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 새페라

by 예나네

숲 속 하늘에 음표가 떠있다. 하늘을 무대로 공중을 표표히 나는 음표, 오선지에 들앉은 모차르트 음 자리인양 나뭇가지를 오르내리는 음표, 혼자 동떨어진 채 동어반복의 외마디 음으로써 비트를 맞춰주는 음표가, 날고 있다.

숲으로부터 와서 그런가. 그들 소리는 한 결 같이 청아하다. 허스키한 음성이라도 새의 몸체에서 나오는 소리는 맑게만 느껴진다. 새의 목젖을 타고 터져 나온 숲의 향기이다. 숲처럼 자연하고 직감적인 음감은, 어울림이 완성된 오페라 곡보다 더 감명 깊게 들린다.


새들은 내게 오페라 가수가 되었다. 매일 아침 눈뜨면 귀 기울이며 새들의 비상(飛上)을 듣는다. 내 눈은 동트는 해를 따라 하늘로 향하고 내 귀는 새들의 날기를 향하며 아침을 시작한다. 새들은 산등성이로부터 태양 빛 자락을 물고 나와 나를 설레게 한다. 태양이 하늘의 색감과 나의 시선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듯 새들이 주는 정서도 매번 다르다.

오늘 아침 새들은 허공을 가르는 V 자로 무리 지어 태양의 엷은 장막을 하늘에 펼치면서 비상하였다. 흰 깃털 사이로 내뿜는 그들 음성은 장중한 서곡이었다. 쿠크바라. 쿠크바라, 하고 자기 이름을 부르며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자맥질은 하루의 준비 예식이었다.

몸 전체에서 소리를 터지듯 내뿜는 새는 오페라 가수와 닮은 점이 꽤 있다. 노랫말에 담긴 속뜻을 내가 딱 부러지게 이해 못한다는 것. 몸짓과 표정, 그리고 그들이 있는 공간 배치에 의해 감동이 달리 전해오는 점. 음악은 물론이고 문학, 미술, 무용적인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는 종합예술이라는 점이 닮았다.

나는 오페라가 보고 싶을 때 숲으로 온다. 새들의 몸짓을 담은 숲 속 배경은 오페라 무대보다 더 운치가 있다. 무대의 천정은 하늘이며 객석은 초원이다. 관객은 나 혼자다. 티켓도 필요 없고 옷매무새도 남을 의식하여 애써 꾸며 입지 않아도 된다. 마음 하나 지니고 오면 새들은 언제나 나를 관객으로 맞아준다. 내가 앉고 싶은 곳에 앉아서 그들 콘서트의 풍미를 혼자 만끽한다.

솔로이던 새들은 이웃 새에게 무작위로 이동하면서 듀엣이 되고 중창단이 되지만, 가끔 숲 속 새들은 내면의 세계를 침묵으로도 표현한다. 소리 사이로 흐르는 웅혼한 침묵은 멈춰있음이 아니라 멍울로 맺혀 곡의 한 옥타브를 형성한다. 소리와 침묵의 변증법 사이에서 나뭇가지들이 이루어내는 조음助音도 감동이다. 절대 자연으로 빚어지는 절대 순수의 무대다. 곡명도 없이 숫자 표기만으로 명곡의 명맥을 유지하는 고전음악같이 새들에게도 명시된 곡명은 따로 없더라도, 들을수록 명곡이다.


나를 위하여 시를 낭송하기도 하고 음표와 음표가 만나 하모니를 이루며 잎과 잎 사이, 구름과 구름 사이, 바람과 바람 사이…… 를 타고 흘러나오는 ‘새페라’의 선율에 빠져있다 보면 뉘엿뉘엿 해가 진다. 그러면 매 초를 타고 변주하던 최신의 음표들이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들이 휴식의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는 것을 본 나도 집으로 돌아온다.

