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까지 닿은 시야는 멀다
그 시선 속으로 들어오는 공간의 부피 또한 드넓다 수많은 종류의 곡식이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우고 열매가 열린 들판을 넘어 헤아리지 못할 해양생물이 서식하는 광대무변의 바다를 지나 하늘
에 닿았다
넓이와 깊이를 지나온 동공의 조리개는 가뭇이 보이는 하늘 속에 들어가 십여 마리 까만 새들이 빙빙 선회하고 있는 푸르른 공간을 포착한다 정형의 틀 거리에서 벗어나고 가식의 예절과 이해
타산을 지나 고공을 날고 있을 새들의 군무 속으로 빨려 들어 간다 이 순간만이라도 이 땅 위의 수많은 존재들에게 짐짝처럼 주어지는 계산을 허공으로 훌훌
떨쳐 버리리라
심지어 벼 감자 파 마늘이란 들판의 생명까지도 수지타산이 맞아야 하고 자연발생적인 바다의 운명 또한 언제 어떻게 어떤 과학적 부지로 뒤엎어질지 모르는 세계 그러면서도 신물 나도록 진부한 이 땅을 떠나 상상으로 하늘 속을 들어가는 문은 비밀번호를 요구하지 않는다 자유롭다 상상의 날개를 달기만 하면 구만리장천까지 날아오
를 수 있다 유리로 된 투명한 1000층의 엘리베이터 높이까지 현기증 나듯 아득한 공간으로 솟아오르기만 하면 된다 하여 나도 그 환幻의 날개를 지어 입고 훨훨
고공을 비행해본다
그러나 그 고공의 코드도 이 지상의 코드와 맞물려야 낙하되지 않더라는 걸 깨달았을 때 오는 절망감은 더 컸다 지상의 덕을 업은 인간적 원형으로서의 공功을 통과해야 보다 탄탄하고 완벽한 상상 속을 날아오를 수 있다는 걸 인식하였다 그 후유증은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이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공空 내 안에 지혜 사랑 이해 그런 것들의 그릇이 텅 비었기에 땅을
떠나 어쭙잖게 공중을 부유하려 했었다 일종의
사치고 허영이었다
공功은 공空으로부터 거저 나오는 게 아니라 마치 알卵 같은 지상의 껍질을 놓고 안과 바깥의 특이점에서 내공功과 외공空이 줄탁을 하여야 깨쳐 나오는 것이란 걸 깨달은 순간, 환幻의 옷을 벗
었다. 벗어야만 했다. 그리고 다시 1000층을 고속 낙하하면서 이 땅에서 맛보지 못하던 가장 심한,
어지럼증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