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의 끝에서 무연고자가 된다

-한상림 칼럼

by 한상림

사람은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는다.

먼저 연락이 줄고, 안부가 끊기고,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멀어진다. 그렇게 한 사람은 서서히 사회의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무연고자는 그 끝에 남겨진 이름이다. 나이가 많아서도, 가족이 없어서도 아니다. 오래도록 불리지 않은 삶이 마지막에 얻는 호칭이다.


얼마 전 언론에 보도된 무연고 사망 사례를 읽으며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그는 월세방에서 홀로 숨진 채 발견됐고, 휴대전화 속에는 수년째 통화 기록이 없었다. 가족은 있었지만 연락은 오래전에 끊겼고, 결국 시신은 지자체가 처리했다. 기사 제목에는 익숙한 단어가 붙었다. ‘무연고 사망’.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아무 문제없는 개인으로 분류됐을 것이다. 고립은 오래 지속됐지만, 그것은 행정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죽음 이후에야 그는 ‘무연고자’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런 소식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무연고 사망자는 이제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는 사회 뉴스가 됐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무연고 사망자는 2018년 약 2천 명 수준에서 2024년에는 6천여 명 늘었다. 불과 몇 년 사이 세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놓치고 지나온 시간의 합계다.


무연고자는 가족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가족은 있지만 관계가 끊겼고, 연락은 닿지 않으며, 사망 후에도 시신 인수를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살아 있는 동안 아무 문제없는 개인으로 분류된다. 기초생활수급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행정의 관심 대상은 아니다. 그러다 죽음과 함께 갑자기 ‘무연고자’가 된다.


고령층만이 무연고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취업난 속에서 사회와의 연결이 끊긴 청년, 우울증과 질병으로 관계가 사라진 중장년 역시 같은 경로 위에 놓여 있다. 통계는 이 흐름이 우연이 아님을 말해준다.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 비율은 이미 34%를 넘었고, 중·장년 단독 가구와 고령 1인 가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비혼·무자녀 인구 확대와 비정규·플랫폼 노동의 확산은 가족과 직장이라는 관계의 안전망을 동시에 약화시키고 있다.


고립은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사회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다.

일자리를 잃으면 관계도 함께 사라지고, 주거가 불안정해질수록 사람은 더 조용해진다. 그렇게 사회와의 접점이 하나씩 사라질 때, 우리는 이를 위험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저 개인의 삶이라고 넘겨버린다.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사망 이후에 머문다.

공영장례 제도는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고립의 끝에서 이뤄지는 최소한의 예우일 뿐이다. 더 중요한 질문은 그 이전에 있다. 왜 이 사람이 점점 사라지고 있을 때, 우리는 아무런 신호도 보내지 않았는가. 관계가 하나씩 끊어지는 시간은 길었지만, 정책의 관심은 늘 마지막 장면에만 머물렀다.


무연고자를 위한 장례의 확대가 아니라 관계의 회복이 먼저다.

무연고자를 사후 행정 대상이 아닌 사회적 고립의 결과로 바라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중앙정부는 기준과 책임을 분명히 하고, 지방자치는 지역 안에서 고립의 신호를 발견해 사람과 사람을 다시 잇는 역할을 해야 한다.

고립은 행정 혼자서도, 지역 혼자서도 해결할 수 없다.

이웃 주변인들도 관심을 갖고 무연고자 되기 전에 사전에 신고해 주어야 한다. 고립이 쌓이면 무연고자가 되고, 그 고립을 외면한 사회가 결국 그 이름을 만든다.


그럼에도 정부 정책은 여전히 사망 이후에 집중돼 있다.

공영장례 제도는 의미 있는 진전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장례는 마지막 장면일 뿐, 문제는 그 이전의 시간이다. 왜 이들이 고립될 때 국가는 아무 신호도 감지하지 못했는가, 혹은 감지하고도 개입하지 않았는가.


이제 정책의 방향은 분명해야 한다. 무연고자를 사후 행정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고립 위험군으로 규정해야 한다. 소득과 건강만이 아니라, 관계의 단절을 위험 지표로 삼아야 한다. 중앙정부는 기준과 재정을 책임지고, 지방자치는 지역에서 고립의 신호를 발견하고 연결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중앙과 지방이 따로 움직여서는 이 문제를 감당할 수 없다.


무연고자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오래도록 말을 걸지 않은 사회, 부르지 않은 이름, 닿지 않은 손길이 쌓인 끝에 도착한 결과다. 국가는 사람이 죽은 뒤에야 등장할 것이 아니라, 그가 점점 사라지고 있을 때 먼저 다가가야 한다.

무연고자를 줄인다는 것은 장례를 늘리는 일이 아니라, 관계가 완전히 끊어지기 전에 다시 잇는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미래형 요양원, 스마트 기술로 대비