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림 칼럼
배달의 편리함은 이미 우리에겐 일상이 되어 있다.
대한민국에 살면서 가장 편리한 점 하나를 든다면 그것은 바로 손가락 하나로 30분 이내에 집이나 사무실에서 음식을 받아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배달 서비스는 나날이 정교해지고 있다.
결재 완료 후 ‘준비 중-출발하여 몇 분 내 도착 예정- 배달 완료’ 등 문제 메시지가 실시간으로 뜬다. 심지어 몇 분 단위로 도착 시간을 예측하도록 지도 위에서 라이더의 위치까지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소비자는 그 숫자를 믿고 예측이 어긋나는 순간 누군가를 탓하기도 한다. 그만큼 라이더의 몸과 마음은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야 한다.
다양한 배달앱들이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점점 진화하는 중이다.
반면, 배달의 최남선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노동자의 애환은 어둠 속에 묻혀있다. 소비자는 국물이 조금 샜다며 쉽게 벌점 하나를 남긴다. 배달이 좀 늦으면 전화를 걸어 짜증을 내고, 때로는 결제 취소를 요구하기도 한다. 소비자야 손가락 몇 번이면 끝나는 일이겠지만, 그 순간에 생계 노동자 한 사람이 지워진다. 어떤 사정으로 늦어졌는지? 혹은 어쩌다 국물이 샜는지 이유를 묻지도 않은 채….
‘안전하게 천천히’라는 선택지가 라이더에겐 없다.
미끄러운 도로에서 넘어지는 순간 오토바이보다 먼저 확인한 것은 라이더 자신의 몸이 아니라 배달통이다. 이미 절반 이상 쏟아진 음식값은 결국 자신이 손해 보는 돈이고, 고객에게는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새 음식을 다시 주문해 줘야 한다. 만약에 음식을 반품하게 되면 라이더가 음식값을 물어내기도 하고 라이더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음식은 음식점주가 만들고, 배달 시간은 플랫폼에서 정해놓고, 책임은 라이더가 져야 하는, 속도가 생존이 되는 라이더에게 매우 불리한 구조다. 비가 많이 오던가, 눈이 내리는 날 밤에 미끄러운 도로를 달리다 보면 기우뚱하여 국물이 쏟아질 수도 있다. 때론 신호를 위반하게 되는 위험도 무릅쓰고 30분 이내 배달 시간을 지켜야만 한다. 거기다가 최종적으로 소비자에게 평가받는 별점에 따라 일자리를 잃거나 배차 간격이 감소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은 노동자인가, 사업자인가?
노동자처럼 통제를 받지만, 노동자처럼 보호받지 못한다. 사업자라기에는 가격도, 조건도 스스로 정할 수 없다. 책임은 양쪽의 것을 지지만, 권리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그저 더 빠른 배달을 원하고, 조금의 문제에도 보상을 요구하는 순간 누군가는 더 서둘러야 하고, 그만큼 더 위험해진다. 그러나 그 편리함이 누군가에게 어떤 조건 위에서 가능해졌는지는 좀처럼 묻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의 남편이고, 아들이고, 친구일 수가 있다.
따스한 말 한마디로도 큰 위로가 된다.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이 시간을 다투는 그들에게 따스한 배려와 감사하는 마음을 함께 나눴으면 한다. 또한 그들이 안전히 일할 수 있도록 현재의 배달앱 시스템을 사회안전망 시스템으로 전환하여 운영하고, 비정규직 근로자로서도 예우하였으면 한다.
집안에서, 사무실에서, 혹은 야외에 소풍 나와서도 편리하고 빠르게 손가락 하나로 받아먹을 수 있는 따스하고 맛있는 다양한 음식을 먹기까지에는 많은 사람의 손과 발을 거쳐온다. 그들이 있기에 더욱더 살기 편리한 대한민국이 아닌가?
한때 ‘미고사, 즉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배달 라이더들과 소비자가 함께 ‘미고사’를 나누면 더욱더 밝고 아름다운 사회가 될 것이다.
“조금 늦어서 미안해요. 아니에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따스한 봄날 같은 인사말들이 떠오르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