때로 우리 집 뜰이 콘서트장이 될 때도 있다. 나무가 많은 집 주위로 음표들이 날아들 때가 있다. 그들의 바늘귀만 한 콧구멍으로 냄새를 맡고 찾아든다. 부엌에서 새우 소금구이를 해 먹은 어느 날, 까치 떼들이 마당 가득 몰려와서 당황한 적이 있다. 먹이를 달라고 목청이 터져라 하고 노래를 불렀다. 연미복을 입은 궁중 합창단처럼 열창을 했다. 새우 머리를 던져 주니 그들은 바로 발레단이 되었다. 새우를 물고 날개를 활짝 펴서 나무 위로 슬쩍 날아가는 새. 가는 다리로 콩콩 뛰어다니며 친구들 먹이를 부리로 쪼아 보는 새. ‘새페라아리아’만을 끊임없이 부르는 새……들로 구성된 무대는 새우가 끝날 즈음에야 막을 내렸다.


집 뒤뜰에도 키 작은 나무의 우듬지가 무색할 정도로 이름 모를 새떼들이 앉았었다. 그날 부엌은 식초, 설탕, 간장을 함께 달인 날이었다. 결혼식 하객 인양 새들이 모여들었다. 연한 가지에 앉은 새가 쉰 마리는 되어 보였다. 동그랗게 다듬어진 나무가 ‘새꽃’을 피웠다. 샛 노랑의 부리와 흰 가슴 그리고 잿빛 깃털을 지닌 새들이었다. 가느다랗고 유연한 나뭇가지에 올라앉은 새떼의 시현示顯은 이태리 서커스 단원만큼이나 아슬아슬하고 구성진 퍼포먼스였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그러나 같은 모습을 한 새들이 꽃을 피우고 축가를 부르는 악상을 상상해보라. 뒤뜰을 미적으로 변형시킨 예술혼이었다. 수백 번 연습한 오페라 가수들도 흉내 내지 못할 숭고한 외침, 고결한 무대였다.


여행 중 야생 앵무새 공원에서 본 새들은 외형적으로 아름다웠지만 내게 아린 속정이 스며들게 했다. 새는 빨강, 파랑, 노랑, 초록이 섞인 원색의 깃털을 파티복인 양 고루 갖춰 입고 날아들었다. 나는 온갖 곡식이 배합된 모이를 양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앵무새들은 모이를 향해 몸을 던지듯 날아와서 나의 손바닥과 정수리로 매달렸다. 발톱으로 내 손과 정수리를 할퀴듯 붙들었다. 아픈 것도 같고 간지러운 것도 같았다. 놀라는 시늉을 했지만 모이를 쪼느라 새들은 부리만 바빴다.

시나브로 새들은 나의 벗이 되었나 보다. 상대방과 친해지면서 모르던 속내를 조금씩 알아가듯이, 새를 자주 보다 보니 새를 보는 나의 시선이 조금씩 깊어진다.

먹이를 향해 위험을 무릅쓰고 인간이 있는 곳으로 날아드는 새. 절절한 외침으로 허기짐의 상형문자를 허공에 띄우는 새. 수평 혹은 수직의 날기를 하다가 매듭 같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먹이를 샅샅이 뒤져보는 새. 머나먼 거리를 이동해야만 목숨을 부지하는 새.


생존의 어려움 속에서도 숲에서 얻은 맑은 목소리만을 내게 들려주는 새는, 힘겨움 속에서도 밝고 명쾌한 모습으로 생을 아름답게 가꾸며 희망을 좇아가는 사람을 보는 것 같다. 오체투지의 삶이 묻어 나오기에 새의 비상飛翔과 지저귐이 위대하다. 생존의 무거움을 깃털의 날기와 숲의 음성으로써 가볍게 미화시키는 새들의 율동이 황홀하다.

내가 새를 보러 숲으로 가는 것은 새의 이런 기특한 속내를 보러 가는 건지도 모른다. 미감과 비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숲 속 새페라’ - 새들의 향연에 홀로 초대받은 나는 늘 행운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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