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안개 속으로 가라앉는 마음 하나.

by 홍승표 승우담

아침 햇살이 막 물안개를 깨우던 순간, 나는 이 작은 정자 앞에서 오래 걸음을 멈추었다. 붉게 타오르는 단풍은 마치 시간을 붙잡으려는 손길처럼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고, 정자 위로 내려앉은 고요는 말없이 “잠시 쉬어가라”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호수 위에는 모든 것이 비쳤다. 붉은 잎도, 파란 하늘도, 그리고 내 마음의 깊은 곳까지도. 물결 하나 없는 잔잔함은 마치 오래 묵혀 둔 감정까지도 천천히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바쁘다는 이유로, 괜찮은 척하는 일상 속에서 놓쳐버린 나를 이 정자가 조용히 되돌려 주는 듯했다.


저 정자는 누군가의 기다림처럼 호수 한가운데 서 있었다. 스러지는 잎들을 품고, 밤새 내린 안개를 받쳐 들며,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모습. 어쩌면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화려한 순간만으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제 자리를 묵묵히 지켜내는 시간이 쌓여 어느 날 문득 아름다움이 되는 것.


붉은 단풍 아래에서 나는 비로소 느꼈다. 잠시 멈추어 서는 순간이야말로, 다시 나아갈 힘을 만드는 시간이라는 것을.


호수에 비친 세상은 조금 더 부드러웠고, 세상에 비친 나는 조금 더 따뜻했다. 오늘 이 풍경을 오래 마음에 찍어 두기로 했다.

삶이 다시 흔들릴 때, 이 고요한 정자의 숨결이 나를 붙잡아 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