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의 셈법
한상림
구름이 계산하는 공식은 오로지 방향이다
유빙으로 쓸려가는 얼음산은 구름이 만든 방향의 산물,
서로 다른 공법으로 색깔과 무게와 크기를 풀면서 떠돈다
들길 건너 봉우리 근처에 머뭇거릴 때도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
막다른 주점 골목, 강동 사거리도, 사막의 모래언덕에도
위 아래층 겹겹이 쌓이는 구름의 층들,
구름과 구름 사이에도 긴 다리가 있어
멍하니 떠 있어 보여도 비행기보다 빠르다
제 갈 길 묵묵히 떠다니는 구름의 방향에
속도를 더하거나 빼거나 푸념하지 않는 것은
구름에는 신분이 없기 때문이다
하늘은 구름의 속도를 다르게 측정한다
때때로 먹구름 심술부리면 천둥 번개 밀어내고
스스로 제 몸 비워낸다
무겁다거나 가볍다고 투정하거나 시샘하지 않고
각자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만 묵묵히 흐르는 구름에
0을 곱하면 0이 되고, 100을 곱해도 0이 된다
구름칼을 아무리 휘둘러봐도
허공이 깨지거나 어긋나지 않는 것은
오로지 늙어가는 것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구름만의 치밀한 셈법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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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시 11월 호 초대시>
2년 전 이맘때 쯤 나트랑으로 여행 후 귀국 중에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 본 구름 세상을 담았다.
아무리 봐도 구름은 죽음이 없는 삶의 연속으로 순환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구름은 셈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음이 없기 때문에 셈을 할 필요가 없는 구름을 알고부터,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보면서 가끔 말을 걸어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