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파이팅을 넘어 빠이팅이 넘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에 나는 노오력 만 하면 안 될 일은 없다고 믿었다. 직장에서는 날이 갈수록 인정받았고 내가 이루는 성과와 비례해 내 어깨에도 힘이 들어갔다.
'해보니 다 되는 거였구나.'
'나도 하는데 이 정도면 다 할 수 있겠는걸.'
내 무의식에는 나도 모르게 이런 작은 생각의 씨앗 하나가 떨어졌고 뿌리를 내려갔다. 무의식에 자리 잡은 이 생각은 어느새 뿌리가 튼튼한 하나의 가치관이 되었고 이후 무수한 문제를 일으켰다.예를 들어 보고서 마감 시간을 지키지 않는 직장동료를 향한 내 속마음은 이랬다.
"5시까지 넘기기로 하지 않았나요?"
(이게 이리도 오래 걸릴 일인가? 모르면 진작 물어보지)
"왜 상황 공유를 안 하는 거죠?"
(일이 중간에 생겨 시간 안에 못할 것 같다고 미리 보고하고 언제까지 하겠다고 하면 되지 않나? 답답하게 왜 말을 안 하는 거지?)
"이 보고서에 아침에 게시판에 공유했던 자료 참고해서 첨부파일로 함께 올려주세요."
(아침에 보낸 자료 열어보지도 않았음이 분명하군. 자료를 찾아서 첨부하라는 것도 아니고 이미 만들어진 자료 첨부만 하라는 데도 왜 못하는 걸까?)
마감기한을 어기고 약속했던 일들을 잊어버리는 사람들도 신뢰를 기반으로 한 사회에서 올바른 태도는 아니다. 하지만 더 문제는 그런 사람을 대하는 내 태도였다. 내 사고의 틀 안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도를 높여가는 보고서는 시간 엄수는 필수다. 그러나 당시의 내 문제는 내가 스스로 세워놓은 기준에서 벗어나면 한없이 냉정해진다는 것이다. 나이가 어려도 반드시 꼬박꼬박 존대하며 토끼몰이하듯 사람들을 몰았다. 어느새 나는 무자비하고 냉혈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 안에는 너무나도 많은 생각과 거기에서 파생된 분별심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윗선에서는 야무지고 똑 부러진다고 인정받았지만, 아랫선에서는 말하기 어렵고 불편한 사람이었다.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
나와 너의 분리 의식이 생기며 맑은 연못에 떠있는 한 방울의 기름 같은 존재가 돼버렸다. 무엇보다 내가 세운 기준은 너무나도 엄격했고 그 기준에 나도 미치지 못하게 되면 스스로를 엄청나게 질책했다는 것이다. 숨조차 쉬기 어려울 만큼 온몸이 아팠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것일까? 그 안에는 나에 대한 불신이 뿌리내리고 있었다.
나도 하는데...
이 생각 뒤에는 '이렇게 부족하고 능력없는 나도 하는데 저 사람이 못하는 건 노력이 부족해서야. 아니면 관심이 없거나 의지가 없는 거다.'라는 생각의 틀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이 곧 나라는 사람의 가치라고 생각했고, 일이 잘못되면 내가 잘못되는 것 마냥 괴로워했다. 타인에게 가혹한 만큼 나에게는 더 가혹했던 것 같다. 아파도 쉴 줄을 몰라 나중에는 몸이 아픈 건지도 모를 정도였으니 내 마음은 어땠을까? 몸과 마음이 다 망가졌는데도 망가진 줄도 모른 채 스스로 더 노력하라고 몰아붙였다.
그때의 나는 젊은 꼰대였다. 나는 잘 안다는 착각, 타인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상황을 내가 다 안다는 지레짐작과 오만함이 내가 걸린 병이었다. 패기 넘쳤던 젊은 꼰대는 그렇게 사람들과 부딪히며 세상에는 많은 사람과 그 사람들 이상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생각과 의견 그리고 그로 인한 상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결코 그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기에 겸손해야 하고 귀 기울여 들어야 함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우선은 내 마음의 소리, 그리고 내 몸이 보내는 신호부터 귀를 기울였다.
지레짐작하고 서둘러 판단해 버렸던 것은 결국 타인을 그리고 나를 정면으로 바라볼 용기가 부족해서였다. 내 안의 부족함을 바라보게 되면서 다른 사람의 부족함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가진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나의 의지와 성실한 노력을 인정하면서 다른 사람이 보였고 마음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내가 부족한 점이 있는 만큼 다른 사람보다 잘하는 것이 있고, 다른 사람이 부족한 것이 있는 만큼 나 역시 잘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플러스 마이너스 0이 되며 완전해 지고 그런 것이 인생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