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닿을 수 없는 2

by 예나네



나목은 삭풍에 긁히는 가지를, 상록수는 벌레에 갉히는 잎사귀를 견딘다. 갉힘과 긁힘은, 나무가 하늘로부터 받은 삶의 몫이다. 그럼에도 가지 않은 길을 건너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처럼 상록수는 나목으로, 나목은 상록수로 치환되고 싶을 때가 있을 거라는 실없는 생각이 문득 든다. 푸르고 마른 두 그루의 나무 사이에서 김훈의 사랑을 떠올린다.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건널 수 없는 것들과 모든, 다가오지 않는 것들을 기어이 사랑이라고 부른다."


상록수와 나목의 뿌리가 서로 품을 수 없듯이 사람의 운명 또한 닿을 수도, 만져지지도, 불러지지도, 건널 수도, 다가오지도 않을 때가 있다. 사랑, 그 추상명사의 한계상황인 피에타. 죽음과 삶이 껴안고 있어도 모든, 닿을 수 없는. 이래 생과 사는 가깝고도 멀다.


하늘,


그리고 바다.



세상에 닿을 수 없는 일이 삶과 죽음뿐일까.

마음과 마음. 이웃과 이웃. 물질과 물질. 이들은 동음 동의어이면서도 동상이몽을 꾸는 부부처럼 모든, 닿을 수 없음이 명백하다. 어찌 보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닿지 못하는 것들 사이에서 닿으려 애쓰며 한 생을 살다가려고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그래 마음이나 이웃, 물질에 온전히 닿지 못한다고 자책하거나 절망하지 말라. 닿을 듯 닿지 못하여 더 미적 묘미를 지닌다.

우선 마음의 바닥을 들여다보라. 수만 갈래라는 마음속 감성은 모든, 닿을 수 없기에 가까운 벗의 말 한마디로 상처를 입는다. 그땐 상대방의 마음 바닥을 면밀히 살펴보라. 진실과 성실을 갖추고 저변에 나에 대한 사랑이 깔려 있다면, 단숨에 그를 용서하라. 나라고 완전할 수 없고, 나라고 남의 아킬레스건 건드리지 않은 날 없다. 마음으로 마음 녹인 용서의 그릇에, 나의 자유를 자신 있게 기획하여 담으라. 타르코프스키의 외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나 내적으로 자유하고, 외적으로 연약하나 도덕적 확신에 찬 인간이 돼라.





다음은 이웃과의 소통이다. 그들과 모든, 닿을 순 없지만, 이웃이 아플 때 그를 위해 요리를 해보라. 따스한 국과 밥, 김치와 생선구이를 소담스럽게 담아 상을 차려줘 보라. 너의 밥을 먹은 그에게 따스한 기억이 되고 훗날 회복된 그가 따끈한 찻잔을 미지의 누군가에게 권하면서, 세상 모든 관계는 시나브로 가까워진다.

모든, 닿을 수 없는 안목으로 물질에 집착하면 할수록 물질이 멀리 달아난다는 원리를 알라. 고통에서 벗어나려 집착할수록 더 깊은 고통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알라.




제럴드 싯처의 『하나님 앞에서 울다』는 상실을 통해 영혼이 성장하는 내용이다. 자신이 운전하던 자동차 충돌사고로 어머니, 아내, 네 살 난 딸을 한꺼번에 천상으로 떠나보낸 그는, 상실의 고통 후 소리 없는 절규에 자신의 인생이 머문다는 고난이 끔찍했다. 그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체화시켜 고통의 매질을 덜 아프게 맞는다. 상실의 해악을 최소화하려는 최선의 지혜로 반응한다.


마흔이던 그는 철학교수이면서, 두 살부터 여덟 살 된 삼 남매까지 돌보다가 우울증을 겪는다. 그 와중에 어둠으로부터 달아나려고 하면,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는 사실을 체험한다. 고통의 고통을 줄이는 방법은,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껴안는 것임을 그는 체험한다. 우리네 삶이 이렇다. 마음, 이웃, 물질에 집착할수록 그것에서 멀어진다는 원리의 체득. 그러니 운명에 순응하며 순명으로 유연하게 살라.

하지만 제럴드 시처가 고백한, 천상으로 간 세 사람이 따로따로, 즉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지워지려 하면, 또다시 아내가 그립고..., 딸이 다시 그립다는 그의 고백 앞에서 나는 가슴이 저려,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제럴드 싯처는 끔찍한 상실 속에서 진솔한 고백으로 영혼을 치유해나간다. 때로 처참하게 울부짖고 하늘을 원망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앞에 상실은 불현듯 찾아온다. 그때 사람들은 왜 하필 나지?라고 묻는데, 그 질문이 틀렸다’고. 그 반대로 ‘왜 나에게는 저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거지?라고 물을 때 우리는 더 풍요한 은혜를 발견한다’고.


모든, 닿을 수 없는 삶에 때로 지치고 절망할 때도 있지만, 어느 수도승이 죽은 나무에 매일 양동이로 물을 퍼 날라다 부어주자 3년 만에 싹이 나왔다고 하듯이, 우리는 같은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열매를 얻게 될 테다.

세상 모든 것에 완전하게 닿을 수는 없으나, 우리 삶에 잉태된 깊은 고독까지도 견고하게 와락 껴안고, 내적 자유를 사랑하며 인생의 발자국을 찍는 건, 아담과 이브로부터 내려온 우리 인간의 숙명일 터.



모든 닿을 수 없는 현실을 수긍하는 게,
최선의 지혜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