 있는 걸까?


내가 무언가를 "이해했다"는 강한 믿음은 그저 그것에 대한 이해를 간절히 얻고 싶어 한다는 것, 그리고 실제로는 단 한 줌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나타낼 뿐이었다. 너무나 알아내기 힘든, 그렇지만 너무도 알고 싶은 진리 앞에 우리는 먼지만큼 작은 단서만으로도 진리에 도달한 것처럼 행동한다. 내가 학생들과 공유하고 토론하기 위해 자신 있게 선택한 주제는 깊이 생각해 보면 나 자신도 여전히 씨름하고 있는 바로 그 문제였다.


우리가 명확하게 이해했다고 주장하는 순간은, 단지 자신의 무지함을 알아차린 순간일 수 있으며, 여기에서 이 무지함을 인정할 때 우리는 그 본질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갈 준비를 하게 되는 것. 이 순간은 분명 너무 어렵다. 스스로가 무언가를 알게 됐다는 느낌에 취해 있는 순간에,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 것은 정말 어렵다. 여쌤 수업을 준비하는 것은 그 어려운 일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 시점이 수업을 준비하던 순간일 수도, 지난 수업을 돌이켜 보는 순간일 수도 있겠지만. 수업을 준비하는 우리는 누군가에게 전해야 할 "의미 있는 것"을 고민해야 하고, 수업을 하는 우리는 그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하므로 스스로가 정말로 이해하고 있는지 계속해서 자신에게 질문한다.




여행하는 선생님들의 수업은 학업, 좁은 인간관계, 좁은 관심사 등을 이유로 여러 의미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은 고등학생들에게 흥미로운 시간이면서 동시에 대학생이라는 또 다른 세계를 알게 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렇다면 대학생들은? 여행과 고등학생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기쁨뿐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들의 수업은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자신에게 더 많은 도움이 준다. 각 수업의 준비와 진행 과정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고민해야 하니 당연히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기회가 된다.


하지만 내가 이 활동을 통해 얻은 또 다른 교훈은, 무언가에 대해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되는 순간은 그것에 대한 나의 강한 결핍을 보여주는 순간일 수도 있다는 것. 무엇이든 확언하지 말 것. 내가 얘기하는 것에 대해 너무 확신하지 않을 것.


여행하는 선생님들에서의 경험은 대학 생활이 끝을 향해 달려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변화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